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
우리는 수많은 확률을 뚫고 태어나게 되었지만 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그냥 희박한 확률에 당첨된 것이다.
그러면 왜 희박한 확률에 당첨된 것일까.
도대체 산다는 것은 왜 고통과 인내를 동반하는 것일까. 정답이 없는 문제에서 답을 찾으려고 하니까 고통이 따르는 것일까.
그렇다면 삶의 끝은 죽음일까?
삶의 '끝'이 '죽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착각하고 있다. 일정한 시간만큼 삶을 딱 유지하고 그다음에 죽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음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매 순간 동시에 존재한다. 단지 매일 동전의 앞뒷면 처럼 확률에 의해 죽음 대신 살아있음을 유지하는 것뿐이다.
작년 자살사망자 1만4439명…남성이 여성보다 2배 많아 | 세계일보
해당 기사에 따르면, 지난해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가 1만 4439명이며 이는 하루 평균으로 볼 때 39.6명이라고 한다. 이러한 죽음과 사건사고로 매일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100세 시대'라는 말이 있지만, 이는 정말 건강하게 100세를 온전히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생명유지의 의미로 최대 100세까지도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무튼,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당연히 적어도 7-80대까지는 살아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 뉴스에 나오는 사건사고를 보며 안타깝지만 내 일상과는 멀다고 느낀다.
그렇게 인생을 쭉 살아가다가 말년에 삶의 끝을 맞이하는 것이 죽음이라면 좋겠지만, 우리는 매일 확률의 기로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당장 몇 시간 뒤에 일어날 일도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하루하루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일주일, 한 달 뒤에 생이 끝난다고 상상해 보면 막연히 생각만 하고 머뭇거렸던 것들을 미루지 않고 당장 하지 않을까? 혹은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것에 에너지를 쏟았음을 깨닫지 않을까? 또는 타인의 눈치를 보며 내 삶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나 또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익숙하진 않지만 살아있음과 죽음이 하나라고 생각하면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은 달라진다.
그러면 '매일 죽음을 생각하면서 불안하게 살아가라는 거냐'라고 물을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삶의 자세는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다.
인간이 불안한 이유는 앞으로 내게 다가올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알 수 없는 막연함이 불안을 초래하고 인간은 고통스러워한다.
늘 죽음이 옆에 있다고 생각하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오히려 지금 이 순간 주어진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뿐이다.
시간차가 있을 뿐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이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제3자가 보기엔 안타깝고 안쓰러운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나 스스로가 즐겁고 의미 있게 살다가 간 거면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