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심리노트

chapter. 4

by 글쓰는 몽상가 LEE


* [심심한 심리노트]는 겹겹이 쌓인 마음의 깊이를 심심(甚深)하게 들여다보고, 일상에서 심심(心心)하게 스치는 감정 또는 사색을 담는 에세이입니다. 주로 심리를 주제로 한 영화 혹은 책 등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어떠한 울림을 받았는지 기록하고자 합니다.


최대한 영화 혹은 책 등 작품에 대한 줄거리나 설명은 간략히 할 예정이지만 일부 내용이 스포가 될 수도 있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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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오늘은 심리치료기법 중 하나인 의미치료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출처: 청아출판사



이 책의 간단한 소개를 보면,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정신 의학자인 빅터 프랭클의 자전적인 에세이.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참혹한 고통을 건조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술회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경험을 분석해 정신 치료 기법인 로고테라피를 정립하고, 이 기법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고난을 극복하고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접근하며 읽는 이에게 깊은 감동을 전한다.


* 출처: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90454414



유대인 정신과 의사였던 저자가 나치 강제 수용소(아우슈비츠 등)에서 겪은 참혹한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이 고통 속에서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고 살아남는지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에세이다. 빅터 프랭클은 "고통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으며,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영적인 존재"임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하였다. 또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통점이 '건강한 체력'이 아니라 '살아야 할 의미(이유)'가 있는 사람들이었음을 발견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로고테라피(의미치료) 라는 심리치료법을 창시하였다.



* 로고테라피(의미치료)

로고테라피(Logotherapy)는 '의미(Logos)'와 '치료(Therapy)'를 결합한 말로,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음으로써 심리적 고통을 극복하고 치유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의미치료는 세 가지 기본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 의지의 자유 (Freedom of Will): 인간은 환경이나 유전의 지배를 받기도 하지만, 그 조건에 어떻게 반응할지 결정할 자유가 있다.
- 의미에 대한 의지 (Will to Meaning): 인간은 단순히 쾌락을 얻거나 갈등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으려는 강력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
- 삶의 의미 (Meaning of Life): 삶의 의미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매 순간 속에 구체적으로 존재한다.


프랭클은 우리가 막막한 상황에서도 창조적 가치, 경험적 가치, 태도적 가치를 통해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창조적 가치는 무언가를 만들거나 일을 완수하는 것으로 예술 작품 활동, 업무 성과, 봉사 활동 등이 있다. 경험적 가치는 진리, 아름다움, 사랑을 체험하는 것으로 자연 감상, 예술 탐닉,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것에 해당한다. 태도적 가치는 피할 수 없는 고통에 맞서는 태도로 불치병이나 상실 앞에서 보여주는 품위와 용기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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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은 문장]



인간은 추상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해서는 안된다. (중략)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짐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의미를 찾겠다’고 애써왔던 나의 태도를 떠올렸다. 우리는 흔히 삶의 의미를 어딘가에 이미 완성된 답처럼 상상한다. 그래서 그 답을 찾지 못하면 조급해지고 공허해진다. 오늘 내가 선택한 태도와 회피하지 않고 감당한 책임, 도망치지 않고 마주한 수많은 순간들. 어쩌면 의미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내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믿음을 상실하면 삶을 향한 의지도 상실한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특정 종교나 신념만을 뜻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지만, 이 시간이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라는 아주 희미한 가능성. 그 작은 믿음 하나가 삶을 향한 의지를 겨우 붙잡아준다. 사람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은 고통 그 자체보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느낄 때가 아닐까. 그래서 누군가의 말 한마디나 한 권의 책 혹은 아주 사소한 온기가 다시 살아보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인간 존재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인간에게는 그런 조건을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가능하다면 세계를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필요하다면 자기 자신을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



변화할 가능성은 ‘반드시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다’라는 낙관이라기보다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나 자신을 조금 더 나은 쪽으로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환경이나 과거, 상처 등 다양한 이유와 조건으로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프랭클은 그 조건들 속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태도의 자유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 자유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지점이 아닐까 싶다.




유머는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 다른 무기였다. (중략) 유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초연함을 가져다준다.



‘웃음’이 얼마나 인간적인 방어기제인지 새삼 느낀다. 유머는 상황을 가볍게 만드는 도피가 아니라, 상황에 완전히 삼켜지지 않기 위한 일종의 거리 두기라고 할 수 있겠다. 웃을 수 있는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을 상황과 동일시하지 않고 한 발 물러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삶이 버거울수록 우리는 웃는 자신을 부적절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프랭클은 유머는 초연함을 가능하게 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말한다. 유머는 고통을 부정하는 행위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나를 지키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삶은 친절하지 않다. 이유를 알려주지 않은 채 상실과 슬픔의 상황에 던져놓는다. 그럴 때 우리는 의미를 묻기보다 원망하거나 회피하거나 무력해지기 쉽다. 하지만 프랭클이 말하는 삶에 대한 응답은 아주 다른 방향에 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를 묻는 대신 이 상황 속에서 나는 어떤 태도로 존재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 그 선택이 곧 삶에 대한 대답이 된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삶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되뇌어본다.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