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울렁증을 이기자!!

두근두근 과제 발표

by 글쓰는 몽상가 LEE


연구방법론, 인지행동치료, 신경심리평가. 각 과목의 중간과제, 시험들을 처리(?)하고 기말과제 발표가 다가온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어쩌나' 싶은데, 그 '어쩌나'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은 꽤나 슬픈 소식이다.


그래도 1, 2학기를 거치며 미세하게 나아지고 있는 글몽이의 발표울렁증 극복기는 계속된다.






'나는 발표하는 것을 왜 이렇게 싫어하는 걸까?' 잠시 고찰을 해보았다. 싫어하는 수준을 넘어 기피한다고 해야 할까. 조금 과장하면 공포증이라고 해도 될만하다.


일단 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부터 심장은 쿵쾅대기 시작하고, 손은 땀으로 흥건하다. 사이렌을 울리듯 온몸이 긴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나도 머리로는 알고 있다. 내가 발표하는 것에 모든 사람들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렇지만 앞에 나가서 입을 떼기 시작하면 그런 생각 따위는 백지가 되어버린다. 수 십 개의 눈이 나를 향하는 것만 같다.


'혹시나 말을 더듬거리거나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오면 어쩌지?'라는 생각과 실수하면 사람들에게 바보같이 보일 거라는 '비합리적인 사고'를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 의사 선생님께도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 나 스스로를 너무 나약하고 능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하는 면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셨다.


입장을 바꿔서 타인이 발표하는데 실수를 하면 그 사람은 바보고 능력이 없다는 생각부터 드냐고 반문하셨다. 아니었다. 그저 저 사람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을까, 열심히 준비했을 텐데 잘했으면 좋겠다. 고 생각이 든다고 말했더니, 보통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방금 본인이 말한 것처럼 스스로에게도 관대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해 주신 기억이 난다.


1, 2학기때부터 발표과제가 계속 있었기에 조금은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신경심리평가의 첫 번째 발제에서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무서운 호랑이 교수님 앞에서 말을 더듬더듬 거리며 영어로 읽어 내려갔던 그 순간.

발표가 매끄럽지 못해 동기들에게도 미안했던 그 순간이 자꾸 떠올라 기말과제 발표가 더욱 부담되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듯이, 절대 즐길 순 없지만(...) 피할 수 없기에 이왕 하는 거 이번만큼은 교수님께 지적받고 싶지 않아서 열심히 준비했다.


SNSB-2를 실시하고, 프로파일을 해석한 것을 바탕으로 신경심리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 그리고 그 보고서를 발표하고 교수님께 피드백을 받는 것 까지가 기말과제였다.


*참고: 이전 에피소드


나는 지인의 할아버지를 대상으로 실시했고, 프로파일은 적당히 내가 원하는(?) 결과로 나왔다. 주관적 인지장애(SCI)로 작성하였고, 각 소검사의 원자료를 PPT에 간단히 띄워 완성하였다. 발표자료 자체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완성하고, 녹음기를 틀고 교수님 앞에서 발표하듯이 똑같이 연습을 시작했다. 발표하다가 헛소리도 나오고 중간중간 말이 막혀서 괴로워하다가 나중에는 목에서 쇳소리가 나오고 나서야 멈추었다. 이렇게까지 긴장감을 가지게 하는 과제라니, 교수님의 존재는 엄청나다(...).


녹음된 내 목소리를 마주했을 때 민망함과 어색함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생각보다 녹음된 목소리와 실제 목소리가 다르다는 걸 알게 됐고, 말 속도가 무진장 빠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미흡한 부분을 수정하고 또 수정해서 나름의 대본을 완성한 뒤, 이번에는 동영상으로 내 모습을 촬영해 보았다. 녹음기에서는 알 수 없는 내 특유의 긴장된 표정과 제스처들이 있을 것 같아서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실제 상황이 아닌데도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이 아래로 향해있었고, PPT자료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첫 번째 발표 때도 저랬겠구나. 교수님과 동기들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말까지 더듬거렸다니!


말을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하는 것부터, 최대한 청중을 쳐다보되 얼굴을 쳐다보지 말고 책상을 쳐다보는 연습을 했다. 녹음기에 동영상까지 내가 할 수 있는 리허설은 다 했고, 이제 발표에서 실수하면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실제로 하지 않고서는 결과를 모르니까.






대망의 발표 날. 발표순서를 정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끝에서 2번째였다. 나는 '모 아니면 도'인가 보다. 처음 발표하는 게 부담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처음 발표하는 게 훨씬 나은 것 같다. 뒤로 갈수록 동기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부담감과 긴장감이 배가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발표와 교수님의 피드백까지 듣다 보니 원래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지연되어 다음 시간에 발표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들었다. 불안감을 다음 주까지 느껴야 한다는 게 너무 싫었다.


다행히 교수님께서도 오늘 안에 발표를 모두 마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어찌어찌 끝까지 진행은 되었다.


교수님: 이제 두 분 정도 남았나요? 다음은 누구죠?


나: 네, 교수님. 제 순서입니다.


교수님: 글몽이 선생님, 발표 시작하시죠!


'아 시작되었다.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은 다 감자다(교수님, 동기분들 죄송합니다)!! 할 수 있다!!'






나: 피검자의 나이는 70대로, 일상생활에 지장은 없지만 예전보다 기억력이 떨어진 것 같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주 손잡이는 오른손을 사용하며 (중략)


PPT 발표자료를 보면서, 가끔 교수님과 동기들(의 책상을)과 눈도 맞추며 긴장 따위 안 한다는 모습으로 진행했다. 말 속도가 빨라서 천천히 연습했었는데, 오히려 그게 또 너무 천천히 되었는지 시간이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교수님께서 시계를 보며, 핵심만 더 요약해서 말해달라고 하셨고 그 순간 또 백지화가 될 위기에 봉착했다. 그 뒤로는 사실 발표 마무리를 어떻게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나: 이상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정적이 잠시 흘렀다.


교수님: 글몽이 선생님, 고생 많으셨어요 잘하셨네요. 검사하는데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세상에. 교수님이 고생 많이 했다고 했다. 잘했다고 했다! 오 마이갓


나: 최대한 매뉴얼을 숙지하고 실행했는데도 진행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수님: 어느 부분이 그랬나요?


: 특히 RCFT검사할 때 어려워하셔서 중간에 그만하고 싶어 하셨던..


교수님: 그렇죠. 그 검사 진행할 때 다들 어려워하시죠(웃음). 그래도 검사자료 보니 잘 수행하신 거 같아요. 글몽이 선생님은 subjective cognition impairment(주관적 인지장애) 의견인 거죠?


나: 네 교수님, 피검자가 주관적인 기억력 저하를 호소하셨지만 검사상으로는 인지영역에 문제가 없고, 일상생활도 지장이 없어서 SCI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은 내가 제출한 보고서를 다시 훑어보시며 잠시 정적이 흘렀다.


교수님: 그래요. 검사자료와 발표한 내용들 보니 SCI인 거 같네요. 근데 문장 중에 좀 어색한 표현이 있어서 그것만 수정해서 제출하면 되겠네요. 고생 많았어요.






덜덜 떨면서 연습하고 연습한 보람이 있었던 것 같다. 아주 잘한 발표는 아니었지만 무난하게 잘 마쳤다.


과연 이번 학기의 가장 긴장됐던 신경심리평가의 결과는!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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