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
날씨는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순전히 [날씨요정]이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이다.
날씨요정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아니, 만난 적이 있다.
5월의 화창한 오후.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매번 이런 식이다.
그나마도 출발 전에 비가 쏟아지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지만 데이트 도중 보란 듯이 몰아치는 폭풍우는 당해낼 수가 없다.
이번에도 실패로 돌아간 나의 데이트는 어디서 보상받아야 할까.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하늘을 보며 손가락 욕으로 짜증을 풀었다.
집에 다 와갈 때쯤,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져 머리에 맞았다.
‘설마.. 새똥은 아니겠지. 데이트까지 망쳤는데, 이럴 순 없어!’
설마 하는 마음으로 머리를 조심스럽게 만졌는데, 잠자리 같은 무언가가 손에 잡혔다.
자세히 보니 잠자리 날개가 있긴 했지만 분명 사람의 형체였다.
판타지 영화에서나 보던 것이 내 눈앞에 있다니 눈을 비비고 또 비볐지만 분명 사람이 맞았다. 마치 피터팬에서 보던 팅커벨 같았다.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내게 팅커벨은 모기 같은 소리를 내며 내 주위를 빙빙 날아다녔다.
정신을 차리고 팅커벨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고.
작은 소리로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놀란 마음이 답답함으로 바뀌고 곧 흥미가 떨어져 집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5월인데.. 눈이 온다고?’
사방이 푸릇푸릇하고 꽃들이 활짝 핀 계절의 여왕 5월에 감히 생각지도 못한, 아니 있어서는 안 될 눈이 내리고 있는 것이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팅커벨이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눈은 어느새 함박눈이 되어 펑펑 내리기 시작했고, 기이한 기상현상에 놀란 동네 사람들이 나와 웅성대기 시작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팅커벨을 잡고 집으로 들어갔고 그러자 함박눈이 그치고 날이 화창해졌다.
‘설마 팅커벨이.. 날씨요정인가?’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날씨요정이 실존한다는 생각에 기가 막혀 몸이 굳었다.
새침한 표정의 날씨요정(출처: 구글이미지)
팅커벨은 방 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병 위에 걸터 앉아 나를 쳐다보았다.
팅커벨과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작은 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했다.
말이 안 통하자 종이에 글을 적어 보여주었다.
[당신이 날씨 요정인가요?]
팅커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이건 상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나는 날씨 요정을 만난 황송함에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궁금한 것을 쓰기 시작했다.
[근데 왜 내가 외출할 때마다 비를 내리게 하는 거죠? 나를 싫어하나요?]
팅커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신 때문에 데이트도 망치고 꼴이 엉망이 되었어요. 책임져요!!]
팅커벨은 분주히 날개를 흔들며 당황하는 듯하더니 창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내가 너무했나.. 상상 속의 요정을 만났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다니. 데이트도 망치고 잘하는 거 하나 없는 나 같은 인간은 당해도 싸지.’
나는 날씨 요정을 너무 쉽게 떠나보낸 것 같아 슬퍼졌다.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날씨 요정이 나타나 노란 장미를 툭 던지고 사라졌다.
‘미안함의 의미로 꽃을 가져온 건가?’
날씨 요정의 새침한 표정과 노란 장미가 어쩐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싱겁게도 날씨요정과의 만남은 여기까지가 끝이다.
나는 날씨요정을 그리워하며 무심하게 던지고 간 노란 장미를 집 앞 뜰에 심어 놓았다.
오늘은 유독 눈부시게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날이었다.
다시 한번 데이트를 위해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기분 좋게 현관을 나서려는데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한 두 방울씩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역시나 그럼 그렇지.’
이젠 화도 짜증도 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 현상을 수긍하기로 했다.
방으로 돌아와서 창문에 기대어 떨어지는 비를 감상하다 뜰 앞에 노란 장미를 보았다.
출처: unsplash
장미는 처음보다 훨씬 싱싱하고 생기 있어 보였는데, 마치 노란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춤을 추는 팅커벨 같았다.
*글 쓰는 몽상가 LEE의 메시지:
오늘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이상하리만큼 제가 데이트하러 갈 때마다 비가 내리곤 했어요. 날씨 요정은 정말 어딘가에 실존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노란 장미는 '질투', '시기'의 꽃말을 가지고 있는데, 아마도 데이트하러 가는 저를 질투한 귀여운 날씨요정이 비를 내리게 한 것은 아닐까요? :-)
오늘도 몽상 인사이드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