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 Inside]

신발총회

by 글쓰는 몽상가 LEE

오늘은 재활용품 분리하는 날이자 버려진 신발들의 총회가 있는 날이다.

회장은 작년에 이어 꾸겨진 신발이 연임하게 되었다.



[자, 오늘도 신발총회에 참석하신 버려진, 앞으로 버려질 신발 여러분들 환영합니다.]



짝짝짝!!, 쿵쿵쿵!!



신발총회 답게 우렁찬 발소리가 들렸다.


[오늘의 안건은 버려진 우리들의 신권 회복에 대한 것입니다!]


꾸겨진 신발은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도 처음엔 얼마나 반짝이고 튼튼했습니까! 인간들은 우리 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주제에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짝짝짝!!, 쿵쿵쿵!!!



신발들은 꾸겨진 회장의 말에 흥분되어 발구르기를 시작했다.



[저도 지금 같이 꾸겨질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요. 인간들은 참 건방집니다!! 자기들을 누가 꾸겨버리면 기분 좋을 것 같습니까!!!! 이건 정말 신발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발총회의 함성으로 재활용품장은 떠들썩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참을 만큼 참았다고요!! 신발의 품위유지를 위해 이런 취급을 하는 인간들에게 복수하려고 합니다!!!]



꾸겨진 회장은 신발총회 회원들에게 호소하였고, 그들이 세운 모종의 계획이 통과된 듯했다.



「신발총회는 다음과 같은 행동강령을 발표합니다!!」









그들의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제1조 신발들은 더 이상 인간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

제2조 더럽혀지거나 꾸겨짐을 당할 경우, 신발총회는 즉시 출동하여 신발회원을 구출한다. 인간들이 깨달을 때까지 절대 합의는 없다.


위의 조항을 어길시, 신발총회에서 추방된다.



[여러분! 신발총회는 신발의 권리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다 같이 외칩시다! 신발!! 신발!! 신발!!!!]


역대 신발총회 중 이렇게 환호성이 컸던 적은 처음이었다.

신발총회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다음날, 인간들은 난리가 났다.

신발들이 제멋대로 가고싶은 곳을 가서 회사에 못 가게 되었고, 외딴곳에 갇히기도 했다.


웅덩이에 빠진 신발을 그냥 방치하는 바람에

신발총회가 출동하여 그 신발은 인간으로부터 구출되었다. 신발이 없어진 인간은 그렇게 맨발로 돌아다녔다.



한편, 이렇게 어수선해진 상황에서 마음 약해진 신발들도 있었는데 인간의 뜻대로 움직여주려다가 꾸겨진 회장에게 발각되어 주의를 받았다. 꾸겨진 회장은 회원들에게 다시 한번 호소했다.


[여러분! 마음 약해져서는 안 됩니다. 저를 보십시오! 제가 이렇게 한껏 꾸겨진 것은

인간들이 발로 뭉개버렸기 때문입니다. 저를 보고 마음을 강하게 먹으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신권은 회복되지 못합니다!!]


신발총회 회원들은 마음을 다잡고 한마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러다 말겠지 했던 인간들도 상황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는지 재활용품장 옆에 있는 분리수거장에서 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나참, 신발 때문에 회의를 다 해보고. 하하하. 여러분! 안녕하세요. 인간대표 이인간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신발분들의 기행으로 일상생활이 불가할 지경입니다. 신발총회와 협의가 필요할 것 같아 긴급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인간들은 어이가 없었는지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 야근하느라 바빠죽겠는데, 신발 녀석들 때문에 또 회의를 해? 까짓 거 신발 안 신으면 될 거 아냐!! 맨발로 다니자고!! 인간의 자존심이 있지 신발 따위랑 무슨 협의를 해?]



[그래요. 발싸개들이랑 무슨 협의를 한단 말이에요? 그만둬요!!]



인간들은 하나같이 신발들을 비웃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인간대표 이인간은 평정심을 유지하며 인간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아무리 그래도 맨발로 어떻게 다닌단 말입니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지금이 무슨 원시시대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우린 인간이잖아요.]



이인간은 차분한 어투로 말을 이어갔다.


[꾸겨진 회장의 얼굴을 보니 저도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인간들이 지나친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우선 신발총회 회원분들에게 사과의 마음을 전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아니!! 꾸겨진게 뭐 어떻단 말이에요? 오래 신었으면 뭐 꾸겨신을수도 있지!! 인간이 돼가지고 신발 따위에게 사과하란 말이에요? 기가 막혀서!!]


[자자.. 진정하시고, 밖에 꾸겨진 회장님이 와계시니 박수로 환영해주세요. 협의하고자 모인 자리니까 좋게 좋게 진행합시다.]


꾸겨진 회장이 분리수거장으로 입장했다. 이인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간들에게 박수를 유도했지만 인간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안녕들 하십니까. 신발총회 대표 꾸겨진 회장입니다. 이인간님이 하도 사정사정하길래 바쁘지만 참석했습니다. 말 돌리지 말고 바로 시작합시다. 뭐 때문에 부른 겁니까?]



[아이고, 꾸겨진 회장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인간들이 신발분들 없이는 생활하기가 힘들지 않습니까. 원하는 곳으로 가지도 못하고 매우 불편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신발총회와 협상을 하고 싶어서 모시게 되었습니다.]


꾸회장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 앉았다.



[이제야 심각성을 알았군요. 그러게 평소에 신발들에게 잘했어야지 말입니다.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회원들에게 사과하시고 앞으로 신발의 권리를 지키겠다고 계약서에 서명해 주십시오.]


이인간은 다소 당황한 듯했지만 어처구니없는 이 상황을 빨리 해결하고 싶었다.


[예예 그럼요. 저희 인간들이 신발분들에게 심했지요.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신권을 지키면서 신도록 하겠습니다. 꾸겨신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꾸회장은 언짢은 표정을 지었는데 그 때문인지 얼굴이 한껏 더 꾸겨져 보였다.


[인간이 돼가지고 말귀를 못 알아듣습니까! 꾸겨신지않는건 당연한 거고 신발이 더럽혀지거나 못 신게 되었을 때 예의를 지키라는 겁니다!!]








이인간은 억지미소를 유지하느라 얼굴근육이 경직되었는지 계속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는데 인간인지 로봇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아아. 그럼요! 무슨 말씀인지 알죠! 신발분들의 권리를 위해 인간들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선 사과부터 받아주시지요. 인간을 대표해서 진심으로 신발총회분들에게 사과드립니다.]


꾸회장은 미심쩍었지만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것은 서로에게 좋을 게 없어서 사과를 받아들였다.



[좋아요. 사과는 받아들이죠. 이제 계약서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신권을 존중하지 않을 시 우리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반복할 수밖에 없어요. 아시겠죠?]


[네네 그럼요. 여기 서명하겠습니다.]


꾸회장도 계약서에 힘껏 발도장을 찍었다.



이렇게 인간과 신발의 평화계약이 최초로 성립되었다.



물론 지금도 꾸겨진 신발과 유기된 신발 회원들이 가입해 오지만 평화가 유지되는 이유는 신발이 더럽혀질까 봐 애지중지하는 인간들이 균형을 맞추기 때문이라고 한다.




출처: unsplash






*글 쓰는 몽상가 LEE의 메시지:


오늘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제 지인 중에 신발 수집을 좋아하는 분이 있는데 항상 신발을 깨끗이 관리하고 보관하시더라고요. 좋아하는 물품을 소중히 다루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혹시 '좋은 신발은 주인을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신발을 깨끗이 다루고 아껴주면 그 신발이 감사의 표시로 독자님들을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지도 몰라요. :-)


오늘도 몽상 인사이드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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