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적으로 받아들이기

by 글객

민주주의는 현명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것을 보장하는 사회정치제도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지도자가 권력을 쥐게 되더라도 최악의 실정을 하지는 못하게 하는 사회정치제도이다. 최선의 보장이 아닌 최악을 회피하는 기능을 하는 제도인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최상의 결과는 이상인 경우가 많다. 모든 과업이 최상의 결과로 귀결되기는 어렵다. 만일 최상에 미치지 못한 모든 결과를 부정으로 정의하기 시작하면 인생에서 긍정인 과업은 찾기 어려워진다. 인생은 어찌 보면 나를 둘러싼 다양한 카테고리의 부정을 관리하는 여정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 기준에 따라 부정의 비중은 달라질 수가 있기 때문에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이 여정의 기운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우선은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사안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흑백 논리는 사안을 100% 혹은 0% 둘 중의 하나로만 정의하는 심리적 버릇이다. 이는 조금의 흠결도 용납할 수 없는 취약하고 불안한 감정의 상태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사람이나 물질, 상황 사건 등에는 모두 흠결이 있다. 때문에 100% 완벽한 것에만 존재할 자격을 부여하면 세상에 부정 아닌 게 남아 있지를 않게 된다. 소위 말하는 '프로 불편러' 들이 사안을 바라보는 태도가 실상 이런 관점으로부터 나타나지 않을까 싶다.


때문에 어떤 대상을 항상 긍정과 부정이 뒤섞여 있는 상태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입체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이라고 본다. 어떤 대상을 옳고 그름으로 정의하는 것을 끝끝내 최후의 순간까지 미루고 매 순간 대상을 긍정과 부정의 복합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상을 긍정 혹은 부정으로 너무 쉽고 빠르게 정의 내리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치우친다. 마치 선거제도가 승자독식으로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처럼 흑백논리는 세상에 대한 인식과 우리의 생각과 마음 사이에 격차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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