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으로 가득 차 있는 나의 20대가 준 교훈은 다양하다. 자기 자신의 흠결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 사람이 왜 베알이 없어야 하는지, 염치가 왜 적당해야 하는지, 신세를 질 줄도 누군가를 별 이유 없이 도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완벽함을 추구하는 게 얼만큼 위험할 수 있는지, 왜 상대방을 적당히 배려해야 하는지, 타인을 이해하는 건 왜 불가능한지, 그래서 조언은 얼만큼 쓸모없는 일인지 등의 것이다. 그런 것들의 대답은 이제 인이 박혀 어떤 언어로 남아있지 않고 감정적 인식과 행동양식으로만 남아있다. 지혜라면 지혜고 개똥철학이라면 개똥철학이다.
하지만 그런 나름의 덕목들을 깨쳤다고 해서 인생이 한참이나 수월해졌다거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방법론이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지혜를 얻어도 인생은 여전히 사투다. 무엇인가를 알았다고 해서 혼자 잘난척하고 살 수도 없거니와 그 앎이 타인의 입장에선 별 시답지 않은 것일 가능성도 농후하고 그렇기에 나 좀 알아달라 기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가장 위험한 순간은 '이제 좀 알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어깨에 뽕이 들어가는 순간 다가오는 새로운 문제는 방심한 나를 덮치고 순간의 깨달음을 휴지조각으로 만든다. 그러면 정서가 무너진다.
언제나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어떤 하나의 상태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정을 재촉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 여유를 가지려 애써야 하고 적당한 긴장감마저 없이 처져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 확고해지려 애써야 한다. 마치 줄타기를 하듯이 아니면 시소가 양쪽으로 흔들거리며 중심을 유지하듯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한번 치우치게 되면 다시 균형을 이루기까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