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은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약간의 인생의 회한으로 다가온다. 이것은 틀은 기억 하는데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틀 자체를 망각하는 경우를 말한다.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기록이라는 신의 선물로 해결 가능한 문제지만 슬픈 것은 내가 무엇인가를 기록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는 일, 즉, 내가 무엇을 알았었는지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지도의 한 부분이 파손된 것이 아닌 지도 자체가 유실된 형태. 경로가 기억되지 못하는 기록은 자원의 낭비밖에는 되지 않는다.
반면 망각이 좋은 경우가 있다. 바로 미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기억이 닿는 한 미련은 우리 마음에 잔류할 수밖에 없다. 미련의 크기는 기억의 생생함에 비례한다. 때로 인간이 기억을 다 지워버리고 싶다 소망하는 것은 현재의 나를 발목 잡는 과거의 사실들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쉽게 잊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미 지나간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에 충실히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좋았던 기억에 취하지 않고 나빴던 기억에 억압당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방면으로는 망각은 참 이로운 무엇이다.
모든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상반된 면이 있다. 모든 것에는 장단이 있기 때문에 어떤 면을 보느냐에 따라 사안은 달라진다. 보고자 하는 면만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어찌 보면 단순한 생각의 선택의 문제일 수도 있다. 상황은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긍정적인 면 한 두 군데 즈음은 있기 마련이다.
요즘 들어 기억력이 퍽 나빠졌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안 좋은 기억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 사안의 긍정적인 면모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