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욕구가 이긴다.

by 글객

욕구는 버려도 외면해도 다시 찾아온다. 그런 존재인 것 같다. 그래서 최선이 되어야 하는가 보다. 점진적으로 다음 단계의 성취를 통해 해소되지 않으면 끊임없이 나를 찾아온다. 무섭게 살아난다. 생명력이 질기다. 그 질긴 생명력은 내가 차선으로 택한 어떤 것마저 좀먹는다. 차선을 택한 후 환경이 나아진 후 욕구를 우선하겠다는 생각은 어느 순간 허황임이 밝혀진다. 욕구는 차선이 성장하게 가만 두지를 않는다. 자신을 봐달라고 죽을 때까지 나를 쳐다볼지 모른다. 하나의 인격체로 보이기도 한다. 제 때 성장하지 못한 아이처럼.


그렇다. 욕구는 아이와 같다. 나라는 사람이 나고 자라는 사이 언젠지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 태어나는 존재다. 성장을 바라는, 아니 성장시켜야만 하는 양육의 대상이다. 내 욕구는 기아의 상태, 혹은 아사 직전의 상태는 아니었을까? 제 때 양분을 주지 못한, 가끔씩 자신을 바라봐달라고 소리칠 때라야 선심 쓰듯 옛다 먹어라 먹다 남은 음식 하나 던져준, 그런 태도로 내 욕구를 양육해온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참 나쁜 사람이다. 내 정체성일 수 있는, 어쩌면 자식을 낳기 전 개념적 정신적으로 자식을 대체할 수 있는 연습의 대상인 인격을 그렇게 방치하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정체성은 나보다 더 깊은 의미의 나다. 나라는 사람은 풍파를 막아주고 양분을 공급하는 껍데기에 불과할지 모른다. 주가 정체성이요, 객이 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주객이 전도돼 왔을 수 있겠다. 껍데기가 나인 양, 본질을 흐리고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아이를 외면하고 껍데기만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아왔는지 모른다.


갖난쟁이에게 먹일 게 없으면 젖동냥이라도 하고 다니듯, 욕구가 성장할 수 있는 양분을 줄 수 있는 타인과 환경을 만나야 한다. 굶주림에 지친 아이가 혹여 탈이라도 날까 조금씩 조금씩 쪼개서 음식을 먹여주듯, 그렇게 조심스럽게, 내 욕구에 양분을 조금씩 채워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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