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쓰던 단어를 내뱉는 카타르시스.

by 글객

몰랐던 단어, 의미를 알며 듣기에 익숙하지만 내 일상에서 내뱉어지지는 않는 단어가 어떤 대화의 상황에서 내 입으로 튀어나왔을 때에 느껴지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이를테면 '차치하다'는 말은, 앞에 나온 내용은 제쳐두고 해당 단어 뒤에 뱉으려 하는 내용에 대해서만 논의를 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말인데, '~는 논외로 하고'와 같이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가 있지만 그것과는 다른 묘한 어감을 가진다. 이 말을 나는 유시민 작가가 썰전에서 표현했던 것을 잠재적으로 기억하다가 유사한 대화 전개의 필요성이 느껴졌던 일상의 한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내뱉었었는데 그때의 기분이 참 신선하면서도 보람찼다. 단순히 조금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것과는 다른 이 말만의 멋이 있는 것 같다. 뱉을 때 느껴지는 묘한 쾌감이 있다.


살다 보면 말과 글을 뱉는 과정에서 어휘력의 부족을 느끼게 되는 때가 많다. 어떻게 보면 부족이고 또 어떻게 보면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에 대한 지겨움인데 이런 느낌이 왜 드는지 생각해보면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말이나 글을 통해 새로이 접하게 되는, 세련되면서도 문맥을 좀 더 정확한 감성으로 담아낼 수 있는 언어의 존재들을 잦은 빈도로 느끼게 되는 삶의 구간에서 괴리감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input은 진행됐지만 output은 실현되지 않는 어휘들이 머릿속을 채우는 가운데 '뭔가 이럴 때 쓰는 표현이 있는 것 같은데'라고 느끼는 대화의 상황에 자주 놓이다 보면 그 괴리감으로부터 이 부족의 느낌이 누적된다. 그러다 문득, 계중에 좀 잦은 빈도로 내 귀를 찾아온 단어가 무의식을 뚫고 나오게 될 때 꽤나 만족스러운 카타르시스가 찾아온다. 그 언어가 지금 내 입을 통해 내뱉어질 것이 라 확신이 서는 그 찰나의 순간 내가 이 단어를 자연스럽게 내뱉을 수 있게 되었구나 하는 설렘이 다가온다. 그 순간을 경험한 단어는 이후에 점점 더 자연스럽게 내뱉어진다.


어휘력은 단순히 똑같은 생각과 느낌을 좀 더 멋있게 표현하기 위한 능력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깊이 관찰해보면 표현할 수 없었던 정신의 세계 혹은 관찰의 세계에 대한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개념이다. 도달의 의미다. 영역을 넓히거나 깊게 파는 의미이다. '스러지다'(1. 형체나 현상 따위가 차차 희미해지면서 없어지다. 2. 불기운이 약해져서 꺼지다.)라는 말을 알기 전까지는 해당 단어가 지칭하는 상황을 훨씬 더 투박하게 표현했던 것은 그 언어를 만난 후 새로운 표현의 영역에 도달했음을 말할 것이다. 인간 삶이 결국 커뮤니케이션에 있다고 한다면 어휘력은 성장의 본질과 같은 개념이다.


사진 : http://www.kaylalewkowicz.com/blog/2016/7/9/conversation-mark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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