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스 엔드게임 속에 이런 대화가 있다. 타노스가 토니 스타크에게 하는 말이다. "지식의 저주"는 너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대사다. 그리고 이 '지식의 저주'라는 단어는 그 이전 마블 영화, 특히 아이언맨과 관련된 영화에서 종종 언급되기도 하고 이야기를 통해서 그 의미가 전달되기도 한다. 아주 정확하게 그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뉘앙스를 분석해보면 많이 알게 됨으로써 얻게 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운명, 혹은 불행한 정신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아이언맨으로 활약하는 마블의 토니 스타크는 너무나 천재적이어서 외로운 인물이다. 그는 어떤 고난이나 고생을 겪고 나면 그 이후에 닥칠 수 있는 더 큰 역경의 상황을 예견하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능력이자 불행이기도 하다. 끊임없는 불안감에 지배되어 현재를 온전히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례로 '아이언맨 3'에서 토니 스타크는 연인 페퍼 포츠에게 밤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벤저스 1편에서 뉴욕에 외계인이 침공한 이후 더 큰 위기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니는 그런 이유로 자신이 빠질 수 있는 최악의 위기 상황을 대비하여 최고의 기술과 최후의 작전을 세워둔다. 그리고 예견대로 그 최악의 상황은 본인의 말대로 현실이 된다. 여기에 역설이 존재한다. 자신이 예견한 최악의 상황들이 끊임없이 현실이 된다면 어떻게 보면 그것은 자신으로 인해 그 최악의 상황이 불러일으켜지고 있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토니는 끊임없이 그 불안한 미래에 생각과 정신을 잠식당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불행히도 다른 동료들은 그만큼 미래를 바라보지는 못하는 편이다.
시나리오를 그릴 수 있다는 것은 생각과 생각의 얽이를 끊임없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동전의 양면처럼 재능이 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저주가 될 수 도 있다. 생각이 끊임없이 파생된다는 것은 그것을 감당해낼 수 있을 때만 축복이다. 그것을 자신의 재능이나 주변의 도움으로 현실화시킬 수 있다면 꿈을 현실로 만든 위대함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런 상태를 현실감각이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생각이 현실이 되지 못한다면 반대로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토니는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으로 그것을 현실에 내놓긴 했지만 그 과정은 끊임없는 외로움과의 사투였다. 현재를 살지 못하고 미래에 잠식당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과거와 미래를 현재로 가져오는 것을 경계한다. 바꿀 수 없는 과거는 물론이고 오지 않은 미래에 정신을 잠식당하는 것 또한 좋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 끊임없이 현실을 바라보고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한다. 그것이 온전해지는 것이며 업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가르친다. 그런 것들은 모두 번뇌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눈 앞의 것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정신이다. 현실의 어떤 대상이 자꾸 생각을 발생시키고 그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발생시킨다. 그리고 그것은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떤 일을 하는 와중에 그 일 속의 어떤 부분이 다른 일에 대한 연결고리 역할을 해서 하나의 일을 다 마치지 못하고 자꾸만 다른 일로 전환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도 힘겨운 부분이다. 계속해서 파생을 일으키는 생각은 현실에 보조를 맞추는 것에 장애를 가져온다. 할 말이 한 번에 너무 많이 떠올라 어떤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말을 더듬기도 한다. 이런 게 지식의 저주라면 저주일까? 그래도 하나 다행인 것은 글로 정리하는 것은 그나마 그 생각들을 그런대로 꽤 쏟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완벽히는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