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무실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점심식사를 직접 해 먹고 그에 따라 셰프가 되는 담당 요일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수요일에 점심식사를 준비한다. 주력 메뉴는 자장이나 카레다. 항상 말하는데 자장은 어렵지 않지만 힘든 요리다. 무슨 말이고 하면 과정이 단순하고 맛 내기가 그렇기 어렵지 않아 부담이 없지만 감자며 양파며 껍질을 까고 다듬는 작업에 볶는 과정까지 하다 보면 진이 빠진다는 이야기다. 특히나 10인분 내외의 양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요리를 다 마치면 절인 배추가 되는 느낌을 간혹 받는다.
나의 카레에는 나름의 역사가 있다. 대학교 자취를 하던 시절 씀씀이도 그렇고 건강도 그렇고 되도록 하루에 한 끼는 해 먹으러 애썼는데 그 당시 요리 인생의 입문 격이 된 것이 카레였다. 언제인가 생활비가 빠듯해짐이 느껴져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무작정 동네 마트로 향한 적이 있는데 그때 진열대에서 발견한 60인분의 카레 분말은 거의 구원이었다. 그걸 사서 몇 달 동안을 하루에 한 번 이상 카레를 해 먹었다. 고기를 살 여유까지는 없어 보통 밀가루 맛이 많이 나는 값싼 햄과 감자를 썰어 넣어 먹었다. 생활비 절감 효과는 상당했지만 몇 달을 연짱으로 카레 냄새를 맡으니 나중에는 물리기 시작하여 결국 그 카레분말을 다 써먹지 못했다. 자취생활을 청산하고 본가로 복귀할 때 락앤락 통에 담겨있던 카레가루도 다른 집기와 함께 원대 복귀했다.
질리도록 먹은 카레였지만 그 덕에 카레와 자장은 셰프 역할을 할 때 부담 없이 만들 수 있는 메뉴가 됐다. 뭐 어마어마 한 특제 레시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절차가 손에 익어 편안함을 준다. 확실하게 만들 수 있는 메뉴가 하나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다양한 메뉴를 시도해봄에 있어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준다. 시간적 여유가 허락돼 다른 메뉴를 시도해 볼 여력이 될 때는 새로운 메뉴를 한 번씩 해보고 그렇지 못하고 영 바쁠 때는 고민 없이 자장이나 카레를 준비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면서 만들어낼 수 있는 메뉴의 가지 수를 점차 늘려가고 숙달하는 것이다. 셰프라는 역할의 나는 그렇게 조금씩 자산을 늘려가게 된다. 그렇게 따지면 자장과 카레는 나의 요리 인생에 있어 자본과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해 법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본이 필요하다. 그 자본을 중심으로 법인은 자산을 늘려간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심리적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재산이 필요하다. 재산이 있으면 그 자체가 조금씩 늘어나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에 용기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또 갑자기 실직을 하거나 질병을 얻거나 하는 등 예상치 못한 삶의 난관을 만나게 될 때 재산은 그것을 헤쳐나가는 힘이 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삶의 범위가 확장되기 위해서는 그 중심에 확고부동한 나만의 자본이 있어야 한다.
별나다면 별날 수 있겠지만 나는 음식을 마련하고 준비하는데 묘한 매력을 느낀다. 감자와 양파를 깨끗이 씻어 큼직한 중식도로 서걱서걱 썰어나갈 때 느껴지는 묘한 쾌감이 있다. 또 반찬을 접시에 높게 쌓아 맛갈나게 담아내는 것에도 만족감이 있다. 그래서 그 모든 절차를 머릿속에서 정리하며 상이 차려지는 그 순간까지 주방이라는 독립된 공간에서 자유로이 활개를 치는 것에서 작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1인분의 음식을 15분 만에 만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나에게는 십여 명의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두 시간이 주어진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수요일 오전의 점심준비는 나에게 있어 자유로운 쾌감을 느끼며 사투를 펼치는 인생의 한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프로젝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