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 '4시간' 주세요.

음료는 상관없는 시공간의 구매

by 글객

우리 사무총장님은 연초나 명절이면 사무국 식구들에게 작은 선물을 돌리곤 하신다. 주로 온라인 상품권류인데 올해는 연초와 구정을 맞아 문화상품권과 스타벅스 기프트카드를 선물하셨다. 본인께서도 그리 넉넉한 생활은 아니실텐데 놀랍고도 참 고마운 일이다. 그 덕에 휴일이면 종종 동네 스타벅스에 와서 차 한잔 시켜놓고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때때로 요거트류나 블렌디드류를 마시기도 하고 또 가끔 단 것이 당길 때에는 카라멜 마키아토나 바닐라 라떼를 마시기 도 하지만 내가 스타벅스에 와서 주로 주문하는 메뉴는 아메리카노나 오늘의 커피다. 그것도 메뉴판에는 나와있지 않은 숏 사이즈를 주로 시킨다. 특히나 오늘의 커피는 아메리카노 한 잔 보다도 더 저렴해서 귀여운 사이즈의 머그컵에 담긴 커피 한잔을 3,300원만 내면 마실 수가 있다.


커피 맛을 잘 모르는 나에게 어떤 커피를 마실 것인가는 그렇게까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커피 애호가 분들은 커피에서 느껴지는 산미나 바디감(맞는 표현인지 모르겠다.)에 따라 커피가 맛없다 맛있다를 논하는 것 같지만 나에게 그런 건 크게 와 닿지 않는 부분이다.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러 카페에 오는 내게 중요한 것은 사실 커피 한잔의 양이나 질보다는 그로 인해 내가 확보할 수 있는 공간감과 그 속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다. 인근에 아메리카노가 1,500원인 더욱 저렴한 카페도 있지만 구태여 스타벅스에 오는 이유도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온전한 공간감이 있기 때문이다. 카페를 이용하는데 시간제한은 없지만 평균적으로 세네 시간 정도를 앉아있다가 돌아가는데 그 시간 동안 유튜브를 보기도 하고, 책을 볼 때도 있고, 이번 달은 얼마를 썼지 정산을 하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러니 내가 구매하는 것은 널찍하고 탁 트인 공간감과 적당히 채워져 있는 주변인들의 백색소음, 크게 불편하지 않은 의자 테이블의 독점적 사용권한 및 눈치 주지 않는 직원(파트너라고 부른다더라)들의 서비스 일 것이다. 표면적으로 눈에 보이는 음료는 나로서는 그러한 세계로 연결해주는 하나의 수단일 뿐일 것이다.


오늘의 커피 숏사이즈 한잔, 3,300원

그렇기 때문에 내가 3,300원의 음료를 마시는 것은 비단 저렴함을 추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3만 원의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를 받았을 때 저렴한 음료를 마시면 나는 그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누릴 수가 있다. 스타벅스의 재무제표를 확인해보면 커피 원재료 값은 극히 일부다라는 사실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파트너들의 인건비와 임대료 등 매출 관리비의 영역이다. 우리가 사고 있는 것은 그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공간에서의 시간인 것이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라는 말은 그로 인해 우리가 얻을 가치를 분해해본다면 " 아메리카노 4시간 주세요."라는 말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3,300원의 선택은 내가 진정으로 얻게 되는 가치에 입각한 효율적 합리적 사고의 결과물이다.

수년 전 개봉했던 영화 [인 타임]에서는 화폐가 시간으로 변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삶의 절박함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시간을 급여로 받으며 시간으로 커피를 산다. 가게에는 '커피 한 잔 00시간'이라는 설명이 써져있고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커피 한잔이 몇 시간으로 올랐다는 불평을 하기도 한다. 팔목에는 마치 통장잔고와 같이 자신이 보유한 시간이 기록되고 그 시간은 마치 모래시계의 디지털 버전처럼 숫자로 표시되고 실제 시간의 속도로 줄어간다. 그리고 보유한 시간이 다 지나면 그 사람은 죽는다.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가는 주인공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그렇게 벌어둔 시간이 부족해서 눈 앞에서 엄마가 죽는 끔찍한 경험을 한다. 그런 방식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분노감을 느끼며 그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지배계층을 찾아 나서고 전복시키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다. 현대 사회에서 시간은 곧 돈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심어준 영화로 기억하고 있다.


시간이 돈인 세상, 영화 [인 타임](출처 : 네이버 영화 정보)


물질적 풍요로움이 점차 더해져 가는 현대사회에서 재화 자체에 대한 가치는 점점 더 떨어져 갈 수 있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를 사 입는 것은 그 제품만이 가지는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 품질보다는 그것이 주는 브랜드 가치와 그 가치를 입었을 때 소비자가 느끼는 감정과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에 대한 지불일 것이다. 사회가 가난할 때는 재화 자체가 중요하지만 풍요로워질수록 그 뒤에 숨어있는 무형의 가치가 더 중요해지는 흐름에서 생각이 게을러지면 내가 돈을 지불하고 얻어내는 본질적 가치가 과연 무엇인지 헷갈리기 쉽다.


표지 이미지 출처 : https://pixabay.com/ko/photos/%EC%BB%A4%ED%94%BC-%EC%B9%B4%ED%8E%98-%EC%B0%A8-%EB%9D%BC%EC%9D%B4%ED%94%84-%EC%8A%A4%ED%83%80%EC%9D%BC-128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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