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101의 첫 번째 시즌에서 준우승을 차지해 I.O.I의 멤버로 대중 앞에 나타나고 연이어 본 소속사의 신인그룹 구구단으로 정식 데뷔까지 했던 가수 김세정의 솔로곡 '꽃길'이라는 노래는 멜로디와 메시지가 좋은 노래였다. 서정적이면서도 잔잔하게 흐르는 멜로디와 김세정의 청아하면서도 약간 한 맺힌 듯한 목소리는 자신을 키우느라 젊음을 다 보내버린 엄마에게 이제 꽃길만 걷게 해 주겠노라는 가사를 듣는 이에게 참 진솔하게 전달해주었다. 어떤 노래에 꽂히면 주야장천 그 노래만을 든는 걸 좋아하는 나는 이 노래가 나온 당시 멜론 플레이어 음악 리스트에 이 곡을 저장해 놓고 계속 계속 반복해서 듣고는 했다.
김세정 - 꽃길(prod.지코)
'꽃길'이라는 단어가 이 노래를 통해 처음 소개되었는지, 아니면 이 노래 전에 이미 '꽃길'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퍼지고 있었는지 혹은 이 노래로 인해 그 단어가 대중들에게 좀 더 널리 퍼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노래가 음원 차트의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던 즈음에는 '꽃길'이라는 단어가 온오프라인 구분 없이 참 많이도 쓰이고 있었다. 주로 '꽃길만 걷자'라는 표현으로 구호처럼 외쳐지던 이 단어는 그 뒤로 희망찬 미래를 기리는 마음을 대변하는 아름다운 말로 자리 잡았다. 워낙에 트렌드가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인지라 요즘도 이 '꽃길'이라는 단어가 팬시하게 쓰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도 간혹 이 '꽃길'이라는 단어를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듣고는 한다. 대중의 뇌리에 박힌 한 시대를 풍미한 유행어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사례였다.
그런데 이 노래가 나온 시점으로부터 시간이 꽤 흐른 뒤 다시금 이 '꽃길'이라는 단어를 주변에서 우연히 들었을 때 이전과는 사뭇 다른 감정을 느꼈다. 그것은 관형어처럼 자리 잡은 이 유행어 속에서 불현듯 피어오르는 어떤 질문과도 같은 메시지였는데 원래의 메시지와는 상반되는느낌을 갖는, 쾌쾌 묵은 삶의 본질을 건드리는 것 같은 반항적인 물음이었다.
모두가 꽃 길만 걸으면 흙길은 누가 걸을까?
말 그대로였다. 모두가 꽃길만 걸으면 그 많은 흙길은 누가다 걸을까? 그것은 내 안에 피어오르는 무시할 수 없는 어떤 작은 의구심이었다.
노래 '꽃길'의 순수한 메시지를 덮어놓고 부정하거나, 노래를 부른 김세정 양의 인생을 걸고넘어지거나, 작곡자인 지코의 창작 의도에 딴지를 걸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꽃길만 걷자'라는 메시지가 도처에 흘러넘치던 그 어느 시절을 떠올리다 보면 문득 찾아오게 되는 의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어쩌면 그것은 걱정을 넘어 기우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지만 이 작은 질문이 나의 머릿속 한 켠을 차지하는 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다.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희망을 전하는 메시지를 구태여 그렇게 걸고넘어져야만 하는가'라고 비난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희망의 메시지에서 질척한 삶의 본질을 구태여 끄집어 내려는 이유는 30년이 조금 넘는 세월을 살아온 나에게 있어 전체 인생의 서론과도 같은 지점을 정리하는 단 하나의 깨달음을 꼽는다면 그것은 '흠결은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상황, 인생과 세상, 개인과 조직 등 인간과 자연을 포함한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객체가 영위하는 것에는 흠결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4차원의 시공간에 어떤 총량으로 존재하는 거부할 수 없는 무엇이다. 이생각은 30세를 기점으로 그 이전의 나와 그 이후의 나를 가르는 중요한 깨달음이었고 이 생각을 받아들인 이후에야 그나마 나는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그런대로 버텨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것은 개인적인 경험과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주변의 인생살이들에 대한 간접 경험이 뒤섞여 만들어진 내 인생의 중요한 명제로 자리 잡은 가치관 중의 하나였다.
꽃길의 만연이 두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꽃길이 존재하면 흙길도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꽃길만 걷는 인생이 존재한다는 것은 누군가는 흙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이 아무리 편해지고 윤택해진다고 할지라도 궂은일이란 늘상 있기 마련인데 굳은 것, 힘든 것과 무한한 작별을 고하는 것이 곧 성공의 본질이라면 그 성공을 열망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절망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사람도 덩달아 많아지는 것이아닐까. 하루 종일 눈만 치우는 사람이 따로 존재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일까 자기 집 앞의 눈은 자기가 치우는 세상이 좋은 세상일까. 흙길과는 영영 작별하는 길을 안내해주는 어른이 좋은 어른일까 아니면 기꺼이 자기가 걸어야 할 흙길은 자기가 걸어주는 어른이 좋은 어른일까? 빛은 어둠을 만들고 어둠이 있기에 빛이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의 섭리 속에서 삶을 밝고 기쁜 무엇인가로만 채우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응당 짊어져야 할 우주의 짐을 미필적 고의로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누구나 자신이 걸어야 할 흙길이 있다.
인생을 다 바쳐 꿈을 이루어낸 누군가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자신이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삶의 힘겨움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애썼던 크기만큼 정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 또한 부정할 마음이 없다. 하지만 그 애씀의 결과가 출세만이 살길이고 억울하지 않기 위해 출세해야 했던 과거의 쾌쾌 묵은 성공 방정식을 되풀이하는 것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자신이 걸어야만 하는 흙길은 응당 자신이 걸을 줄 아는 세상이 더 건강하고 바람직한 세상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