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보고싶은 대로 본다.

by 글객

나에게는 노트북이 하나 있다. 6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배터리가 한 시간도 안 가는 오래된 녀석이다. 반년 전 즈음만 해도 카페에 들고 가 글을 쓰기도 하고 개인적인 일을 보기도 했는데 마우스 등 주변기기를 들고 다니는 것이 이제는 지치기도 하고 깜빡하고 어뎁터라도 놓고 가는 날에는 허약한 배터리 덕에 채 두 시간도 못 버티는 참사를 겪어야 하는 이유로 이제는 집에서만 사용하고 있는 준 데스크톱 정도의 노트북이다. 얼마 전부터는 집에 남는 모니터를 외부 입력으로 연결하여 외관마저 데스크톱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몇 주 전에는 불편에 못 이긴 본인이 S사의 태블릿을 구매하게 됐는데 그 와 동시에 이제는 '휴대용'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 버린 어느 퇴역군인과도 같은 노트북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피식할 일이 생겼다. 평소처럼 집에 들어와 노트북을 켰는데 상태 표시줄의 배터리 아이콘이 충전 중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제는 어디 가지고 나가지를 않으니 어뎁터를 만질 일이 없었는데 생각대로 어뎁터는 노트북에 잘 꽂혀있었고 전원선도 멀티탭에 분명히 꽂혀 있었다. 멀티탭이 잘못됐는가 싶어 스위치를 켰다 꺼보기도 하고 전원선을 뽑았다가 다시 꽂아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반응은 없었다. 당장 컴퓨터를 쓸 일이 있어 킨 것이었는데 배터리도 얼마 남지 않아 작업을 시작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나는 이것이 6년이 지난 노트북이 이제 작별을 말하는 것이구나하고 생각을 했다. 혹시나 전원선이 노트북에 꽂히는 부분의 연결이 불량한가 싶어 힘을 주어 세게 눌러보았지만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해서 나는 그대로 노트북을 종료시키고 해야 할 일을 대충 스마트폰으로 처리하며 생각을 했다. '배터리 부분이 완전히 맛이 가서 이제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겠구나'하고 말이다. 예전부터 발열이 잘 되지 않았었기에 열을 많이 받아서 노트북에 무리가 갔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노트북을 새로 사야 하나? 아니지 태블릿이 있으니 이제 노트북이 별로 필요 없을 수도, 그렇다면 PC? 아니지, 글 쓰고 인터넷 하는 것 말고는 크게 쓰는 게 없는데 그냥 없어도 살 수 있지 않을까? 머릿속으로는 이미 노트북의 퇴장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마음속으로는 노트북과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6년의 세월 동안 대미지도 많이 받은 데다가 한창 때는 액정이 나가서 손 수 DIY로 액정도 갈아 준 적이 있을 정도로 고생을 꽤 많이 한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트북을 방치해 둔 채로 며칠이 지난 후 혹시나 모를까 다시 전원을 켜보았지만 여전히 똑같은 상태였다. 이제는 진정으로 보내줄 때인 것 같았다. 그래서 전원선을 뽑기 위해 선을 쭉 뽑아내는데 웬걸? 멀티탭에 꽂혀 있는 플러그가 딸려와야 하는데 책상 아래 뭔가가 차이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고개를 숙여보니 그곳에는 플러그가 뽑혀서 나뒹굴고 있는 전원선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꽂혀있다고 생각했던 멀티탭 쪽의 노트북 플러그는 사실 노트북 전원이 아니라 외장하드의 전원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에 안 쓰던 외장하드가 되는지 안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원을 꽂아두었는데 그걸 모니터 전원이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모니터 뒤로 여러 선들이 뒤엉켜 뭐가 어떤 선인지 알 수가 없었고 결정적으로는 노트북 전원선은 책상 아래에 있는 다른 콘센트에 껴 두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누군가 코드를 뽑았는지 아니면 내가 코드를 뽑았는데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같다.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충분히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판단할지라도 자기 인식의 한계를 전혀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진실은 상상 너머에 있다고나 할까? 외부의 자극과 주변인의 비판이 왜 필요한지를 알게 되는 대목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미지 출처 : https://pixabay.com/ko/photos/%EB%85%B8%ED%8A%B8%EB%B6%81-%ED%9C%B4%EC%8B%9D-%EC%BB%A4%ED%94%BC-%EA%B8%B0%EC%88%A0-1209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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