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아일체라는 말이 있다. 사물이나 동식물에 자신의 감정상태를 투영하여 표현하는 문학적 서술기법이다. 사전 상으로는 '외물과 자아,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하나 됨'이라고 뜻풀이가 되어있다. 그 뜻풀이처럼 요즘 나는 내 정신세계와 어울려 하나가 됨을 느끼는 '외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내 자전거다.
내 자전거는 작년 4월 경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 '중고나라'를 통해 구매한 중고품이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건장해 보이는 한 사내로부터 직거래를 통해 넘겨받은 녀석인데 작년에 그걸 들고 19일간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중고 치고는 상태가 썩 나쁘지 않은 녀석이었는데 종종 정비를 하긴 했지만 점차 이곳저곳이 낡아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나 드레일러(자전거의 변속기) 부분이 얼라인먼트(방향)가 틀어져 주행마다 잡음이 일고 변속이 매끄럽지 못해 한 번에 2개 단이 변속 되고는 한다. 오래된 차에서 시끄러운 엔진 소리가 나는 것처럼 이 낡은 소리로부터 기계 장치의 힘겨움이 느껴진다. 그런 것을 보면 '차량'으로 범주 되는 물체들은 시람과 참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이 자전거에 물아일체의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근래의 내 몸상태와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치료는 받고 있지만 여전히 만성의 비염과의 잔잔한 사투를 계속하고 있고 불어난 체중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숨시기도 조금 힘들다. 농담이 아니라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는 경우가 자주 있고 뜀박질을 할 경우에는 두말할 필요도 없으며 계단을 올라갈 때는 영혼이 살짝 빠져나가는 기분마저 든다. 깊이가 깊어서 출구까지 많은 양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 광화문역에서는 이제 매일 아침 무시할 수 없는 작은 공포심마저 느끼고 있다. 근래 들어 '내가 이렇게 몸이 약한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고 있다.
올해 초에는 이건 분명 몸 어딘가가 잘못됐다 싶어 종종 다니는 병원의 이비인후과에서 검진을 받고 그 과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소견으로 내분비과에서 갑상선 수치까지 검사해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약간은 어이없고도 허망하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뱉어진 의사의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뿐이었다. 이상이 없다니 다행인 건지 아니면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간에 참 안 따라주는 몸으로 매일매일을 살고 있는 중이다.어떻게 보면 바쁜 정신이 짐짝 같은 육신을 끌고 다닌다는 생각마저 든다.
작년 이 맘 때 즈음에 나는 약 25km가 되는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더불어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헬스장에 가서 다리부터 가슴 근육까지 운동도 했다. 그런 선례를 유지하기 위해 올해도 일주일에 세 번은 자전거로 출퇴근하고자 한 달 교통비를 4만 원으로 책정했지만 그 계획과는 참 다르게 빠른 속도로 떨어져 가는 교통카드의 잔고를 바라보고 있다. 몸과 자전거 중 뭐 하나는 멀쩡해도 모자랄 판에 양 쪽 모두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니 계획이 실현되기가 만무한 답보상태에 빠져있다. 어서 빨리 헬스장에 같이 가자는 사무실 모 차장님의 요청에는 자조 섞인 씁쓸한 표정으로 의사표현을 하고 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격언이 있다. 건강한 자아를 위한 다섯 가지라는 어떤 SNS 콘텐츠에는 운동을 하라는 조언이 첫 번째로 나오기도 한다. 신체라는 것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인 것일까 아니면 어떤 양한 상태를 목적 삼아 그렇게 만들어가야 하는 목적의 것일까? 분명한 것은 나는 지금 무엇인가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건 괜찮으니 좀 안 아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