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단어는 말 그대로 너무 익숙해서 그 속뜻을 잊어버리고 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가끔 그렇게 입에 착 붙어버린 단어를 곱씹다 보면 그 단어의 의미를 더 명확히 알 수 있게 될 때가 있다. 합성어인 경우 합처지기 전의 각각의 단어의 뜻을 생각해보면 합쳐지고 난 후의 단어의 뜻을 더 뿌리 깊게 알 수 있고 합성어가 아닌 경우에는 음절 단위로 한자의 뜻을 찾아보면 역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근래에는 '지름길'이라는 단어가 왠지 모르게 머릿속에 인상 깊게 남았는데, 너무도 당연한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지름길은 '지름'과 '길'로 이루어진 (지름길 = 지름 + 길) 합성어다.
지름길 = 지름 + 길
여기서 너무도 익숙해서 더 뿌리 깊은 본래의 뜻을 잊어버렸던 부분이 '지름' 부분이다. 기억이 닿는 한 나는 이 단어에서의 '지름'을 '원의 중심을 지나치는 선'을 뜻하는 수학에서의 그 '지름'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빠른 길' 아니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목적지에 더 빨리 도달하는 숨겨진 길' 정도로 추상적으로만 단어의 뜻을 생각했던 것 같다. 현재는 관련 없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졸업까지 이과와 이공계에서 공부한 사람으로서 이 '지름'이 그 '지름'인지를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은 조금은 아이러니 한 부분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원의 중심을 관통하는 선을 말하는 지름, 영어로는 Diameter
○ 지름 (直徑, diameter)
평면 위에 원의 현 중에서 원의 중심을 지나는 현을 그 원의 지름이라고 한다. 즉 양 끝점이 원 위에 있고 중심을 지나는 선분이 지름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지름길 [지름 낄] [명사]
1. 멀리 돌지 않고 가깝게 질러 통하는 길. 2.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출처 : 네이버 어학사전
'지름길'에서의 '지름'이 수학에서의 그 '지름'이었다는 사실은 한 가지를 시사한다. 지름길이란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 있어서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라는 것이다. 왠지 모르게 '지름길'이라는 단어에서는 이미 정해져 있는 정석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조금은 편법적인 방식으로 목적을 달성한다는 부정적인 어감이 일부 느껴지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지름길'이야말로 결과물을 얻어내는 가장 깔끔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사안의 본질(원의 중심)을 꿰뚫으면서도 비용과 에너지를 가장 적게 소모하는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름이 아닌 둘레를 따라 원의 반대편에 도달하는 것은 에너지를 약 1.57배(3.14(=π)의 1/2)나 더 사용하는 비효율적인 방식인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대로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나 일을 함에 있어서도 이 지름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글쓰기나 업무가 내 앞에 들이닥친 원형의 사안을 정확히 반대편으로 통과하는 일이라면 가장 효과적으로 그것을 처리하는 방법은 사안의 본질(원의 중심)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정확히 그 방향으로, 말하자면 지름을 따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중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방향 설정이 잘못되거나 어설프게 되면 문제를 해결하는 경로가 길어진다. 이런 경우에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와중에 방향 설정이 계속 수정되어야만 처음에 의도했던 결론 지점에 닿을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원의 둘레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치면 원의 반대편으로 도달하기 위해선 계속해서 나아가는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 경로는 원을 통과하는 방식 중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이 되어버린다. 글로 치면 뭔가 군더더기가 많아 본질을 흐리는 글에 해당되고 업무로 치면 별로 필요 없는 일들을 해버려 시간과 자원을 낭비한 꼴이 되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면 내용이 샛길로 빠지는 경우가 잦다. 전체 글을 이룸에 있어서 하나의 예시나 소재로 필요한 부분을 설명하는 데 너무 많은 지면을 사용해버리는 경우가 있고, 말하고자 하는 결론이 애초에 명확하지가 않아 이야기가 그때 그때의 문장이나 문단의 내용에 따라 표류하듯이 나아가지는 경우도 있다. 물론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서술해나가는 방식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본다. 그런 방식의 글쓰기에서는 글이 글을 낳는 흘러감 속에 새로운 발견이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초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경우에는 그 결론이 무엇인지를 아주 명확히 해두고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결론을 전달함에 있어 '지름길'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내용의 핵심을 잃지 않는 것과 지면 및 활자를 가장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