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군가 읽지 않았으면 좋겠는 글.

지금 순간 이런 글 밖에 쓸 수 없다는 창피함.

by 글객

기록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활자는 경제성을 띤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경제성을 띤다. 한정된 지면을 가치 있게 채우는 것. 한정된 시간을 의미 깊게 보내는 것. 글이 지면을 채우는 공간적 가치는 읽는 이 가 시간을 보내는 시간적 가치로 환원된다. 압축적이고 충격이 클수록 읽는 이의 마음에 남는다. 마음에 남는다는 것은 그것이 특별하다는 의미다. 인간의 인식은 반복되는 것에 에너지를 할당하지 않는다. 매번 똑같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유한한 기억 에너지를 할당받을 수 없다. 출근길 보도블록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기는 힘들다. 출근길 튀어나온 보드블록에 걸려 넘어졌다면 그 사건이나 보도블록의 튀어 난 모양은 조금 더 기억에 남는다. 똑같고 일관성이 있는 것은 인간의 두뇌의 메모리를 차지하지 않는다. 그것 또한 경제성을 띤다. 인간의 두뇌라는 유한성이 있는 장비. 모든 것이 특별한 것으로 넘쳐흐르면 두뇌는 과열되어 미쳐 터져 버릴 것이다.


그래서 비슷한 것은 잊는다. 그것은 정신적 생존의 문제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인식의 활성화 상태로 둘 수 있다면 한 가지에 몰입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 한계성 때문에 인간은 한순간에는 한 가지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내가 특별히 신경을 쓰는 어떤 주제를 제외하면 다른 것들은 그 순간 스위가 꺼진다. 답습할 수 있는 새로움은 한순간에 하나다. 70퍼센트는 아는 내용의 책을 읽으라는 말도 그런 점에 기인할 것이다. 모르는 것 투성이인 책은 읽어도 유의미하게 남지 않는다. 대부분은 아는 내용인데 몇 가지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는 책이 나에게 의미 있는 책이다. 그래야 그 새로움만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워야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도 그런 이유에서 기인할 것이다.


다시 글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처음부터 끝까지 특별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글은 그 존재의 가치를 잃는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런 뻔함으로 가득 찬 활자의 집합은 도처에 깔려있는 대체품으로 말 그대로 대체되기 쉽다. 그러니 차별성과 특별함이 묻어나야 한다. 과해져도 곤란한다. 생소한 것들로만 가득 찬 정보는 인간 지성의 한계로 인해 선택받지 못한다. 익숙한 것과 새로운 것이 황금의 비율로 균형을 이루는 것 그것이 글이 존재할 필요에 있어서 금상첨화를 이룰 것이다.


그러려면 글쓴이에게 적당하게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레이더가 있어야 한다. 익숙한 것에서 특별한 하나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 혹은 감성. 24시간 돌아가는 그 레이더에 고장이 생겨버리면 모든 것에서 의미를 잃는다. 글로 남길 수 없다. 특별하게 느껴지는 생각이 없으면 글을 시작할 수도 끝마칠 수도 없다. 그것은 너무 비경제적인 행위다. 시간을 버리는 행동, 체력을 버리는 행동, 물리적 자원을 버리는 행동, 정신적 자원을 버리는 행동이 된다.


예전의 나는 모든 것이 특별하게 느껴져 글을 쓰기 어려웠다. 도무지 버릴 수가 없는 활자들로 가득 찬 머릿속에서 어떤 문장을 선택하는 것은 어떤 문장은 버려야 함을 의미했다. 그래서 글 쓰는 행위는 쾌감으로 시작돼 고통으로 끝났다. 끝났다는 표현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중도에 어쩔 수 없이 매듭지어졌다고 해야 더 적절해 보인다.


지금의 나는 정반대 선상에 있다. 삶을 사는 많은 순간에서 특별함을 느끼지 못한다.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느껴지는 특별함이 없다는 것은 굳이 글로 남길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화두를 생각해내는 것도 문장을 이어가는 것도 버겁고 어렵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음에도 결국 자판 위에 손을 얹으려고 하는 것은 집착일까? 그것을 집착이라고 규정해서 더 이상 글 쓰는 일을 이어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포기일까? 그런 포기는 응원받는 포기일까, 비난받는 포기일까. 뫼비우스의 띠 처럼 돌고도는 생각.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쉽사리 규정할 수 없는 모순. 작문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한다.


이미지 출처 : https://pixabay.com/ko/photos/%EC%A0%88%EB%A7%9D%EC%A0%81-%EC%9D%B8-%EC%8A%AC%ED%94%88-%EC%9A%B0%EC%9A%B8-%ED%94%BC%ED%8A%B8-2293377/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름길의 '지름'이 그 '지름'이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