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그런 일이 있었다. 사무실 식구들과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 휴게소였다. 상황이 구체적으로 기억나지는 않으나 우리는 벤치에 모여 앉아 우연찮게 주차장의 한 차량을 보게 되었다. 뭐 때문이었는지 가물가물하나 차량 한 대가 움직거리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그런 말을 했다.
차 앞모습에서 인격이 보이네요
인격이 보인다는 나의 말에 다른 분들은 내가 그 차 운전자의 인성을 운운한 것으로 생각했다. 아마 운전을 제멋대로 한다거나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운전을 한다는 뜻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순간 나의 말은 차가 움직거리는 모양에서 사람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인다는 의미였다. 단순히 차의 움직임에서 운전자가 느껴진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하였던 것이다.
인격이란 무엇인가. 사전을 찾아보니 '인간에서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나는 성격 및 경향과 그에 따른 독자적 행동 경향'이라고 나온다. 그러니까 인격이란 일관성과 독자성 둘 모두를 내포한다. 내가 당시 말한 인격이란 그 일관성에 대한 의미였다. 차가 움직거리는 모습에서 인간이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고, 그래서 그 운전자의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인격의 기본적인 뜻은 거기에 있다. '인격이 부여된 로봇'과 같은 말을 할 때가 그런 뜻이다. 그래서 그 로봇은 훌륭한 로봇인가 그렇지 못한 로봇인가는 다음 문제이고 일단 그 로봇에서 인간의 패턴을 느낄 수 있게 됐다는 말이다.
갑자기 인격 운운하는 이유는 사실 두 번째 의미인 '독자성'에 있다. 윤리학에서는 인격이 부여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의사결정 능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 사람에게 온전한 인격이 부여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과 동시에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이나 자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인격이 나쁘다 좋다 판단하는 것이 이 단계에서의 이야기다. 그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행동양식이 도덕적인가 부도덕적인가에 의해서 그 사람의 인격의 좋고 나쁨이 판가름된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그 두 번째 단계에서 인격의 상실감을 느끼고는 한다. 나에게 독자적 판단력과 살아 숨 쉬는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존재하는가? 에 대한 물음이다.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끌려다니는 나 자신의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되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독자적 판단 기준이 상실되가면 나에게 인격이란 점점 소모되가는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닐까. 날카롭고 선명했던 가치관이 조금씩 흐려짐을 느낄 때 즈음부터, 어떤 결정을 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참고로 말하면 글을 쓰는 행위도 그렇다. 글을 쓴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결정의 문제다. 어떤 어휘를 쓸 것인지 어떤 문장을 선택할 것인지. 온통 선택의 연속이다. 그러면서 역으로 스스로의 생각을 결정하기도 한다.
황금만능주의의 도래는 이 인격이 상실되는 시점으로부터 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켜내고 싶은 가치관이 없다는 것은 주체적은 판단기준과 행동양식의 상실을 의미하고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 의미의 인격이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생생하게 살아있던 자기 자신만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상실하면 두 눈은 인류 역사상 가장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금전에 쉽게 돌아가는 것 같다. 나에게도 어느 순간 그런 모습이 보이곤 한다. 아니 꽤 많이 그런 모습을 느낀다. 인격의 논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런 모습이 많이 보일수록 내 인격이 조금씩 상실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틸다 스윈튼은 방송에서 그런 말을 했다. 성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순간이고 누구와 함께여도 언제나 동일한 내 모습이 유지되는 것을 말한다는 것. 사람을 포함한 주변의 변수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자기 자신 안에 숨 쉬는 본연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나의 외부로 나타난다는 것은 그만큼옳고 그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아마도 그런 것이 가능한 사람들에게 인격은 쓰이는 소모재가 아닌 끊임없이 불어나는 유기체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내 일에서 성공적이지 못한 것일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무언가의 외부적인 두려움. 그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주변에 너무 쉽게 흔들리고 독자적인 판단기준을 잃어갈수록 내 인격은 상실되어가고 일은 점점 더 어려워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