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얼음판을 걷는 기분을 느끼는 요즘이다. 뭐 하나 깔끔하게 떨어지는 일이 하나 없는 요즘 나는 일에 대한 적지 않은 부담감을 느낀다. 일이란 무엇일까. 일이란 다양한 요구에 대한 응답이다. 일과 상반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취미는 누군가의 요구에 대한 응답일 필요가 없다. 취미가 나 자신일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누군가로부터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취미는 많은 부분에서 자연스러운 나로 존재할 수 있다. 반대로 일은 그것이 온전히 나 자신이기 어렵다. 나를 포함해 그 일과 관련된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요구 속에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출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적절한 공통분모, 혹은 교집합을 찾아내다 보면 일 안에서 나는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 그 일부를 제외한 영역에서 나는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나로서 존재하기 어렵다. 순수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간과 억지로 요구되는 나로 존재해야만 하는 시간의 비중 차이. 그 비중의 차이가 일에 대한 만족감, 일에 대한 자존감, 일에 대한 스트레스, 일에 대한 압박감 등을 규정하고 만들어낼 것이다. 일을 한다는 것은 그 비중을 가르는 기준 선을 안정권이라 여겨지는 적절한 수준으로 끊임없이 밀어 넣는 일이다. 내 쪽으로 너무 당겨져도, 상대 쪽으로 너무 밀려가도 일은 균형을 잃는다. 균형을 잃어 어느 한쪽의 소유처럼 돼버리는 일은 그 지속성을 잃는다. 일이 한쪽의 소유가 되어버렸다는 것은 다른 쪽에서의 역할과 가치가 상실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이란 언제나 함께 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미가 있지만 그러하기에 고달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