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을 만드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좋은 삶의 태도라고들 하지만 약간의 미래지향성이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 줄 때도 있다. 일이란 내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양보다 30프로는 더 부가되고는 하는데 그 업무량의 압박감에 매몰되다 보면 일에 허덕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급해지는 마음은 나로 하여금 당장 코앞에 닥친 일에만 급급하게 만드는데 그렇게 눈앞에 펼쳐진 일에 시야를 완전히 장악당하다 보면 어떤 나아짐도 없이 계속해서 급급하게 일을 처리하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꼭 미덕은 아니다.
그래서 몇 수 앞을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미련스럽게 일을 처리해나가다 보면 내가 해치우는 일보다 쌓이는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에 있을 때는 농담 조금 보태 숨이 다 막힌다. 마치 늪에 빠진 사람처럼 말이다. 그런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아니, 애초에 그런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개별의 것으로 보지 않는, 말하자면 어떻게 그들을 시스템으로 엮여낼 것인가를 항시 생각하는, 그러 미래지향적 관점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자'는 안일한 생각은 눈덩이처럼 쌓이는 '일'을 막아낼 수가 없다. 일이 나의 행동을 강제하는가, 아니면 내가 일을 장악해 나가는가는 일을 하는 매 순간 어떻게 시스템을 만들어갈 것인가를 얼만큼 고민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시스템을 잘 만들어 왔을수록 그 시스템을 활용해 일을 장악해 나갈 수 있으며, 반대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방식을 고수해 급급하게 일처리를 하다 보면 일과 나 사이에서 주도권을 일에게 완전히 빼앗겨버린다. 그리고는 그 일 속에 파 묻힌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토마스 쿤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는 특이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기존의 패러다임에 어긋나 보이는 예외적인 실험 결과가 사실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는 이야기다. 사회인으로 경력을 쌓아가다 보면 본받을만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구별되는데 본받을 만한 사람들은 토마스 쿤의 특이점 이야기처럼 어떤 변수를 새로운 시스템으로 묶어내는 능력이 우수하다. 변수를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하여, 그것을 기존의 패러다임 속에 욱여넣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신호를 잘 감지하여 새로운 체계를 만들어낼 준비를 언제나 하고 있는 것이다. 일에 허덕인다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일을 처리하는 기존의 체계가 이미 낡아 재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언제고 시스템을 탈피해 새로운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는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일에 함몰되다 보면 그런 생각을 자주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더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어떤 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