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 리스트에 음악이 넘칠수록 나는 사라진다
접촉의 시대가 만들어내는 자아의 상실감
나를 잃는다는 것은 나의 과거를 잃는 것일까. 한 사람은 그 사람이 지금껏 쌓아온 결정의 총체다. 결정과 결정은 선으로 이어져 인생의 방향성을 만들고 경험을 이루게 한다. 결정이라는 뼈대 위에 경험이라는 살이 붙는 것이 곧 인생인 것 같다.
음악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듣는 시대다. 뭔가를 소유한다는 개념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단지 우리는 뭔가에 잠시 접촉할 권한을 구매한다. 어쩌면 그것은 모든 것이 섞이고 연결되며 새로운 것이 수시로 창조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의 큰 흐름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뭔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을 만들어내어 접촉과 뒤섞임을 만들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에서 사는 우리에게는 얼마나 고유한 것을 만들어낼 것인가 보다 서로 이질적인 것들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졌다. 그런 엉뚱함들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요즘엔 많다.
그런 시대에서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내 멜론 플레이리스트에는 그때 그때 별다른 생각 없이 무자비하게 추가시킨 노래들이 난잡하게 목록화되어있다. 낮아진 접촉의 벽이 나 자신의 정체성을 퇴색시켰다. 사람은 문화예술적 취향으로 자신의 감성적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는가. 이제는 내가 어렸을 때 어떤 노래를 들으며 자랐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 자신을 많이 잃어버린 기분이다. 과거를 잃는다는 것은 나를 잃는 일인 것 같다. CD라는 물리적 형태로 음악을 소유하던 예전 사람들은 스스로가 누구인지 더 잘 알았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