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긴 급여가 괜찮나요?

걱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당신까지 흔들 필요는 없습니다.

by 글객

종종 있는 일이었다. 나를 어엿 비 여기고 있나? 생각이 드는 질문. 그 질문은 예기치 못하는 순간 불쑥 찾아오며 그리 당황스럽지는 않지만 약간은 무례한 색채를 띤다. 메시지의 송신자가 어떤 마음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수신자의 입장에서는 대게 그렇다.


거긴 급여가 괜찮나요?


사실 그 질문이 정확히 저 문장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월급이라는 단어를 썼는지, 연봉이라는 단어를 썼는지, 혹은 '괜찮나요?'라는 표현이 아니라 '높나요?' 혹은 '어떤가요?'라는 문장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처음 보는 A께서는 확실히 나의 살림살이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아니요 낮죠. 시민단체고 비영리법인이니까요"

나는 왠지 모르지만 꽤나 당차게 그 질문에 대답을 했다.


A는 업무차 만난 어떤 기업의 담당자 중 한 분이었다. 질문의 어조가 사람을 무시하거나 하찮게 보는듯한 느낌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세상에서 만나자마자 대뜸 '당신 한 달에 얼마나 법니까?'라는 질문을 받는 것은 그 의도가 어떻든 반가운 일은 아니다. 개인의 능력과 성공의 크기가 한 달에 한 번 통장에 찍히는 숫자로 판명된다는 사실은 참 무거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A에게 당찬 태도를 보였던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는 말 정도는 해주고 싶다. 하마터면 낙심할 뻔했다. 아마도 저저번 겨울 즈음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면역이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목적으로 만났던 그 겨울의 어떤 사람은 나에게 월급이 얼마나 되냐고 참 꼬치꼬치도 캐물었었다. 그 사람은 꽤나 무례했었다.


볼일을 다 보고 헤어짐이 어울릴만한 순간에 A는 나에게 식사를 하고 가라고 했다.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타 기업이나 단체의 담당자와 식사를 함께하는 것은 별로 개운한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일정이 있어서'라는 말로 거절을 대신했다. 하지만 A는 "에이, 일정이 있긴 뭐 있어"라며 식사를 같이 하기를 재촉했다. 나는 그런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응할 만한 별다른 카드를 내놓지 못한 채 약간은 억지스럽게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우리는 인근의 낙지덮밥집에 들어갔다. 식사를 함께 하러 간 또 다른 기업 담당자 B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A와 나는 1대 1로 이야기를 나눴다. 자식이 나보다는 어리지만 아버지 뻘인 A는 자연스럽게 학업과 입시, 재수, 취업 등의 주제를 꺼냈다. "요즘 참 취업이 어렵지?", "그것도 몇 년 전이라 요즘엔 어느 정돈지 잘 모르겠네요.", "우리 아들은 연극영화과를 가려고 하는데 공부를 안 해, 재수하고 있고." "아, 저도 재수했습니다." "전공은 뭐예요?" "공대, 전기전자전파 공학입니다." "OOO가 ㅁㅁ제철에서 일하는데 그게 중간에 현대제철에 인수됐지. (자네도) 그런 데서 일하면 좋을 텐데, 워낙 취업하기가 어려우니..."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않았지만 A의 이야기에는 32살의 청년이 넉넉지 못한 급여를 받으며 일하고 있음을 개탄스러워하는 듯한 뉘앙스가 있었다. 오디오가 비지 않도록 적당한 대답과 적당한 질문을 이어가던 나는 저 마지막 문장에는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아니 내놓지 않았다가 맞는 표현일까. 머릿속에서는 제시할 답변이 있었지만 내가 전공분야에서 진로를 이어가지 못하고 연관 없는 비영리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유와 그렇게 된 연유를 설명하기엔 시간이 충분치 못했고 공간은 너무 낚지 덮밥 집이었다. 여하간 나는 졸업하던 그때, 아니 대학생이었던 거의 모든 순간 내 전공분야에서 스스로 비전을 찾지 못했기에 소위 취업 깡패라 불리던 전화기(전자, 화공, 기계)의 전공에 스스로도 감당이 잘 안됐던 SKY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알만한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다. 안 했다는 표현이 맞을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지는 좀 애매한 구석이 있다. 안 했다고 하기에는 나도 남들처럼 내 전공의 대기업 취업을 준비한 적이 있었고, 못했다고 하기에는 거기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고 지속적이지도 않았다. 돌이켜보면 갈피를 못 잡고 있었고, 나쁘게 보면 박쥐처럼 굴었다. 그런 과정을 알 길이 없는 A는 나를 취업전선에서 낙오한 라이언 일병 즘으로 느끼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 의도가 선한 의도든 부정적인 의도든 말이다.


과정이 어떻든 현재 내가 지금의 비영리법인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특정 목표의 취업 실패에 따른 차선의 선택은 아니었다. 그 선택의 순간은 나의 적극적인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끝이 날줄 모르는 내적 갈등과 수 만 번의 고민의 끝에 스스로 내린 작심이 단순히 급여의 크기로 인해 힘든 취업시장에서 결실을 얻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차선이 되는 현실은 조금 슬프다. 급여의 크기는 그것을 얻으려는 스스로의 의지와 정확히 반비례하는 것인가. 그런 관점으로만 가득한 세상 속에 살고 있고, 또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나의 현실이 한 뼘 은 더 슬퍼지는 것 같다.


급여가 낮아도 일의 가치는 있고, 급여가 낮다고 일이 하찮거나 쉬운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영역에 흐르는 물이 시냇물 흐르듯 조용할 뿐이다. 그 일이 쉽건 어렵건 또 몸에 잘 맞건 안 맞건 전공이라는 적당한 뿌리가 없는 일을 한다는 것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당위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여러모로 꽤 고달프다. 그렇기에 내 전공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그때의 선택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스스로도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그러니까 당신까지 추가로 나를 흔들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그러지 않아도 나는 내 삶이 충분히 버거우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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