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무선 이어폰을 살 때가 됐다.
불편함의 상대성이론
요즘 들어 이어폰이 부쩍 불편하게 느껴진다. 지금 쓰고 있는 스마트폰을 구매할 때 번들로 받은 유선 이어폰이다. 처음에는 이어폰 선이 잘 꼬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주머니나 가방에 한 번 들어갔다오면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서 다시 풀어낼라치면 가끔은 몇 분이나 걸린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선 이어폰이 불편하긴 하지만 그걸 그렇게 크게 느끼진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참 많이도 무선 이어폰을 쓰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똑같이 느끼던 불편함이 조금씩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특히나 헬스장에 가면 더 그런 것 같다. 런닝을 하거나 매트를 깔아놓고 스트레칭을 하면 유선이라는 거리의 한계성 때문에 꽤 불편하기는 하다. 그런 와중에 귀에 쏙 박힌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자유로이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느끼는 불편이 조금 더 크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사실 나에게도 무선 이어폰이 하나 있긴 하다. 역시 폰을 구매할 때 받은 번들용 무선 이어폰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도대체 왜 그런 발상을 한지 모르겠지만 이어폰을 사용하면 불 들어오는 구멍에서 불이 깜빡깜빡거린다. 끌 수도 없다. 무슨 스타워즈 광선검처럼 멀리서도 인지할만한 세기의 불빛이 나온다. 불빛이 하도 세서 끼고 있으면 '나도 무선 이어폰 쓰는 남자다.'라고 광고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출퇴근 지하철에서는 사용하지 않고 자전거를 탈 때만 사용했는데 쓰다 보니 양쪽 이어폰의 싱크가 틀어질 때가 많아 이건 아니다 싶어 서랍장 안쪽에 고이 모셔두었다. 심할 때는 무슨 돌림노래를 듣는 기분이 든다.
불편함이라는 게 상대적인 것 같다. 세상에 그것을 대체할만한 것이 없을 때는 불편함은 그 시절의 추억이 된다. 나도 가난하고 옆집도 가난하면 가난한 줄 모른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말처럼 부족함과 불편함은 그것이 공평할 때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고교시절 기숙사에 살며 학교밖에도 못 나가고 음식도 몰래시켜먹어야 했던 것은 똑같이 그것을 공유하는 친구들이 있기에 추억이 되지만 만약 지금의 내가 나 혼자만 그런 불편을 겪어야 되면 그것은 불편함을 넘어 어떤 부당한 차별이 될 것이다. 워크맨은 90년대의 트렌드세터였지만 지금 자라나는 세대가 워크맨에 테이프를 넣어 음악을 들어야 한다면 아마 학교에서 친구들의 눈총을 받지 않을까 싶다.
여자 친구는 반년 전 즘 이어팟을 샀다. 사실 내심은 여자친구가 출퇴근도 걸어서 15분이고 음악을 그렇게 자주 듣지도 않는데 20만 원이 넘는 돈을 이어폰에 꼭 써야 되나 싶었다. 물론 지금도 금액을 생각하면 좀 과다한 지출이라고 생각은 한다.(내 벌이를 생각하면) 하지만 그것이 점점 보편타당한 것이 돼가면서 점점 더 '그래 하나 있어야 하긴 하겠다'하는 생각이 더 커지고 있다. 사실 자기가 느낀 편함 때문인지 자기만 갖는 미안함 때문인지 여자 친구가 갤럭시 버즈를 생일 선물로 사주겠다고 했었지만 가격도 가격이고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스타일이라 만류를 했다. 그 대신 백팩 하나를 선물 받았다. 꼭 필요했어서 그런지 무척 마음에 든다.
여하 간에 그런 상대성 불편함으로 인해 조만간 나도 무선 이어폰을 하나 사야 할 것 같다. 솔직한 말로 아직 20 몇만 원 하는 건 못 사겠고 가성비 좋은 녀석 하나를 구매할 생각이다. 대신 월급이 들어올 때까지는 좀 기다려야 할 판이다. 이번 달은 지출이 많아서 통장잔고가 기준선을 밑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