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는 것은 정신이 살균되는 느낌이다. 녹슨 고철에 방청제를 뿌리듯 곰팡이가 제거되는 기분. 죽었던 생명력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 활력의 본체. 혈액 순환의 자극제. 걷는건 사는거다. 살아가는거다.
인간은 두가지로 죽어간다. 물리적으로는 노화해가거나 양분의 공급을 받지 못하거나, 병들어 기능이 썩어간다. 이것들은 신체적이고 정신의 쇄약을 불러일으킨다. 소멸의 길로 가게한다. 정신적인 고통도 마찬가지다. 정서적인 병듬도 신체를 점점 쇠약하게 만든다.
교류해야하는 이유는,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적 교감을 해야하는 이유는, 정신에도 양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육체가 input으로 양분을 공급받고 외부에 일을 하듯. 정신도 학습과 교류를 통해서 또 다른 비물질적 일을 할 준비를 한다. 그렇다. 물질적인 육체가 물질적인 양분을 공급받아 물질적인 일을 하듯. 정신은 비물질적인 양분을 공급받고 비물질적인 일을 한다.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빛이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모두 갖고 있다는 사실은 물질과 비물질이 결국은 같은 본질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정신적인 양분이 매말라가니까 지식의 맥락이,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의 여러 경우의 수를 잃어가는 기분이다. 배워야 함은 결국 살기 위해서다. 배워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신체의 안녕을 영위하는 단계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정서적인 고립은 직접적으로 신체의 쇄락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신체를 쇄릭시킴으로써, 정서적양분의 필요를 역설하는 신호다. 정신과 신체는 동시다발적으로 서로가 서로의 원인과 결과를 이룬다. 누가먼저럴 것은 없다. 동시에 존재하고, 동시에 강해지고, 동시에 쇄락한다. 어느 한쪽의 붕괴는 다른쪽의 붕괴를 초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