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을 들었다. 살아있기 위해서, 사는 느낌, 글을 쓰면 확실히 존재한다는 느낌을 다소 받는다. 생각에 집중한다는 것은 적기 위한 기본적인 태도이고, 그럼으로인해서 자신의 생각이 무형의 에너지 흐름에서 유형의 시각자료로 전환되는 것이다. 생각이 존재의 요체라는 데카르트의 뜻을 빌어보자면 글쓰기는 생명자체를 확인할 수 있는 물질로 눈앞에 드러내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적는 행위의 장점은 하나의 맥락을 뽑아내는데 있다. 머리에는 방향성이 다른 여러가지의 생각들이 혼잡하게 존재하는데 일단 어떤 실마리를 시작으로 흘러가는 생각을 적어내기 시작하면 그와 관련된 맥락의 생각이 꾸준히 연결고리를 만들며 진행된다. 물론, 선후관계를 따져보며 적어야 하긴 하지만 적어도 방사형으로 사고가 퍼쳐나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두뇌가 어떤 실타레처럼 모습하고 있다면, 적는 행위는 그 중 하나의 실마리를 잡고, 실을 쭉 뽑아내는 일이다. 하나의 구조라고 볼 수 이는 생각의 한 줄기를 뽑아내는 일이다.
사는건 생각을 정리하는 일인가? 자신의 생각은 외부에 투영된다. 차분한 사람의 주변은 정돈되고 깔끔하며, 다급한 사람의 주변은 두서없는 질서들로 가득해진다. 생각과 주변은 물리적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보이지 않는 연결체들로 이어져있다. 때문에 삶을 통제하는 것은 생각을 통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글을 쓰는 것이 그 생각을 맥락별로 구분핸내는 일이라면, 글을 쓰는 것은 삶의 본질로 삼기에 그 가치가 꽤 훌륭한 행위일 것이다. 집중력을 배양하고 일관성을 유지시켜 준다.
글쓰기는 받아적기다. 다만 내면의 내 목소리를 받아적는 일이다. 작곡가가 작곡을 하기 위한 기본 소양은 청음력이다. 현실세계에서 발생하는 소리를 귀로 듣고 어떤 음인지 아는 것은, 떠오르는 멜로디가 어떤 음계인지 알아차리고 그것이 세상밖으로 끌어내지도록 하는 능력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얼마나 많은 어휘와 문장을 탐닉했는가가 글쓰기의 자유로움을 증진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