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줄여 읽기] 다윗과 골리앗 - 제1부 3장
에필로그
반 강제, 반 자의로 재수의 길로 접어들었던 나는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1년을 보냈고 고려대학교 전기전자전파공학부에 입학했다. 경기도에 있는 3개 대학교에도 떨어졌던 학생이 1년 만에 소위 말하는 스카이 대학에 입학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극적인 시나리오 같다. 하지만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캐롤라인 색스가 그랬던 것처럼 경기 변두리 출신의 아이는 학교의 명성과 화려함을 감당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나 또한 그녀처럼 공학도였다. 전체 학점이 터무니없이 형편없진 않았지만 미국처럼 학위를 받기 어려운 환경이었다면 졸업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1학년 미적분학 수업을 처음 들었을 때 '난 이 학교에서 과연 졸업논문을 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적응은 쉽지 않았다. 프로그래밍 관련 수업이나 반도체공학과 같은 수업을 듣고 학습하는 것은 괴로움을 낳았다. 학업에 대한 부담도 부담이지만 정서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겪었다. 정서가 다르면 생각의 방향이 다르다. 내 눈에는 모두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처럼 보였다. 저들은 과연 인생의 구김살이라는 것이 한 구석이라도 있을까.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7년 동안 우리 가족은 전세 2천만원 짜리의 오래된 건물의 2층에서 살았다. 1층은 횟집이었고 집에선 간혹 바퀴벌레가 나왔다. 화장실과 세탁실이 외부공간에 있어 겨울엔 너무 추웠고 세탁기 물 내려가는 하수구가 얼어서 막히면 물을 끓여서 녹이기도 했다. 그 시절은 우리 부모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기와도 완전히 겹친다. 서로를 증오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에 달했던 다툼이 지배하던 집 안 분위기 속에서 나는 마음이 크게 다쳤다. 아마 그 상처는 죽을 때까지 회복되지 않을 것 같다. 한 때는 치유에 목말랐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평생 안고 살아야 할 무엇 정도로 여기고 있다.
내외부로 기댈 곳 없던 환경 속에서 나는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성적은 그 불안한 마음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롤러코스터를 탔다. 2점 때 초반부터 4점 때 학점까지 참 다양한 학점을 받아봤다. 하지만 성적과 관계없이 학교를 가는 것이 편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공부를 할 때가 많았다. 그건 누군가에 의해서라기보다 스스로 움츠려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의 결과였다. 난 내 전공으로 3년이나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걱정의 본질은 전공에 대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겪었던 좌절은 감당할 수 없는 환경에 스스로를 던져버린 책임일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만 취해 적합한 환경을 찾지 못했던 그 시절의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에필로그가 너무 길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