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네임벨류에 취한 선택이 낳는 비극

[책 줄여 읽기] 다윗과 골리앗 - 제1부 3장

by 글객

용의 꼬리가 낫냐 뱀의 머리가 낫냐는 논쟁은 그 단어만 다를 뿐 서양에도 존재하는가 보다. [다윗과 골리앗] 제1부, 3장 - 아웃사이더의 자아 관념에서는 '큰 물고기 작은 연못 효과'라는 개념을 통해 이름값을 얻기 위해 실력자들이 득실거리는 생태계로 뛰어드는 것의 위험성을 드러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은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훨씬 낫다고 말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높은 곳으로만 올라가려고 했다.


나는 시험을 보고 원하는 고등학교에 지원하는 경기 서남부의 비평준화지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여전히 그린벨트가 많이 남아있는 경기도 시흥시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바로 옆에 위치한 안산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시절 뭔가 학업으로 성취를 이루고 싶은 부류의 친구들은 주로 인근의 더 큰 도시에 있는 더 좋은 학교를 가려고 했다.


그런 '더 좋은 학교'들은 전통적으로 부천시안산시에 포진해 있었다. 하지만 부천지역의 고등학교 입시제도가 평준화(성적에 상관없이 지망하는 학교에 입학하는 제도, 1지망~3지망까지 결정할 수 있었다. 일명 뺑뺑이)로 돌아서면서 시흥의 중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안산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희망하게 됐다. 안산에 있는 고등학교와 시흥에 있는 고등학교들은 그 입학성적이 꽤 극명하게 나뉘었는데 시흥에서 입학성적이 가장 괜찮은 학교가 안산에 있는 평범한 학교들의 입학성적에도 별로 미치지 못하는 정도였다. 입시 성적은 중학교 1,2,3학년 내신성적과 연합고사(대입의 수능과 같은) 점수가 1:1의 비중으로 들어갔는데 내신성적은 3학년의 성적이 50프로를 차지하여 중학교 3학년 1년 간만 공부를 열심히 해도(연합고사 포함) 입시 성적을 꽤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구조였다. 안 다니던 학원까지 다니며 중학교 3학년을 보낸 나는 그 덕에 안산시에 있는 성적이 괜찮은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학기 초 입시설명회 시즌에 학교탐방의 일환으로 학교를 직접 방문해보았기 때문이었다. 멋들어진 외관과 기숙사를 겸비한 장한 학교의 모습에 반한 나는 가슴속에 입학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고 1, 2학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내신 성적과 괜찮은 연합고사 성적을 따내 해당의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학교는 안산 출신의 학생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나처럼 시흥 출신의 학생들도 다수가 있었다.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들도 거의 대부분 시흥 출신의 친구들이다. 안산과 시흥 외에는 다수의 학생을 배출한 지역이 별로 없긴 했지만 용인에서 온 학생들이 그래도 꽤 있었고 부천이 집인 친구도 있었다. 심지어 1학년 우리 반에는 인천 영흥도가 집인 친구도 있었다. 용인에서 학교까지는 대략 35km가 넘는 거리였고 부천에서는 25km, 영흥도에서부터는 45km 즈음되는 거리였다. 물론 그들이 모두 통학을 한 것은 아니다. 학교 기숙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학년이 5,6백 명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는 건 달랑 60여 명 정도뿐이었기 때문에 성적으로 기숙사에 들어오지 못한 학생들은 유료 카풀을 이용해 통학을 했다. 그마저도 도저히 통학할 수 없는 친구들은 기숙학원에 들어가거나 학교 인근 오피스텔을 얻어 지내기도 했다. 다행히 난 입학하면서부터 기숙사에 들어가 내리 3년을 지냈는데 방학을 제외하면 1년 동안 학교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70프로는 됐을 것 같다. 보통 주말마다 집에 다녀오는데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시즌이면 2주 동안을 학교 안에서 지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종종 우리는 기숙사를 교도소라 부르곤 했다.


내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당시로 말하자면 큰 물이었다. 마치 2002년 월드컵 직후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줄을지어 유럽리그로 진출했던 것처럼 안산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것은 그 시절이 가지는 트렌드적인 물결이었다. 하지만 박지성이나 이영표 선수 정도를 제외하면 해외에서 흡족할만한 커리어를 이어가지 못했던 당시의 축구선수들처럼 나 또한 꿈같았던 학교에서 그리 만족스러운 학업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나는 수시와 정시 등을 포함한 대학교 입시에서 8차례 모두 떨어졌고 반 강제적으로 재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갑작스레 10년도 더 지난 학창 시절의 이야기를 구구절절하는 이유는 [다윗과 골리앗] 1부 3장이 사례로 드는 캐롤라인 색스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 D.C. 메트로폴리탄 지역의 가장 먼 변두리에서 자란 그녀는 과학에 열정적인 학생이었다. 색스는 최상위권의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마쳤으며 졸업 전에 인근의 대학에서 정치학과 미적분학 수업을 듣고 A학점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었다. 이런 색스에게 대학입시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의 색스는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와 함께 미국의 대학들을 돌아다니는 여행을 떠났다.(나는 여행까지는 아니었고 준비된 버스를 타고 어머니와 다녀왔다.) 그녀는 다니고 싶은 대학을 추려보기 위해 여러 대학을 방문했는데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곳은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에 있는 브라운 대학교였다. 브라운 대학교는 아이비리그 가운데 하나로 명성이 높았고, 우수 학생과 뛰어난 교수들이 많은 대학이었다. 그녀는 마음이 이끄는 그대로 브라운대학교에 지원했고 예상대로 합격했다. 시 몰라 예비로 지원했던 매릴랜드 대학교는, 미국 톱 10 또는 적어도 상위 20위 대학으로 꼭 언급되는 브라운대학교에 비해 순위가 한참 떨어지는 하위권 대학이었다.


그녀가 브라운대학교에 반한 이유는 나와 비슷하다. 숫자가 말해주는 학교의 위상 그리고 영국 조지 왕조풍 느낌이 나는 아름다운 교정이 주요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도 그랬다. 전문대학을 지으려다 허가가 나질 않아 건립된 사립고등학교는 웅장한 건물, 널따란 체육관(강당)과 운동장을 자랑했다. 교문을 들어가려면 얕은 언덕을 올라야 했는데 큰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주변이 조용했고 뒤편은 얕은 산이 휘감고 있었다. 환경적으로는 면학분위기를 조성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으며 민가 속에 위치하여 주변에 마땅한 유흥거리도 없었다.


자신이 원했던 대학에 입학한 색스는 입학할 때의 그 바람처럼 흡족한 학업을 쌓을 수 있었을까? 뻔한 클리셰지만 답은 그렇지 않다. 스는 1학년 화학 과목에서는 기초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교수로부터 학점포기 및 재수강을 권유받았고, 2학년 유기화학 과목에서는 5분 만에 과제를 끝내버리는 학생들 덕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과목에서 최고 학점을 손쉽게 따내는 뛰어난 학생들은 색스와 공부 법을 공유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시험 준비를 위해 새벽까지 공부를 하다가 그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 그녀는 결국 "더 이상 이 길을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주변과 자신을 비교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비극


돋보기와 스케치북을 가지고 벌레들을 그리기 위해 풀밭을 수도 없이 기어 다녔던 과학소녀가 자신의 흥미분야에서 좌절감을 맛본 사례는 안타깝다. 하지만 고수가 득실거리는 환경에서 학업에 대한 의지가 서서히 꺾여나가는 것은 캐롤라인 색스만이 겪은 독특한 문제는 아니었다. 책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수치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한 연구 결과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대학교의 평균 입학 성적(SAT 수학 점수)과, STEM(Science, TEchnology, Math) 전공자들의 학교 안에서의 석차와, 이공계 학위를 따내는 확률의 상관관계를 보여주 것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하트윅 대학교의 STEM 전공자들은 하버드 대학교보다 평균 입학 수학 성적이 훨씬 낮다. 하트윅 대학교의 STEM 전공자 중 학업 성적이 상위 1/3인 학생들의 평균 입학 수학 점수(569)는 하버드 대학교의 STEM 전공자 중 학업 성적이 하위 1/3인 학생들(581)보다도 낮다. 책의 비유를 그대로 가져와 보면 '하트윅의 올스타'들이 '하버드의 얼간이'들보다 평균 입학 수학 성적이 더 낮은 것이다. 이를 기준으로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기본기가 더 탄탄한 하버드의 얼간이들이 상대적으로 입학 수학 성적이 낮은 하트윅의 올스타들보다 이공계 학위를 더 많이 따야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하트윅의 올스타들은 이공계 학위를 따내는 비율이 55%나 되지만 하버드의 얼간이들은 이공계 학위자 비율이 15.4%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격차가 무려 4배 가까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버드의 얼간이들이 이공계 학위를 포기하고, 캐롤라인 색스가 과학에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 것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의 사회학자 새뮤얼 스튜 퍼는 '우리는 지구적으로(globally), 즉 가능한 가장 넓은 맥락 속에서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함으로써 국지적으로(locally) 우리의 인상을 형성한다'는 설명과 함께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 색스와 하버드의 얼간이들은 자기 자신의 능력을 미국의 모든 대학생들이라는 지구적 범위로부터 따져보지 못하고 슈퍼 엘리트들이 득실 거리는 좁은 시야에서부터 도출해야만 했던 인간의 한계를 경험한 것이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미첼 창은 대학교의 SAT 평균 점수가 10점 늘어날 때마다 그 학교의 학생이 STEM 전공 과정을 끝마칠 확률은 2퍼센트 포인트씩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는데 이를 적용하면 SAT 평균점수가 150점이나 낮은 메릴랜드 대학교 대신 브라운 대학교를 선택한 순간 색스는 자신이 이공계 학위를 따낼 확률을 30퍼센트나 까먹은 샘이었던 것이었다. 색스와 하버드의 얼간이들은 이 확률의 늪을 탈출하지 못했고 어느 순간부터 강의실에서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려는 의지를 상실해버렸다. 그들은 엘리트 집단이라는 넓은 연못 속에서 겨우 겨우 헤엄쳐 다니는 작디작은 물고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작은 연못의 큰 물고기가 되기를 자처한 인상파 화가들의 성공

이러한 결과만 놓고 보면 색스가 브라운 대학교를 선택한 것은 어리석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봤을 때 우리가 그런 상황에 처하면 당장의 네임벨류 대신 장기적으로 현명한 선택을 과연 할 수가 있을까? 이 대목에서는 아스날이라는 잉글랜드 거대 클럽의 극적인 오퍼를 받아 거의 계약이 완료되었던 프랑스의 중소 클럽 을 등졌던 축구선수 박주영의 사례가 생각난다. 프랑스 리게앙의 축구클럽 AS모나코에서 나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오던 박주영은 적으로 입단한 아스날이라는 클럽에서 제대로 된 출전 기회도 받지 못한 채 몇 년을 보내다 컵대회 1골이라는 초라한 성적만을 가지고 클럽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초라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축구를 참 좋아하는 내 친구는 '내가 박주영이라도 아스날을 택했을 것 같다.'는 말을 나에게 한 적이 있다. 그만큼 네임벨류라는 것은 거부하기 힘든, 참으로 매혹적인 무엇인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런 네임벨류의 유혹을 뿌리치고 자기 발로 작은 연못으로 뛰어든 현명한 선택을 한 집단이 있다. 19세기 중후반 미술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인상파 화가들이 그들이다. 에두아르 마네, 에드가 드잔, 폴 세잔, 클로도 모네, 피에르 우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등으로 이루어진 인상파 화가들은 당시 전 유럽의 가장 중요한 예술 전람회였던 살롱 출품을 과감히 포기함으로써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형태의 회화 형식을 세상에 주목시켰다.

19세기 프랑스는 황실 미술부라는 정부 부처가 있을 정도로 회화의 위상이 높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러한 위상을 상징하는 것이 살롱이라는 예술 전람회였다. 약 6주 동안 3,000~4,000점이 전시되어 100만 명의 군중들이 관람하던 살롱은 당시 예술가들의 출세를 결정짓는 전형적인 통로였다. 살롱을 통해 인정된 최고의 작품과 그 작가의 가치는 하늘 높이 치솟았고 패자들은 축 늘어진 어깨로 다음 해를 기약해야 했다. 1866년 작가 쥘 홀츠펠은 "심사위원들은 나를 거부했다. 따라서 나는 재능이 없다. 나는 죽어야 한다."는 메모와 함께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을 했다.


이러한 사례를 바라보면 당시에 '살롱에 출품'이란 미술가들에게 얼마나 절대적인 것이었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드높은 위상만큼이나 살롱은 잔혹한 측면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첫째로는 삼천 여명의 작가들이 겨우 두세 점씩을 출품해도 거의 만점에 육박해지는 어마어마한 출품량이 문제였다. 산처럼 쌓인 출품작들을 심사위원들이 하나하나 세세하게 본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자신의 작품이 제대로 평가되기조차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예비심사에 통과하는 것만도 예술계에서는 굉장한 성과로 여겨졌다.

하지만 출품에 성공한 후에는 더 큰 난관을 만나야 했다. 살롱에 출품된 작품들은 산업궁이라는 274m 길이의 거대한 건물에 전시되었는데 바닥부터 천장까지 4열로 배치됐다. 이 중 심사위원의 만장일치 찬성을 받은 작품만이 관람객의 눈높이 선상에 걸렸으며 반대로 천장에 전시된 작품은 대중의 관심을 받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살롱은 거대한 연못이었고 그 생태계에서 큰 물고기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살롱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태도는 새로운 형식의 회화를 제시하려는 인상파 화가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 살롱에 출품하는 작품은 올바르고 전통적인 원근법을 기반으로 정밀하게 마무리되어야 했으며 내용은 프랑스의 역사 또는 신화의 장면을 재현하는 것이어야 했다. 이러한 확실한 출품 규정은 흐릿한 형체를 통해 일상생활을 그리는 인상파의 회화와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었다. 인상파 화가들은 전쟁터 같은 살롱에서의 경쟁을 버텨내는 문제 이전에 예술가로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작품을 그려야 한다는 고충까지 안고 있었던 것이다.


에두아르 마네 - 풀 밭 위의 점심식사


인상파의 화가들은 자신들의 아지트와 같았던 카페 게르부아에서 살롱이 갖는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끝없는 논쟁을 펼쳤다. 그리고 파격적인 결론을 내렸다. 카퓌신의 대로변에 있는, 어느 사진작가가 막 이사를 떠난 빈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전시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1874년 4월 15일에 시작돼 약 한 달 동안 계속된 인상파 전시회에는 165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이는 인상파 화가들이 자신이 원하는 만큼 작품을 출품한 수치였다. 화가들은 적게는 세 점에서 아홉 점까지 작품을 출품했는데 자신의 양 껏 작품을 전시해도 그 규모가 크지 않아 관람객들이 모든 작품을 충분히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살롱에서는 수많은 그림 더미 속에 묻혔을 작품들이 인상파 전시회에서는 대중에게 제대로 보인 것이다.


독자적인 전시회 개최를 통해 세상에 소개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들이 기존의 예술 질서를 단숨에 파괴할 만큼 처음부터 엄청난 파급력을 만들어냈다거나 긍정적인 관심만을 얻어내지는 않았다. 평단으로부터는 '권총에 물감을 장전하고 캔버스에 발사한 작품'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작은 연못은 외부의 경멸을 차단하는 독립적인 공간이었고 혁신과 개성을 마음대로 발휘할 수 있는 안전한 보금자리였다. 새로운 창작의 자유를 얻은 인상파 화가들은 오래지 않아 외부세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고 현대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냈다. 사진작가가 막 이사를 떠난 작은 공간에 전시되었던 그들의 작품은 오늘날 10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부여되고 있다.



현명한 선택이 운명을 가른다.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캐롤라인 색스와 인상파 화가들은 서로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캐롤라인 색스에게 브라운 대학교는 인상파 화가들에게 살롱이었고, 인상파 화가들의 새로운 전시회 개최는 캐롤라인 색스에게 매릴랜드 대학교였다. 인상파 화가들은 큰 물고기가 되기 위해 작은 연못에 뛰어들어가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캐롤라인 색스는 큰 연못으로 뛰어드는 것이 작은 물고기가 되기를 자처하는 사실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인상파의 화가들은 자유와 명성을 동시에 얻었지만 캐롤라인 색스는 명성의 무게로 인해 학업의 자유의지를 잃어버렸다.


국민들의 평균 행복도가 높다고 공헌하는 스위스, 덴마크, 네덜란드 등의 나라들과 국민들이 별로 행복하지 못하다고 묘사되는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의 나라 들 중 어느 쪽이 자살률이 더 높은 집단일까? 정답은 이른바 행복한 나라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사회에서는 아주 작은 불행도 심각한 우울의 씨앗이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꽤 불행하다고 판단되는 사회에서는 내 불행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주변과 자신을 비교하는 인간의 심리적 한계 속에서 환경이란 한 사람의 심리적 상태를 규정하는 아주 결정적인 요소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환경 속에 나를 가져다 둘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한 사람의 운명 전체를 가를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인상파 화가들의 과감한 결정이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것처럼 말이다.


자꾸자꾸 높은 곳으로만 올라가는 것은 정답일까? 1부 2장이 말했던 것, 부유함의 증가가 어느 시점부터는 양욱의 어려움을 만들어 내고, 학급의 규모가 필요 이상으로 작아지면 학업 성취도가 오히려 떨어졌던 것처럼 바깥에서는 윤택하게만 보이는 것들 안에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에 대한 부작용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을 선택할지 아니면 고요하고 작은 연못을 선택할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우리에게는 그 선택들이 가지고 있는 리스크와 기회가 무엇인지를 아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는 어디까지인지, 남들은 어리석다 말하는 새로운 도전이 주는 기회는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서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에필로그

반 강제, 반 자의로 재수의 길로 접어들었던 나는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1년을 보냈고 고려대학교 전기전자전파공학부에 입학했다. 경기도에 있는 3개 대학교에도 떨어졌던 학생이 1년 만에 소위 말하는 스카이 대학에 입학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극적인 시나리오 같다. 하지만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캐롤라인 색스가 그랬던 것처럼 경기 변두리 출신의 아이는 학교의 명성과 화려함을 감당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나 또한 그녀처럼 공학도였다. 전체 학점이 터무니없이 형편없진 않았지만 미국처럼 학위를 받기 어려운 환경이었다면 졸업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1학년 미적분학 수업을 처음 들었을 때 '난 이 학교에서 과연 졸업논문을 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적응은 쉽지 않았다. 프로그래밍 관련 수업이나 반도체공학과 같은 수업을 듣고 학습하는 것은 괴로움을 낳았다. 학업에 대한 부담도 부담이지만 정서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겪었다. 정서가 다르면 생각의 방향이 다르다. 내 눈에는 모두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처럼 보였다. 저들은 과연 인생의 구김살이라는 것이 한 구석이라도 있을까.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7년 동안 우리 가족은 전세 2천만원 짜리의 오래된 건물의 2층에서 살았다. 1층은 횟집이었고 집에선 간혹 바퀴벌레가 나왔다. 화장실과 세탁실이 외부공간에 있어 겨울엔 너무 추웠고 세탁기 물 내려가는 하수구가 얼어서 막히면 물을 끓여서 녹이기도 했다. 그 시절은 우리 부모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시기와도 완전히 겹친다. 서로를 증오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에 달했던 다툼이 지배하던 집 안 분위기 속에서 나는 마음이 크게 다쳤다. 아마 그 상처는 죽을 때까지 회복되지 않을 것 같다. 한 때는 치유에 목말랐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평생 안고 살아야 할 무엇 정도로 여기고 있다.

내외부로 기댈 곳 없던 환경 속에서 나는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성적은 그 불안한 마음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롤러코스터를 탔다. 2점 때 초반부터 4점 때 학점까지 참 다양한 학점을 받아봤다. 하지만 성적과 관계없이 학교를 가는 것이 편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공부를 할 때가 많았다. 그건 누군가에 의해서라기보다 스스로 움츠려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의 결과였다. 난 내 전공으로 3년이나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걱정의 본질은 전공에 대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겪었던 좌절은 감당할 수 없는 환경에 스스로를 던져버린 책임일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만 취해 적합한 환경을 찾지 못했던 그 시절의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에필로그가 너무 길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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