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것을 규정하기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극단적인 반대의 상황을 상정해 보는 것이다.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다. 때문에 구속의 크기를 가지고 자유를 논할 수 있다. 뭐랄까. 말하자면 자유는 구속분의 1인 것이다.
자유 = 1/구속
구속의 크기가 한없이 커질수록 자유는 끊임없이 작아지고, 구속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자유는 끊임없이 증가한다. 얼마큼 구속으로부터 해방됐는가가 자유의 크기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지적 자유란 뭐라고 논할 수 있을까. 만인의 공통분모 돈을 가지고 헤아려보면 조금 편할 것 같다. 무한한 돈은 경제적 자유를 부여한다. 그건 다르게 말하면 빈곤이란 엄청난 구속이라는 이야기다. 빈자가 되면 맛있는 걸 먹을 수 없다. 향유할 수 있는 맛의 깊이를 제한받는다. 빈자가 되면 또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다. 물리적인 생활 반경을 극도로 제한받는다. 빈자가 되면 그런 식으로 많은 것을 제한받게 된다.
지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부의 크기가 경제적 자유를 결정짓는 것처럼 지식의 크기가 지적 자유를 결정짓는 것 같다. 지식이 없으면 표현에 대한 구속을 마주한다. 지식은 곧 언어이자 문장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언어끼리의 연결, 문장끼리의 연결인데 그것이 무궁무진해질수록 무한한 표현의 능력이라는 자유를 얻는다. 지식이 많은 사람은 내면에 언어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언어와 문장을 많이 가지고 있고 그것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많이 파악할수록 지적 자유로움은 증대된다.
지식이란 곧 책이다. 책을 논하지 않고 지식을 논하기 어렵다. 책이 곧 언어고, 책이 곧 지식이다.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가 난무하는 시대이지만 결국 그런 것들도 책의 변주, 책의 파생상품일 뿐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정신적 독립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만 한다. 표현력과 어휘력의 빈곤에 빠지는 순간이 '뭔지 알 것 같지만 설명할 수 없음'이라는 잔인한 구속을 맞이하는 시점이다. 그리고 그 구속은 꽤나 고달프다.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어도 그것을 표현해내지 못하면 결국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그건 한 사람의 자존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몇 달 전부터 내 책상 왼편에는 조금씩 읽다만 책들이 높이 쌓여있다. 온라인에서 눈길을 끄는 제목을 볼 때마다 쇼핑하듯 책을 배달시킨 결과다. 히지만 그 행동이 무색하게 마치 주점에 킵해둔 술처럼 표지가 열리길 기다리고만 있다. 직장이라는 거대한 구속을 봇짐처럼 짊어지고 사는 보통의 삶에서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의 지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 이유는 점점 더 지적 자유로움이 사라져 가는 스스로를 발견하기 때문인 것 같다. 직장인의 고달픔이란 힘겨움이 아닌 상실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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