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는 건 오랜만이다. 아니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게 실로 오랜만이다. 마치 인생의 끝자락을 걷는 기분이었던 4년 전 29살, 8박 9일 동안의 홀로 여행이 남긴 교훈은 혼자 하는 여행이 진정 여행이라는 것이었다. 세상과의 싸움에서 잠시 벗어나 아주 소소한 선택부터 중요한 결정까지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유로움이란 이런 것이구나를 알게 된다. 그 이후부터 나는 함께 떠나는 것을 놀러 가는 것으로, 홀로 떠나는 것을 여행이라고 규정하고 산다. 물론 남들에게까지 그런 구분을 구태여 설명하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감성적인 영역이라 직접 체험해보지 않으면 그 느낌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인생이 여행이고, 여행이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내 주변에도 그런 분이 계셨다. 그분이 여행에 관해서 했던 말 중 명언처럼 내 뇌리에 박혀있는 말이 한 구절 있는데, 그건 '짐은 짐이야'라는 말이었다. 짐은 짐이다. 참으로 당연한 말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삶의 진리가 담겨 있었다. 짊어질 수 있는 만큼의 것만이 나의 것, 혹은 내 인생의 것이라는 교훈. 그래서 짐을 싸는 것부터가 그것이 곧 인생인, 여행의 시작이다. 여정의 경쾌함을 방해할 만큼의 짐은 말 그대로 짐짝이 되고 만다.
일상에 지쳐 일주일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휴가를 냈다. 여행 전 주말의 시간을 약속과 개인적인 일들로 보내다가 일요일 저녁이 다 되어서야 여행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나는 짐을 쌀 때 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바닥에 뿌리면서 짐을 싼다. 방금 한 행동도 자꾸 까먹는 형편없어진 기억력을 보완하기 위한 작전이다. 그래야 뭔가가 빠지지 않았는지 확인하기 쉽다. 그리고 그렇게 펼쳐 놓아야 물건을 넣을 순서를 생각하기도 쉽다. 덕분에 안 그래도 좁은 나의 작은 방은 침대와 방바닥 위에 이런저런 짐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짐들은 그래 봐야 옷가지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배낭이 꽉 차 잘 닫히지가 않았다. 여기 넣었던 짐을 저기에 넣어보고 또 저기 넣었던 짐을 여기 넣어 보면서 빈 공간을 없애 나갔다. 그렇게 배낭의 여러 공간들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사용하여 짐을 집어넣어도 몇 가지 물건이 들어갈 자리가 보이지 않았는데 얼마 전 구매해서 아주 잘 입고 있는 조거 팬츠 중 카키색의 것과 수건 한 장이 마지막 남은 배낭행 티켓을 두고 경합을 벌였다. 수건은 이제 어지간한 숙소에는 다 있는 품목이니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여행의 짐을 쌀 때면 언제나 '혹시 모르니'하고 생각을 하게 하는 품목이다. 샴푸와 비누 등 치약 칫솔을 제외한 세면용품은 이미 안 가져가기로 결정했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수건은 하나 가져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결국은 수건을 포기하기로 했다. 혹시 추울 때를 대비하여 꺼내본 2018년 암스테르담 데카트론(자전거 용품샵)에서 샀던 바람막이와 역시 근래에 구입하여 아주 잘 입고 있던 쿨에어 7부 티셔츠 남색 한 장은 예선에서 탈락했다. 모든 걸 가질 수 없다는 인생의 진리를 느끼게 하는 것만 같은 여행의 시작 점에서 제법 여러 물품들을 포기했지만, 무언가를 포기해도 인생은 여전히 무거운 것이라고 말하듯이 다 싼 배낭은 그래도 제법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