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과 사람 사는 이유. 그리고 보이스피싱

[ 제주는 언제나 나를 품는다_episode_6 ]

by 글객
7/28(화) - DAY 2_2


#15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섬에 들어갈 때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왜 구태여 이렇게 오가기 힘든 곳까지 들어와서 살게 되었을까. 삼시세끼 어촌편을 보다 보면 저런 작은 섬에도 사람이 산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되도록 챙겨보려고 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데 제일 최근에 방영한 시즌5에서는 코로나19를 의식해서인지 거의 무인도에 가까운 섬에 들어가 생활하는 출연진들의 모습을 방송을 통해 보여주기도 했다. 언젠가는 나도 그런 여행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카페를 나와 선착장에 도착한 시점. 나는 비양도로 향하는 12시 배, 천년호에 몸을 실었다. 20여 명 정도가 되는 탑승객은 관광객과 현지인이 섞여있었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할머니들이었다. 선박 관계자로 보이는 6,70대 즘의 한 남자는 부두에서 배에 오르는 할머니들의 손을 익숙한 듯이 잡아주었다. 실내를 가득 채우면 100여 명이 탈 수 있을 것 같은 규모의 배에 사람들이 모두 착석하자 섬으로 우리를 안내해줄 천년호의 선장이 마이크에 입을 대고 인사말과 숙지사항을 을퍼주었다.


" 섬에서 다시 나오실 때는 돌멩이 같은 건 가져오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그 돌멩이는 비양도 밖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그냥 돌멩이입니다. 비양도에 그대로 있어야 돌에 전복도 붙고 조개도 붙고 하니 멋진 풍경 보시고 돌아올 때는 마음만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그럼 즐거운 여행되시기 바랍니다. "


안내 방송이 마무리되고 출발시간이 되자 천년호는 굉음을 내며 비양도로 향하기 시작했다. 비양도의 돌들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존재하고 있는데, 나라는 사람은 과연 지금 존재해야 할 곳에 존재하고 있는지. 를 가슴 깊이 생각해보기도 전에 천년호는 생각보다 빨리 우리를 비양도에 데려다주었다.



#16


배는 삽시간에 비양도에 도착했다. 부두를 출발하여 또 다른 부두로 향하는 동안 창문 밖으로 보이는 비양도는 점점 더 켜졌다. 배에서 내려 섬안으로 완전히 들어가기 전 바라본 비양도는 섬 전체가 봉우리처럼 보일 정도로 평평한 땅이 적었다. 제주도 동쪽 바다에 있는 우도에 비하면 크기도 더 작고 발 디딜 땅도 많아 보이지 않는 그런 섬이었다. 하지만 방파제를 따라 섬 안쪽으로 더 들어간 후에는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익숙한 파란색 주소판이 여행객들을 맞이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 세련돼 보이지 않는 낡은 자전거를 대여해주는 카페가 배에서 내린 방문객들을 제일 먼저 맞이해 주었고 그 뒤로는 식당들이, 그리고 그보다 더 안쪽으로는 민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애초부터 비양봉 정상에 오를 생각이었기 때문에 민가들이 자리 잡은 섬 안쪽으로 바로 돌입했다. 그런데 돌담길들을 지나 수풀이 울창한 곳까지 들어가니 웬 안내판 하나가 보였다. '관계자 외 출입 불가' 그 안내판 뒤로는 나무데크의 길들이 벌판을 가로지르며 봉우리 정상까지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출입을 금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전진할 수가 없었다. 뭔가 길을 잘 못 든 듯하여 나는 별 수 없이 길을 다시 돌아나갔고 다른 관광객들이 이미 걸어가고 있던 해안길을 따라 그냥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길을 따라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니 부두에서 멀어질수록 관광객끼리의 간격은 멀어지고 민가는 점점 사라져 갔다. 그리고 점점 인기척이 없어졌다. 고불고불하게 계속 이어지는 길을 기준으로 왼편에는 봉우리가 솟아올랐고 오른쪽에는 구멍이 송송 뚫린 검은 돌들이 지천에 깔려있을 뿐이었다. 그 돌들이 끝나는 곳에는 바다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명확한 구분이 마음에 들지 않기라도 한 듯이 짙은 비린내를 풍기는 미역들이 여기저기 널려져 있었다. 미역들은 강한 바람에 바닥에서 조금씩 굴러다니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발걸음을 이어가니 그 미역을 따고 정리하는 할머니들이 여기저기서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17


이런 작은 섬까지 들어와 사람이 사는 이유를 다시 되물어 본다. 더 구체적으로 이런 섬까지 사람들이 들어와 거주지와 사회를 만들고 정착하며 사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사실 답은 간단하다. 그곳에 먹고살만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가 움직이는 것에는 뭔가 그럴듯한 명분과 숙명이 있는 것 같지만 본질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깔려있다. 경제는 곧 인간의 심리이며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말은 그냥 있는 말이 아닐 것이다.


수십억 년 전 우주의 최초에는 빅뱅이 있었고 응축된 에너지가 폭발하며 모든 에너지와 모든 물질의 근본이 순식간에 전 우주로 펴져나갔다. 물질과 세상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물리력에 의해 그 근본들은 적당히 뭉치고 흩어지면서 은하와 별을 만들었으며 또 행성을 만들어 갔다. 폭발이라는 행동으로 에너지를 있는 힘 껏 쏟아내는 태양이라는 별에 운 좋게 적당한 거리를 두었던 지구에는 물이 전부 마르지도 전부 얼지도 않는 환경이 조성됐고 그 대양 속에서 그 전의 물질과는 조금 다른 유기체가 잉태되었다. 유기체. 그것은 곧 생명이었고 생명의 진화는 곧 인류를 탄생시켰다. 아프리카 동부에서 발생한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는 조금씩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한정된 공간에 먹거리가 부족해짐에 따라 점점 지구 전체로 퍼져나갔다. 태평양 한가운데의 섬들에도 사람이 사는 이유. 모든 것은 그것이 발생한 중심에서 바깥으로 끊임없이 퍼져나간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탐험했고 엘론 머스크는 화성을 추종한다.


연변 기행을 하면서 들었던 연변 과학기술대학 곽승지 교수님의 강의가 생각난다. 조선족들은 왜 지금의 한반도를 떠나 연변 땅에 정착해 살게 된 것일까. 이유는 역시 단순하다. 북녘의 땅이 농작물을 재배하며 살기엔 너무도 척박했기 때문이다. 영토와 국경이 모호하던 조선말과 일제강점기 시대 즈음 북녘의 조선사람들은 그나마 좀 더 땅이 비옥한 간도로 넘어가 농작물을 재배하며 살기 시작했고 출퇴근하듯이 넘나들던 간도 땅은 점차 몇 달에 한 번씩 본가로 돌아와야 하는 일터이자 임시 거주지가 되었고 이윽고는 영원한 정착지가 되어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기초적인 원동력은 바로 먹고 삶의 문제다.


아마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저기 바다 건너섬에 갔더니 미역과 보말이 참 많더라는 말을 들은 사람들이 비양도로 넘어와 해산물과 해조류를 잡아다 생활하고 그렇게 출퇴근하듯 왔다 갔다 하던 섬에 처음에는 몇 주씩, 그리고 몇 달씩, 이윽고는 오고 감의 불편함으로 인해 아예 눌러앉고 살게 된 것이지 않을까. 그렇게 하나 둘 눌러사는 사람이 늘어나며 마을을 이루고 식당이 생기고 결국에는 관광객마저 오가는 섬이 된 것이 아닐까. 미역 내가 물신 나는 해안길을 따라 걸으며 지식과 경험과 상상을 보태 내 마음대로 그들의 삶을 추론해 보았다.



#18


본격적으로 해안가를 따라 걸으며 이런 개똥 철학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전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었다. 평범한 안부전화 일 줄 알았던 엄마의 전화. 그러나 수화기 너머로 전해져 오는 목소리는 조금 숨 가쁘게 들렸다.


" 아들 별일 없지? 어휴... 아니 너한테 카톡이 왔는데 핸드폰이 고장 났다면서 노트북으로 연락하고 있다는 거야. 그러면서 누구한테 급하게 돈을 보내줘야 한다고 600만 원을 달라는 거야.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게 형 카톡이었는데, 그게 진짜 형 카톡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더라구... "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차근차근 상황을 살펴보니 엄마는 소위 말하는 보이스피싱을 당한 상태였다.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뿜는 큰 한숨소리에서 엄마가 얼마나 당황했는지가 여실히 느껴졌다. 그 당황스러움으로 인해 이야기는 중구난방 하게 전달되었지만 다행히 엄마는 진짜 돈을 보내지는 않았었다. 형까지 결부된 삼각의 보이스피싱 사태를 전해 들은 뒤, 나는 형과 통화를 해 별일이 없는지 확인을 했고 다시 엄마와 통화해 상황을 정리한 뒤 다시 형과 통화하며 퍼즐을 맞췄다. 복잡한 상황이었지만 여하튼 엄마가 실제로 돈을 보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다행인 일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경찰서에 신고라도 해두라고 일러주고는 다시 해안길을 걷기 시작했다.


거의 비양도에 도착하자마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왠지 모르게 의심쩍었다. 개인정보가 심하게 유출되기라도 한 걸까. 실제로 노트북을 지참해 여행길에 오르기도 했고 우연일지도 모르겠지만 뭔가 세상과 조금 단절되는 '섬'이라는 장소에 상륙하자마자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이 조금 소름 돋게 다가왔다. 모성애라는 취약한 감정을 이용해 누군가를 갈취하고 평화스러운 여행의 시간에 심한 균열을 일으킨 그 사람, 혹은 그 무리는 과연 누구일까. 그들은 왜 그런 짓거리를 하기 시작했을까. 그것도 그들 나름의 먹고 삶의 문제일까? 먹고 삶의 문제이면 용서할 수도 있는 일일까? 아무리 먹고 삶의 문제라고 해도 인류라는 문명화된 집단의 일원으로서 절대 행해서는 안될 일도 있는 것이다. 제사를 지내며 귀신 밥이랍시고 고수레를 행하는 것과 새끼라는 이유로 기껏 잡은 물고기를 다시 풀어주는 낚시꾼들의 관습 속에는 우주를 생각하는 인간의 양심과 인간 삶의 미덕이 깃들어있다. 그들에게 그런 염치가 있었다면 누군가를 등쳐먹으며 영위하는 그런 삶을 과연 선택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19


해안가를 산책하고 비양봉을 올랐다가 섬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부두가 쪽으로 내려왔을 때는 돌아가는 배를 다시 타야 하는 시간이 40여분 남은 상태였다. 음식이 바로 나온다면 식사를 하기에 딱 맞는 시간이라 돌담길 옆에 보이는 한 식당에 들어가 메뉴를 둘러보다가 보말죽을 시켰다. 최근 들어 계속 목이 건조하고 마르는 기분이었던 터라 따뜻하고 국물이 있는 음식이 조금 당겼다. 초록의 보말죽은 담백하고 고소하여 한 숟갈씩 후루룩후루룩 넘기는데 부담이 없었다.


함께 나온 반찬 중에는 미역무침이 있었다. 해안가를 돌 때 만났던 미역은 잠시 내렸던 마스크를 다시 착용할 정도로 깊은 비린내를 내뿜었지만 사람의 손을 거치고 무쳐진 미역은 식욕을 돋게 하는 새콤한 향으로 변해있었다. 그 새콤함은 보말죽과 함께 먹기에 딱 좋은 산미와 달콤함이었고 섬을 한 바퀴 도느라 땀을 흘리고 체력을 소진한 여행자에게 안성맞춤인 맛이었다.


식사까지 마친 나는 부두 근처에 있는 팔각정에 가방을 벗어둔 채 조금 쉬었다. 그렇게 조금을 기다리니 방문객들을 다시 육지로 보내줄 배가 도착했다. 출발할 때 할머니들을 부축하던 관계자는 이번에도 할머니들의 손을 잡아주었고 "아이고 많이도 따셨네"라는 너스레를 떨며 그녀들을 반겨주었다. 섬에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섬을 빠져나갈 때는 도선 대합실에서 작성한 신고서와 티켓을 승객들로부터 걷고 있었다. 배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빠른 시간에 육지에 도착했고 또다시 할머니들을 부축하던 관계자 분에게 나는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선장과 아저씨를 제외하면 모든 승객들 중 배에서 가장 마지막에 내린 사람이 바로 나였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도 됐지만 나는 다시 걸어가기를 택했다. 목적지가 한림항에서 도선 대합실로 바뀌었던 덕에 돌아가는 길은 배를 타러 올 때보다 조금 짧아져 있었다. 땀을 흘린 대로 흘린 나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샤워를 했는데 잘하지 않는 찬물 샤워를 할 정도로 그 날의 날씨는 습하고 더웠다.


방에 들어오니 현관 앞에는 새 수건 넉 장이 포개져 있었다. 비양도에 다녀온 사이에 스텝이 다녀간 모양이었다. 첫날에 썼던 수건들 보다는 조금 더 새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올이 더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흡수력이 훨씬 더 좋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전날의 것보다는 더 뽀송한 느낌이어 벌써 상쾌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옷을 벗고 화장실의 거울을 보니 목 위와 얼굴이 더 까매진 듯 보였다. 티셔츠 목 부분의 라인을 기준으로 위아래가 선명하게 나뉘어 있었다. 샤워기가 뿜는 물이 그 경계로 쏟아지자 목이 따끔따끔하기 시작했다. 잘 바른다고 바른 선크림이었지만 피부건강과 미감을 위해 조금 더 성의껏 발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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