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여행을 준비할 때, 아니 그보다 조금 더 전 머릿속에 여행에 대한 생각을 문득문득 떠올리고 있던 때에는 그런 구상도 해보았다. 아주 인적이 드문 제주의 시골 중 시골로 들어가 토속적인 느낌의 숙소에서 여행기간 내내 스스로 밥을 지어먹으며 생활하는 것. 여행이라기보다는 진정 삼시세끼의 차승원유해진 브라더스처럼 인적이 드문 곳에서 온전히 먹고 숨 쉬는 것에만 집중하며 사는 쾌락적인 삶. 내가 어떤 것을 느끼며 사는지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각박하게 흘러가는 서울의 삶 속에서 그런 정적인 삶은 어쩌면 쾌락이나 사치에 가깝다. 조금은 그런 사치를 꿈꿨다.
요리를 하는 것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중 백미는 단연 칼질이다. 모든 요리는 재료를 손질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고기나 생선, 닭 등의 고기류는 보통 시장에서 구매해 올 때 손질이 된 상태로 가져오기 때문에 재료 손질은 보통 야채를 다듬고 썰어내는 것을 말하게 된다.
파, 당근, 감자, 오이, 배추 등의 식재료를 원하는 형태의 원하는 크기로 썰어내는 것에는 굉장한 쾌감이 있다. 재료를 가르는 칼이 도마를 만날 때 발생하는 파열음을 일률적으로 생산시켜내면 재료는 비슷한 크기로 나누어지며 도마를 채우게 된다. 그렇게 손질이 된 야채들을 중식도같이 날이 넓은 칼을 이용해 스테인리스 볼이나 깊이가 있는 그릇에 한 움큼씩 담아내면 그 그릇이 조금씩 찰 때마다 마치 작은 부자가 되어 가듯이 흡족한 마음이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내 생각에 요리라는 것은 굉장한 종합예술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촉각, 미각, 후각, 시각, 청각 등 인간의 오감을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음식을 맛있게 만들었더라도 담음새가 좋지 못하면 먹는 사람의 식욕은 감퇴된다. 반찬을 담을 때에는 양을 충분히 하여 탑을 쌓듯이 쌓아 올리는 것이 좋은데 그래야 입체감이 생겨 풍족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식사의 시작부터 그릇의 바닥이 보이는 것은 허기를 달래야 하는 사람에게 그리 좋은 기분을 선사해 주지 못한다. 또한 국물이나 양념을 그릇에 너무 많이 묻히는 것도 곤란한다. 화룡정점이라고 그 하나가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를 한 모든 노력을 앗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음식은 눈으로도 먹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시각도 음식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감각이다.
사실 요리라는 게 1인분을 하는 것은 어렵기도 하고 비효율적이기도 하기 때문에 4인분 정도는 해야 조리를 할 맛이 난다. 그런 의미에서 그런 여행도 재미있을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적당히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누가 먹게 될지 모르지만 오후 내내 4인분의 음식을 맛깔나게 준비하는 여행. 여행이지만 또 다른 여행자를 위하는 여행. 숙소로 들어오는 길목에 '밥 한 끼 하고 가세요'라는 간판과 그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티켓을 걸어두는 이상한 숙소. 손님이 아무도 없으면 준비한 음식이 몽땅 다음날의 아침이 되는 묘한 형태의 여행 말이다.
언젠가는 게스트하우스를 차리고 싶다. 사람을 재우는 게 목적이 아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목적의 게스트하우스. 여행을 왔다가 음식이 맛있어 눌러앉게 되는 게스트하우스. 음식이 맛있어 여행은 안 하고 게스트하우스에만 있는 게스트하우스. 재밌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