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T TIME BABY

[ 제주는 언제나 나를 품는다_episode_8 ]

by 글객
7/28(화) - DAY 2_4


#21


언젠가는 그런 여행 혹은 그런 떠남을 실현하고 싶었지만 중요한 건 당장의 허기였다. 하루 종일 걸어 다녔던 날이기에 샤워를 하고 정비를 하니 심히 배가 고파졌다. 식당이 많지 않은 시골 동네라 비양도에서 돌아오며 끼니를 챙기거나 먹을 걸 사들어올까도 생각했지만 아직 시간도 일렀을뿐더러 오는 길에 적당한 식당도 크게 눈에 띄지 않아 일단은 숙소로 돌아온 상태였다. 돌아오는 길은 땀이 비 오듯 했기 때문에 어서 빨리 숙소에 돌아가 샤워를 하자는 생각도 있었다.


여하 간에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근처의 식당을 찾아보았다. 전날과 같은 헛걸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번에는 식당의 정보를 더 꼼꼼하게 확인하였다. 쉬는 날은 언제인지, 영업은 언제인지, 걸어서 얼마나 걸리는지 등의 객관적 정보와 함께 어떤 종류의 음식을 파는 곳인지까지 고려한 결과 도보로 15분 정도 걸리는 해안가의 한 라멘집에 가기로 했다. 식당 영업은 8시 까지였는데 휴무일은 매주 수요일이었다. 여덟시까지는 한 시간 정도 남아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여유가 있진 않아도 급히 가서 먹고 올 정도는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주소지에 도착하니 찾아보았던 정보와는 다르게 가게는 문을 닫은 상태였다. 뭘까 싶어 출입문 쪽으로 더 다가가니 가게는 실내가 어두컴컴했고 투명한 출입문을 통해서 주인이 손수 적어 놓은 알림글이 보일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금일 조기 영업 종료합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22


맛있는 저녁을 먹을 운명이 아니라는 듯 여행의 두 번째 저녁에 찾은 음식점도 문을 닫은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을 검색할 때 라멘집 외에는 당장 마땅한 음식점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다가 전날 못 간 카페 겸 식당을 다시 가보기로 했다. 카페는 숙소를 기준으로 라멘집과 정 반대에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카페까지 가기 위해서는 20분 정도를 걸어야 했다.



다행히 카페는 전날과 다르게 문이 열린 상태였다. 카페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어떤 상상이 들지 모르겠지만 해안가에 인접한 그 카페의 겉모습은 예스러운 시골집이었다. 아마도 일반 주택으로 사용되던 건물의 실내와 실외를 다시 꾸며 영업을 하는 것 같았다. 허리에 조금 못 미치는 높이의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면 꽤 넓은 마당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마당을 지나 들어간 가게 안의 모습은 밖에서 보는 모습과는 다르게 조금 세련된 풍으로 꾸며져 있었다. 조금 민망하게도 가게 안에는 나 이외의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주인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오면서 인기척을 내서였는지 주방에서 달그락 소리를 내던 주인이 카운터로 나와 홀로 온 손님을 응대해주었다.


" 안녕하세요. 저희 가게 이전에 오신 적 있으신가요? "

" 아니요, 처음 왔습니다. "

" 저희가 메뉴가 바뀌어서요. 자리에 앉으시면 메뉴판 보면서 안내해드릴게요. "


간단한 안내를 받아 창가 쪽의 자리에 앉은 나에게 주인은 메뉴판을 펼치며 음식을 소개했다. 메뉴판은 파스타를 포함한 이탈리아 음식들과 와인으로 채워져 있었다. 인터넷에서 처음 카페를 찾아보았을 때는 사진 속에 칼칼한 김치찌개가 보였었기 때문에 메뉴가 바뀌었다는 주인의 말은 그 순간 조금 실망스럽게 다가왔다.



#23


" 여기 오늘의 파스타라는 메뉴는 알리오 올리오가 나옵니다. "


혼자 저녁을 먹으로 온 여행자에게 메뉴를 설명하는 카페 주인은 오늘의 파스타인 알리오 올리오를 추천하는 뉘앙스였다. 알리오 올리오. 들어본 바는 많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단 번에 그 모습과 향, 맛이 떠오르는 종류의 음식은 아니었다. 따끈한 밥과 칼칼한 김치찌개, 그리고 그 둘의 맛의 간극을 채워줄 기본 반찬들의 협업을 기대했던 터라 어쨌든 그 이름은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해는 이미 저물었고 주인이 업종(식종이라 해야 하나?)을 변경하는 것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에 별 고민 없이 주인이 말해준 오늘의 파스타 하나를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여러 조각으로 썰린 바게트와 절인 할라피뇨가 파스타와 함께 사이드 메뉴로 나왔다.


얇게 썬 마늘과 꼬리부분만 껍질이 남은 작은 새우와 함께 볶아진 알리오 올리오의 맛은 달리 특별함이 없었다. 내 입이 짠 건지 아니면 원래 음식이 밍밍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늘향과 오일 향이 날 뿐 '맛'이라고 느껴지는 무언가는 크게 없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사실 이 요리는 애피타이저 성격이 강한 음식이다. 인터넷 백과사전이 말하길 '원래 특별한 맛이 없는 음식이며 메인 요리를 먹기 전에 간단히 입맛을 돋우기에는 제격'이라고 한다. 하지만 혼자 떠난 여행객에게는 그 알리오 올리오가 메인 요리였으며 함께 나온 바게트까지 포함하면 양도 제법 푸짐한 저녁식사였기 때문에 이후에 무언가를 더 먹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스푼과 포크를 이용해 파스타를 돌돌감아 먹으며 나름의 품격을 챙겼지만 사실 낯선 곳에 홀로 앉아 밍밍한 파스타를 흡입하는 기분은 급하게 허기를 채우기 위해 잔치국수를 한 그릇 시켜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게트 빵을 남은 파스타 소스에 찍어 먹는 것은 나름 맛있었지만 혼자 먹기에는 양이 좀 많았다. 할라피뇨는 밍밍한 파스타와 담백한 바게트의 맛을 보완해줄 유일한 해결책이었지만 작은 고추가 맵다는 그 말 그대로처럼 부담 없이 먹기에는 조금 매운 경향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여행자의 심적 허기를 제대로 채워 줄 알 찬 저녁 식사는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식사를 하고 나왔을 때는 해가 완전히 떨어져 까마득한 밤하늘이 도처에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바다와 하늘을 가르는 저 멀리의 수평선만큼은 수많은 잡어등의 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수도 없이 이어지는 그 빛을 벗 삼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어제 들렸던 편의점에 다시 들려 똑같이 생수 한통을 사고 똑같이 아침에 먹을 즉석식품들을 골랐다. 하지만 어제와는 다른 면도 있었는데 작은 사이즈의 맥주 한 캔과 감자 맛의 비스킷을 한 통 구매한 사실이다. 다음날의 여행을 위해서는 일찍 잠에 드는 게 좋았겠지만 그 맥주를 마시며 드라마를 보느라 새벽까지 잠에 들지 못했다. 시간이 되면 처음부터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공중파의 한 드라마가 숙소의 IPTV에서 공짜로 제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적막 속에 홀로 밥을 지어먹는다는 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