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BPM

[ 제주는 언제나 나를 품는다_episode_10 ]

by 글객
7/29(수) - DAY 3_2



#27


더마파크에 가기 위해서는 785번 버스를 탄 후 월림삼거리에서 내려야 했다. 그리고 그곳에 내린 후 30분을 더 걸어야 했다. 사실 렌터카나 자차로나 갈 곳이지 이렇게 독신의 몸으로 도보와 버스와 도보를 거쳐서 갈 만한 위치의 관광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즉흥여행의 특성상 고민할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 순간 가보고 싶은 곳에 가기 위해서는 대중교통과 두 발을 이용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좌석에 앉아있는 승객이 대부분 할머니였던 785번 버스에는 트로트 음악이 신명 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분위기는 마치 단골 술집에서 바텐더에게 킵해둔 술을 주문하고 마시는 것처럼 왠지 이 버스를 타는 한 단골 승객께서 킵해둔 음악을 요청한 것만 같은, 그런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분위기였다.


한림읍내를 이리저리 훑고 다니는 버스 창밖의 모습은 차가 좌회전 우회전을 할 때마다 그 장단에 맞춰 휙휙 바뀌고 있었다. 그렇게 휙휙 바뀌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익숙한 버스 뒤쪽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니 시내의 한 정류장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두 손 가득 짐을 든 채 버스에 탑승했다. 할아버지는 교통카드를 찍거나 요금을 내지 않은 채 중간 즈음되는 좌석으로 걸어가 짐을 풀고 자리에 앉았다.


할아버지는 시간이 지나도 카드를 찍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그 낌새를 느낀 기사는 계속해서 뽕짝 음악만이 흐르던 버스 공간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는 질문을 할아버지에게 넌지시 던졌다.


" 카드도 안찍었수꽝? "


현지 느낌이 물씬 나는 짙은 사투리로 질문을 던지는 버스 기사에게 할아버지는 따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곧 본인이 내려야 할 정류장에서 묵묵히 버스를 내렸다. 버스에 탑승할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양손에 짐을 잔뜩 든 채 매우 느린 속도로 혼자 버스를 내리는 할아버지였지만 기사는 그런 그에게 더 이상 뭔가를 캐묻지 않았다. 카드도 안 찍었냐는 물음이 요금을 이야기했던 것인지 아니면 어르신용 무임승차 카드를 이야기했던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런 기사의 침묵은 할아버지의 무임승차를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는 것 같은, 시골 냄새나는 용인의 뉘앙스였다.



#28


해안 쪽의 한림읍내를 다 훑은 버스는 이내 제주의 내륙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창 밖의 풍경은 높지 않은 건물들이 보이던 모습에서 초록의 자연과 간혹 보이는 주거용 집들의 돌담으로 점점 바뀌어갔다. 버스가 이동하는 방향은 완전히 제주의 중심을 향하는 방향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더 높은 고도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사를 오르는 듯한 느낌이 계속 이어졌다.


나는 마스크를 착용한 채 버스 뒷문 바로 뒷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버스의 뒤쪽 좌석들은 2인용의 자리였기 때문에 매고 있던 배낭은 바로 옆자리에 벗어 둔 상태였다. 차를 타고 20분 이상을 이동한 후에 이제 버스를 내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 느끼던 즈음, 불현듯 등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툭 치는 손길이 느껴졌다. 살짝 놀라 곧바로 뒤를 돌아보니 나와는 대각의 방향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 한 분이 보였다. 똑같은 모양으로 줄을 맞춰 배치되어 있는 2인용의 좌석에서 나는 복도 쪽 할머니는 창가 쪽의 자리에 앉아있었다.


" 에어컨 좀 꺼줘 ~ "


할머니는 자기 자신을 향해 곧바로 나오고 있는 에어컨 공기가 너무 추운 듯했다. 할머니의 머리 위에는 일반 시내버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원통형 모양의 세기 조절기와 바람구멍이 동심원을 그리고 있는 작은 에어컨이 차가운 바람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에어컨의 위치는 할머니와 내 자리의 중간 정도 즈음이었다.


에어컨을 끄기 위해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일어나긴 하지만 다리를 완전히 뻗지는 않는 엉거주춤한 자세가 필요했다. 머리 뒤 측면 위쪽에 위치한 에어컨을 끄기 위해서 몸을 오른쪽으로 살짝 비틀며 한쪽 무릎을 좌석에 디딘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 순간 차가 과속방지턱이라도 밟은 것인지 버스가 덜컹하고 출렁이는 바람에 다시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하지만 그리 민망한 상황까지는 아니어 바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에어컨 가운데에 있는 세기 조절기를 잠금쪽으로 완전히 돌리니 에어컨의 바람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두 차례에 걸친 시도 끝에 에어컨 작동중지 미션(?)을 성공한 나에게 할머니는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할머니는 나에게 어디 멀리 가느냐는 말을 건넸는데 알고 보니 멀리 가느냐는 말이 아니라 본인이 멀리 간다는 이야기였다. 버스에 오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나에게 에어컨을 꺼달라고 했다는 이야기였는데 버스 내외에서 발생하는 이런저런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처음에는 제대로 알아듣지를 못했다.


뒷 좌석에 앉은 할머니와의 이벤트를 마치니 버스는 이제 곧 목적지에 도착할 것 같았다. 이제 내릴 채비를 하기 위해 마스크를 고쳐 쓰려는데 귀에 거는 끈 한쪽이 툭하고 떨어져 나갔다. 똑같은 경험이 이전에 몇 번 있었기 때문에 크게 당황하지 않고 떨어진 위치에 살짝 구멍을 내어 끈을 집어넣고 묶으니 본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되었다. 버스가 정류장에 거의 도착하는 듯하여 살짝 조급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정차 전에 마스크 수리를 마치고 착용도 완료했다. 월림삼거리에 멈춰 선 785번 버스는 나를 포함하여 두 세명의 승객을 하차시킨 후에 내가 걸어가야 할 방향의 정 반대방향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다.



#29


버스에서 내린 후 더마파크까지 가는 길에는 인도가 없었다. 길 왼쪽으로는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숲이 이어졌고 오른편에는 때때로 공공시설 들이 보였다. 다행히 그 길을 걷는 동안은 차가 많지 않아 위험함이나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것들은 없었다. 그 덕에 더마파크까지 가는 30여분의 시간 동안 그 공간을 혼자서 전세 낸 듯이 조용한 분위기에서 걸을 수 있었다.


주변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으니 발바닥이 땅바닥에 닿을 때마다 발생하는 터벅터벅 소리가 아주 온전하게 들려왔다. 평소에는 잘 들리지 않던 그 온전한 소리끼리의 시간 간격은 내가 상상하는 내 걸음걸이의 속도보다 더 빨랐다. 달리 급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 속에서도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은 일상에서의 급해진 마음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시나브로 빨라져 있던 마음의 속도는 딱 그만큼 급해진 발걸음으로 인해 완전하게 증명되고 있었다.


다시금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메트로놈처럼 똑딱거리는 발걸음의 BPM을 의도적으로 늦추니 마음도 따라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느려진 발걸음은 도착의 시간을 좀 더 늦추었겠지만 빠르게 가던 느리게 가던 더마파크라는 목적지는 그곳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걷다 보면 그곳에 도착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그곳에 완전히 도착할때까지도 계속해서 날씨는 습하고 더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짙은 사투리의 할머니가 깨 부신 작은 마음의 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