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관통하는 음악.

[ 제주는 언제나 나를 품는다_episode_14 ]

by 글객
7/29(수) - DAY 3_6


#37


오아시스처럼 만난 그 카페에서는 노트북을 켜놓고 한참이나 글을 썼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은 계속해서 열을 식혀줬고 열이 식으며 마음도 차분해졌다. 양이 적어 꽤 금방이나 다 마셔버린 아메리카노의 아쉬움은 뒤편에 마련돼있던 냉수로 달래었다. 파맛이 강한 대파 브레드는 채 절반도 먹지 않은 채 포장을 부탁했는데 점원은 투명한 비닐로 포장한 대파 브레드를 연한 갈색의 종이봉투에 담아주었다. 덕분에 짐이 조금 늘어났지만 봉투를 배낭에 넣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다.


생기를 되찾은 여행객은 다시금 길을 나섰다. 다행히 글을 쓰는 동안 몸과 마음이 제법 충전된 상태였다. 게다가 카페에서 한두 시간을 보낸 뒤였기 때문에 더위도 한풀 꺾인 상태였다. 금능남로를 따라 걸어가는 여정의 목적지는 여전히 금능해변이었다.


도로 위로는 종종 차들이 다녔다. 애초에 그들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길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갔지만 차들이 지나갈 때는 걸음을 멈추고 도로 바깥으로 몸을 더 뺐다. 그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람을 마주칠 운전자들에 대한 배려이자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호신이었다. 곡선의 길을 마주칠 때는 차들이 없는 틈을 타 도로를 건너 다녔는데 양 쪽 가장자리 중 내 모습이 더 눈에 짤 띄는 곳에서 걸어가기 위함이었다.


처음에는 한참을 그냥 걸었다. 그러다 어느 지점부터는 적막함을 달래기 위해 이어폰을 꼽고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걸었다. 전 날 아침 숙소에서 들었던 Coke EscovedoI Wouldn't Change A Thing. 사실 여행 중 틈날 때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었다. 멜론에서 음원을 제공하고 있으면 좋았겠지만 다른 뮤지션이 부른 같은 노래는 검색이 됐는데 이 뮤지션의 음원은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유튜브 프리미엄을 사용하고 있어 화면을 꺼두고도 음악을 들을 수 있었지만 재생시간이 끝날 때마다 다시 반복해야 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이 음악은 드럼과 퍼커션 비트로만 시작되어 점차 반주가 붙은 뒤 필인으로 고조되며 보컬이 등장한다. 그리고 보컬이 등장하며 경쾌함이 터지기 시작한다. 유튜브에서 Nujabes의 샘플링 원곡을 모아둔 한 재생목록에서 발견한 음악이었는데 Nujabes의 음악 중 어떤 곡의 원곡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관련 없는 음악이 목록에 섞여 있었는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들으면 굉장히 신이 나는 음악이었다. 슬플 때는 슬픈 음악을 듣고 기쁠 때는 기쁜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마치 이 노래는 내가 지금 걸으면서 느끼고 있는 이 여행에서의 즐거움을 한 껏 증폭시켜 주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슬플 때는 슬픈 음악을 듣고 기쁠 때는 기쁜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그 말은 아마도 그런 증폭을 의미하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쁨은 더 많이 느껴 충만해지고 슬픔은 완전히 쏟아내어 그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만드는... 그런 게 음악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행에는 그 여행의 감성을 완전히 관통하는 어떤 음악이 존재하고는 한다.



#38


여행을 하며 울음을 울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서러움이나 외로움에서의 울음이 아닌, 경이로움과 감동에 의한 울음. 나는 그런 여행을 한 적이 있다. 10만 원짜리 중고 자전거로 유럽 5개국을 여행했던 2018.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버스를 타고 스위스 제네바로 가던 와 중, 잠에서 깨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노래의 가사가 마치 17박 19일의 여행 조각들을 어떤 하나의 지점으로 응축시키는 것만 같은 기분에 나도 모르게 터져 버린 눈물. 존 레넌의 Imagine은 그렇게 2018 유럽 자전거 여행을 관통하는 음악이 되었다.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억지로 소리를 참으며 눈물을 흘렸던 그 장면이 떠오른다. 그걸 참지 못해 버스 안의 동양인 한 명이 난 데 없이 소리쳐 울기 시작했다면 본토의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한 순간에 울음이 터져 나왔던 이유는 노래의 가사가 나의 여행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시 나와 친구는 Warmshower라는 인터넷 자전거 커뮤니티를 이용해 여행의 거의 모든 날을 현지인의 집에서 숙박을 했었다. 커뮤니티의 이름 Warmshower는 자전거를 타고 온 낯선 여행객에게 따뜻한 샤워와 잠자리를 제공해준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Warmshower 호스트들은 샤워와 더불어 간단한 저녁식사도 함께 대접해줬다. 그래서 보통 그들의 집에 처음 들어설 때면 "샤워 먼저 할래? 아니면 저녁을 먼저 먹을래?"라는 질문을 받고는 했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저녁을 먹고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주거 문화를 경험해 볼 수 있었다. 같은 게스트로서 자전거 여행을 하며 현지인들로부터 받았던 감동을 자신도 다른 여행객에게 보답하기 위해 Warmshower 호스트가 된 경우가 많았다.


존 레넌의 Imagine은 평화와 인류애를 노래한다. 나라와 인종의 구분도 없이 모든 인류가 평화의 나날 아래 세상의 모든 것들을 나누며 사는 세상을 꿈꿔보기를 권한다. 존 레넌이 Imgaine을 통해 노래한 그 꿈은 정확히 나의 여행과 닮아 있었다. 마치 주파수가 일치하는 두 파동이 완벽하게 겹쳐져 엄청난 증폭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여행과 음악은 그렇게 하나와 다름이 없었다. 하루에 80km씩 자전거를 타며 낯선 나라에서 고생 아닌 고생을 하고 때로는 호스트를 구하지 못해 숲 속에서 야영을 할 뻔한 적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현지의 호스트들은 친구처럼, 혹은 부모나 이모 삼촌처럼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들이 가진 먹거리를 나누어주고 그들이 가진 공간을 할애해주었으며 그러한 나눔 아래 시간을 공유했다. 돌이켜보면 나라는 사람의 인생에 있어 굉장히 과분한 추억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있게 해 준 내 친구 Oh에게 항상 감사를 표한다. 입 밖으로 꺼내 든 마음속으로 속삭이든 말이다.



#39


Imagine 외에도 콜드 플레이Viva La Vida, 그리고 The Scientist가 자전거 여행을 떠오르게 하는 음악이다. 특히 The Scientist를 들으면 정확히 딱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 장면은 제네바행 버스를 타기 위해 파리의 어느 시내를 자전거로 달리던 새벽 다섯 시다. 아직 해가 다 뜨지 않은 거리의 차분함과 뭔가 차가우면서도 청초한 노래의 분위기는 마치 하나의 것처럼 제대로 어우러졌다. 그리고 그 느낌은 모든 것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떠나는 여행자의 처연함과 닮아있었다. 새벽부터 식료품 점에 물건을 배송하기 위해 인도를 침범하여 차도 한 귀퉁이에 가로로 주차된 트럭들이 아직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4년 전의 제주 여행에는 칸예 웨스트Touch The Sky가 있었다. 한 수제 햄버거집의 천정 바로 아래 달려있던 작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던 두터운 Kick을 동반한 강력한 비트. 이 노래는 어떤 노래길래 이토록 신명이 나는가 하는 마음에 마치 낚시꾼이 고기를 낚듯 멜론 플레이어 음악 검색으로 노래를 검색해보니 그 주인공은 칸예 웨스트였다. 2004년 발매된 앨범 Late Registration의 타이틀곡 Touch The Sky. 여행 내내 이 곡을 온통 들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 노래가 귀에 들어왔던 그 당시의 맑고 상쾌한 날씨와 미친 싱크로율을 보여줬던 이 노래는 들으면 들을수록 몸과 마음이 더욱더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I woudn't change a thing의 경우도 칸예 웨스트의 Touch The Sky를 들었을 때와 매우 흡사한 기분이었다. 뜨거움에서 따사로움으로 변해있던 그 순간의 햇살의 양. 너무 적막해질지도 모르는 순간에 한 번씩 등장해주는 양 방향의 자동차. 그 자동차들이 내달리는 도로를 감싸고 있는 초록의 나무들. 그 속에서의 내 발걸음과 그 발걸음의 리듬감. 충만함은 나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걸으며 쌓인 원기옥과 같은 충만한 기운들을 폭발시키는 기폭제의 역할을 해내는 아주 적절한 음악이 바로 Coke Escovedo의 I Wouldn't Change A Thing이었다. 음악을 들으며 걸으면 걸을수록 어떤 공명의 상태에 도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금능남로의 마지막 즈음으로 해안가에 거의 다다른 어느 사거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음악을 따라 작은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춤은 어깨를 들썩거리고 발놀림의 속도를 음악의 BPM과 일치시키는 율동에 불과했지만 마음속의 나는 훨씬 현란한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며 황홀감은 절정에 도달했다.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아무도 없는 길바닥 위에서도 발견될 수가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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