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삶의 최후의 욕구는 무엇일까. 그리고 최초의 욕구는 무엇일까. 아마 그건 식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이는 배가 고프면 울부짖는다. 사람이 아닌 동물로서의 기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온 에너지를 이용하여 소리를 질러댄다. 사람이 태어나서 하는 최초의 고뇌와 절규는 배고픔으로 인해 발생된다.
반대로 나이가 많은 경우에도 그렇다. 나보다 2,30살 정도 더 잡수신 어른들과 생활하거나 여행을 가보면 먹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뭔가가 시원찮을 때 식사만큼 강한 어필을 불러일으키는 항목이 없다. 좀 더 어렸을 때는 그런 걸 잘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조금씩 이해가 되어간다. 소화와 관련된 기능도 인간 신체능력의 일환이라 별 탈 없이 먹을 수 있는 식품의 종목이 점점 더 줄어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런 점으로 비추어 보면 어른 들의 그런 행동 속에 내포되어 있는 어떤 설명하기 어려운 절박함을 느낄 수가 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동네에서 엄마와 함께 셋이 식사를 했던 장면이 최후의 순간처럼 떠오른다. '아버지 찌개 좀 드세요.'라는 엄마의 말에도 고개를 반쯤 떨구고 마치 그 어떤 식욕도 없다는 듯한 황망한 표정을 보여주던 할아버지. 그때 나는 식욕이 거세되는 순간 인간의 생명력도 점차 사라진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식사란 인간에게 그만큼 결정적인 무엇이다.
#41
그 가게에서의 식사는 소위 말해 완벽했다. 금능남로와 한림로가 만나는 교차로 어간에 있던 한 음식점. 그 교차로에 도달했을 때의 시간은 대략 다섯 시였고 그날의 나는 못해도 세 시간 이상은 걸은 상태였다. 카페에서 먹었던 대파 브레드는 약간의 허기를 달래줬지만 여행자의 영혼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원 없이 걷고 걷느라 많이도 써버린 생명력을 다시 채워줄 그럴듯한 저녁 식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교차로에는 토속적인 냄새가 나는 큰 식당이 하나 있었지만 나의 선택은 그 교차점에서 약 100m 정도 떨어져 있는 이 가게였다. 혼자 먹는 게 그리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모든 종류의 가게를 부담 없이 들어갈 능력까지는 안된다. 최소 2인 이상은 주문을 해야 뭔가 자연스러운 메뉴 거나 좌식용 테이블만 구비되어 있는 식당은 메뉴가 댕기더라도 입구에서 서성거리다 포기하고는 만다.
그런 면에서 이 가게는 첫 입장부터 상당히 흡족스러웠다. 일단 세련되고 깔끔한 스타일로 디자인된 실내 인테리어부터 마음에 들었고 테이블도 소그룹으로 배치되어 있어 혼자서 식사를 하기에 마음이 편했다. 주방은 조리하는 사람이 겨우 얼굴 정도만 보일 수 있도록 가운데가 뚫린 가벽으로 가려져 있어 드러나는 듯 드러나지 않는 적당한 거리감과 신비감을 제공했다. 대부분의 실내 공간이 심플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을 주는 것들로 꾸며져 있어 뭔가 정갈한 느낌을 주었다.
식사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음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맛을 포함한 전반적인 구성이 굉장히 먹음직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요리란 굉장한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 비주얼에서부터 만든 사람이 얼만큼 애를 써서 이 음식을 준비하고 담아냈는가가 잘 보이는 그런 구성이었다. 내가 시킨 음식은 딱새우장정식이었는데 일단은 메인 요리인 새우의 몸통과 머리가 아주 정갈하게 손질되어 있어서 먹기가 굉장히 편했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딱새우라는 것이 껍질이 굉장히 두꺼워서 이로 깨 먹지를 못한다. 예전에 제주 여행을 갔을 때 혼자 해물뚝배기를 먹은 적이 있는데 먹을 줄을 몰라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다. 그때 가게 사장님이 알려주신 방법은 일단 머리를 떼어내고 꼬리 부분을 뜯은 뒤 그 구멍을 젓가락으로 쑤시는 것이었다. 그러면 머리가 떼어진 부분으로 다 익은 새우살이 나왔다. 하지만 그럴라치면 새우를 많이 만져야 해서 맛은 좋아도 손에서 비린내가 난다는 단점이 있었다.
먹기 좋게 손질된 딱새우는 몸통을 잡아 살만 호로록 빨아먹으면 되니 깔끔했다. 물론 머리 부분의 내장을 밥에 비벼먹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손을 이용해야 했지만 살짝 잡고 있는 정도여서 그리 불쾌하진 않았다. 게다가 식사가 나올 때 물티슈가 함께 나왔기 때문에 적당히 손을 닦아가며 먹으니 깔끔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머지 음식들도 담음새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어떤 채소인지 모르겠지만 밥 위에 올려진 계란 노른자를 꾸며주는 초록의 이파리들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흰밥의 부족한 색감을 채워줬고 나머지 반찬들도 정갈하게 담겨있었다. 연한 갈색의 사각 쟁반과 무늬가 파란색으로 통일된 하얀색 접시들의 조화도 참 깔끔하게 느껴졌다. 각각의 양들도 혼자 먹기에 딱 좋을 정도로 알맞게 담겨 나와 마음에 들었다.
겉보기에만 그럴듯하고 맛이 형편없었다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할 일이 없었겠지만 맛도 훌륭했다. 일단 새우장 국물의 감칠맛이 좋았고 너무 짜지도 않고 너무 달지도 않아서 더 좋았다. 밥에 비벼먹는 무엇의 간이 너무 짜거나 달면 양 조절이 어려워지는데 그런 측면에서 노른자를 터트린 흰밥에 부담 없이 덜어서 비벼먹기 좋았다. 기본적으로 메인 요리가 간이 있는 음식이면 다른 반찬들이 싱거운 게 좋은데 계란말이와 샐러드가 그 역할을 해주었다.
화룡점정은 화장실이었다. 가게가 깨끗해도 공유하는 건물의 화장실이 오래되고 지저분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 가게는 화장실마저 잘 정돈되어 있었다. 깔끔한 것을 떠나 손님을 향한 주인의 배려가 여기저기 묻어나는 공간이었다. 화장실 이용에 관한 안내사항들이 예쁜 글씨체와 상냥한 말투로 적혀있었고 혹시 낯선 곳에서 용변을 보는 것을 위생 문제로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일회용 변기 커버가 마련되어 있었다. 왠지 리모델링 과정에서 해결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두어야 했던 것 같은 벽 쪽의 투박한 수도꼭지는 그 앞에 화분을 두는 센스로 눈에 거슬리지 않게 해 두었다.
입장부터 퇴장까지 어느 하나 구린 부분을 발견할 수 없었던 이 가게에는 점수 10점을 주고 싶었으나 포털사이트의 최고 평점이 5점인 지라 어쩔 수 없이 별 다섯 개를 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게 안에서 혼자 식사를 한 손님을 사장님 내는 끝까지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혹시나 한림읍의 금능남로와 한림로가 교차하는 지점을 지나는 분이 있으면 한 번 이 가게에서 식사를 해보시기를 권한다. 제주를 좋아하는 한 여행객에게 완벽한 식사를 제공해준 이 가게의 이름은 협재리에 위치한 우리집아점이다.
#42
가게의 거의 바로 앞은 금능해변이었다. 에메랄드 빛으로 물들어 있는 금능해변과 해안가를 따라 빽빽하게 바로 서 있는 나무들 그리고 구름 섞인 파란 하늘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풍경은 말 그대로 정말로 아름다웠다. 바다로 내려갈 수 있는 콘크리트 계단의 거의 최상단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나는 또다시 I Wouldn't Change A Thing을 들었다. 한참 동안이나 그냥 그렇게 자리에 앉아 따사로운 날씨 아래 마치 화폭과도 같은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그 음악을 듣는 기분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도취감 또는 황홀감. 만족스러운 저녁까지 해결한 그 순간만큼은 정말 그 어떤 것도 필요치 않았다.
숙소로 돌아갈 때는 다시 202번 버스를 이용했다. 더 이상 걸어갈 거리도 아니었고 더 이상 걸어갈 여력도 없었다. 해변에 마련된 공중화장실에서 종합적인 정비(?)를 마치고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잠시 기다렸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코를 살짝 내놓고 마스크를 쓴 채 버스를 탄 나에게 기사는 마스크를 제대로 쓰라는 작은 핀잔을 주었다.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겠지만 나 같은 관광객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만난다면 화가 나는 감정을 숨기기가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했다. 그 표정을 보자 한림읍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나타났다는 뉴스가 잠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기사의 말을 들은 나는 다시 제대로 마스크를 쓰고 자리에 앉았다. 숙소가 있는 용운동 정류장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직 해가 다 지지 않았을 때 숙소에 도착한 나는 샤워를 마친 후 미리 떠날 준비를 했다. 3박을 예약한 첫 번째 숙소의 체크 아웃이 이제 바로 다음 날 아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당장에 써야 할 물건들과 내일 아침에 챙겨야 할 것들을 제외한 품목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가방에 넣었다. 3일을 머물고 여행하는 동안 속옷과 면티 등 빨래가 제법 쌓인 상태였는데 한 두 번 더 입어도 무방한 옷들과 당장 빨아야 할 옷가지들을 서로 다른 주머니에 나누어 담아 서로 섞이지 않도록 했다. 절반 정도 남은 여행기간 동안 할 일들을 고민하고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여행 정보를 찾는 일들을 하니 첫 숙소에서의 마지막 밤은 계속해서 깊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