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가르며 스쿠터를 타는 기분은 예상과 달리 불쾌함 쪽에 가까웠다. 그건 뭐랄까. 외부 공기에 그대로 노출되는 스쿠터 주행의 특성이 자유로움 보다는 불안감 혹은 불편함의 감정을 더 많이 이끌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등에 맨 배낭은 앉은 자세에서도 무거움이 느껴졌고 강한 바람이 피부에 그대로 부딪히는 것은 그다지 낭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가 생각이 났다. 30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구매한 10년 넘은 중고차지만 프레임과 유리 등 차체의 외관을 이루는 부분들이 외부의 위험과 충격으로부터 운전자를 얼만큼이나 보호하고 있었는지 상상이 됐다.
이제는 머리가 다 커버린 것인지. 아니면 신체 능력의 하락이 더 큰 자기 보호 본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지. 젊은 날의 감성은 내게 더 이상 없었다. 그건 마치 나를 블랙홀처럼 빨아드려 한 자리에서 몇십 번이고 돌려 들었던 어린날의 명곡들이 더 이상 나를 어떤 감흥의 상태로 이끌어주지 못하는 현실과 닮아있었다. 무뎌지고 흐려진 감각과 감성. 불쾌의 원인은 아마도 그것이었다.
어디선가 그런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60대의 중년 남성에게 던져진 질문. 10억을 주고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면 당신은 그때로 돌아갈 것이냐고. 남자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 가치는 무엇일까. 무궁무진한 가능성이라는 비교적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뭔가를 쉽게 느낄 수 있는 감각과 감성. 아직 무뎌지지 않은 신체와 정신, 그것이 본질이 아닐까. 자식을 낳아보지는 않았지만 자식을 키우는 보람도 그런 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자라날 때 새로운 세상을 만나며 느꼈던 그 생생한 감정들. 이제는 느낄 수 없는 그 감정을 자식을 대리자로 하여 간접적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 보람이지 않을까. 결혼도 안 해 본 놈이 참 주제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되도록 빨리 숙소에 당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찼다. 하지만 그렇게 스쿠터를 재촉할수록 세찬 바람이 나를 감쌌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모순의 상황. 하지만 어쨌든 나아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바람을 계속 맞으며 숙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