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실은 입실의 역순이다.

[ 제주는 언제나 나를 품는다_episode_33]

by 글객
8/1(토) - DAY 6_1


#79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다. 정돈이란 풀어헤침의 반대임을 의미한다. 고로 입실과 동시에 각자의 자리로 풀어헤쳐졌던 짐들을 다시 배낭이란 공간 속으로 결집시키고, 사용한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이 퇴실의 시작이 된다. 퇴실은 입실의 역순이다. 숙소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 나갈 때 했던 행동들을 고스란히 촬영하여 빨리 감기를 하면 마치 데칼코마니 작품을 시간축의 차원으로 옮겨 놓은 것과 같은 대칭 미를 영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지낼 곳이 아니라고 해서 어지른 상태로 숙소를 떠나지는 않는 편이다. 사용한 수건은 바닥이든 테이블이든, 곱게 펴서 널어두는 편이고 이불은 보통 개던지 아니면 완전히 펴서 처음 들어왔을 때 발견했던 상태로 만들어두고는 한다. 쓰레기는 가능한 상황이라면 분리하여 서로 다른 비닐봉지에 담고 설거지 거리는 방치하지 않는다. 내가 먹은 음식의 흔적이 그릇이나 싱크에 남아있으면 돌아가는 마음이 영 개운치 못하다. 마음이 개운하지 못하다는 것은 그런 행동이 누군가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개운치 못한 마음을 달래려고 하는 스스로를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한다. 이래저래 치우고 나가도 숙소 주인이나 관리인이 어차피 다시 다 치워야 해서 소용없는 일이 되는 것이라고. 오히려 치워놓은 게 어설프면 어디가 치워야 할 곳인지 또 어디가 치우지 않아도 될 곳인지를 헷갈리게 만드는 일이 돼버린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절차에서 누군가가 내 뒤안길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 무질서함을 내버려 둔 채 공간을 떠나면 내 안의 누추함을 누군가에게 들키는 것만 같아 불편한 마음이 인다. 대학생 시절 이런저런 동아리 활동이나 기업 서포터즈 활동을 집중적으로 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몇십 명이서 참여하는 오티나 엠티를 마치고 다 같이 숙소를 나설 때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경우가 많았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한 공간에 그렇게까지 모여있을 때에는 정돈이나 분리수거가 제대로 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커다란 봉지에 구분 없는 쓰레기들이 짬뽕으로 섞여있는 모습을 보면서 제일 마지막으로 숙소 문을 닫는 마음은 한 마디로 찜찜함 그 자체였다.


그런 군집의 모습은 사실 자연스러운 것이다. 여기서 자연스러운 이라는 뜻은 긍정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응당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을 말한다. 자연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흘러간다. 모든 존재는 자연 상태 그대로 두면 응당 섞이고 어지럽혀지고 질서가 파괴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으로부터 인격을 가진 존재로 분리되어온 인류의 문명은 반대로 그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대로 두면 바닥에 쏟아져 흩어져버릴 음료라는 존재는 컵이라는 인간 문명에 담겨 질서 있고 명확한 모양으로 존재할 수 있다. 무엇인가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동에는 자연 상태를 거스르며 엔트로피를 감소시켜온 인간 문명의 상징이 깃들어 있다.


당직 사관의 예고 없는 검열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총기가 발각되면 벌점을 부여받곤 했지만 이용을 마친 숙소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았다고 해서 과태료를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시는 보지 않을지도 모를 공간을 정돈하는 행동에는 온전히 문명화된 인감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내포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 뒤안길을 그 아무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가정하에서도 그런 행동을 할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타인의 존재 덕에 입실과 퇴실의 모습을 일치시키는 스위스 마을의 수미상관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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