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터2

[ 제주는 언제나 나를 품는다_episode_34]

by 글객
8/1(토) - DAY 6_2


#80


" 퇴실합니다. 잘 쉬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

" 네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기회 되시면 또 놀러 오세요~~^^ "

" 네 또 방문하겠습니다. 잘 지내세요. "


여행의 여섯 번째 날 오전 10시 15분. 조천읍 스위스마을을 나섰다. 숙소를 떠난다는 문자에 주인은 친절한 인사로 답했다. 또 방문하겠다는 마지막 인사는 의례 하는 말은 아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이 마을에 방문해보고 싶었다. 물론 마을을 다시 방문한다고 해도 또다시 같은 주인의 숙소인 216동 201호에 머물지는 미지수의 일이지만 말이다.


실질적인 여행의 마지막 날인 여섯 번째 날에는 별다른 계획이 없었다. 다만 스쿠터를 타고 어딘가를 돌아다니자는 어렴풋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날과 전전날 스쿠터를 타면서 느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기분은 다시 반복하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이며 동시에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가야 할 곳과 도착해야 할 시간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던 이전 날들에야 그 불쾌감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주행 자체가 목적이 되는 오늘은 그 과정이 반드시 즐거워야만 했다. 목적지가 있을 때는 견뎌야 할 일이었고 또 언젠가는 끝날 싸움이었지만 따로 목적지가 없는 지금의 순간에는 구태여 그 불쾌감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설계가 필요했다.


스쿠터를 탔던 첫날과 둘째 날, 기대했던 상쾌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그 패착은 사실 어울리지 않은 길로의 주행에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내비게이션을 찍은 것에서부터 시작된 오류라고나 할까. 특정 목적지를 검색하면 어련히 설정되는 내비게이션의 최적길을 그대로 따라 이동했으니 일반차들과의 원치 않는 경쟁이 펼쳐진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때문에 뭔가를 방조하듯이 시스템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는 자세를 뒤로하고 전자기술을 좀 더 인위적이고 구체적인 차원에서 능동적으로 조작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할 큰길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작은 길 들을 지나갈 수 있도록 곳곳에 경유지를 설정하여 주행을 시작하였다.


주행 자체가 목적이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전혀 정처 없이 떠돌 수는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마련한 목적지 아닌 목적지는 김녕해수욕장이었다. 공항 근처라는 마지막 숙소의 위치를 고려할 때 성산일출봉까지는 조금 먼 느낌이었고, 그렇다고 처음부터 제주 시내로 향하기에는 시간이 제법 여유로웠다.


제주도를 커다란 원으로 봤을 때 전체 경로의 앞선 절반은 한라산이라는 원의 중심 부근에서 해안가로 향해가는 여정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 외곽선을 따라 김녕해수욕장이라는 중간 목적지까지 달리는 과정이었다.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내려오는 전반부는 숲을 가로지르는 직선의 도로를 따라 제주를 뚫고 나가는 듯한 시원한 맛이 있었고, 제주의 외형을 그대로 읽는 듯한 후반부는 굽이굽이 이어지는 해안 마을의 작은 길들을 헤쳐나가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 양쪽의 경우 모두, 스쿠터 운전자를 다급하게 만드는 요소가 별달리 없어 이전과는 다르게 그 길 위에서 스쿠터 주행의 여유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스쿠터를 대여할 때 예상했던 여행의 그림은 반납하는 날이 돼서야 현실로 펼쳐졌다.


스쿠터와 함께한 여행의 거의 마지막이 여유 있고 활기찬 기운으로 종결되어간 것은 참 다행인 일이었다. '스쿠터 탈 나이가 이제 지나버린 걸까?'하고 품었던 의문을 '섬세하지 못한 여행 계획 설정이 낳은 작은 사건' 정도로 치부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마터면 조금은 우중충한 색채로 마무리될 수도 있었던 여행의 마지막 날은 명도가 제법 높은 밝은 색채로 매듭지어지고 있었다. 이제 이 여행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스쿠터를 제시간에 반납한 후 다시 육지로 돌아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짐을 싸는 정도만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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