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 제주는 언제나 나를 품는다_episode_35]

by 글객
8/1(토) - DAY 6_3


#81


남들처럼 자주 인스타그램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세상과 너무 동떨어지는 기분이 들 때 즈음에는 사진을 올리는 편이다. 그마저도 조금씩 업로드 주기가 길어지고 있지만 여행 정도로 의미가 있는 사건은 기록으로써라도 사진을 올려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한 카페에 앉아 지난 사진들을 올렸다. 김녕해수욕장을 거쳐 숙소 쪽으로 향하는 사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잠시 들른 함덕 해수욕장이 눈 앞에 보이는 여느 해변 카페의 2층 자리였다.


날짜별, 또는 주제별로 올린 여행의 사진들은 인스타그램 감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가로가 긴 비율이어서 피드 속 다른 사람들의 정사각형 사진들과는 대조적인 느낌이 들었다. 자동으로 정사각형 섬네일을 만들어 보여주는 인스타그램 프로필 페이지에서, 16:9의 비율로 찍힌 제주의 사진들은 가로 양단이 임의로 절사 된 채 바둑판 패턴을 만들며 전시되었다. 세상이 요구하는 삶의 규격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감성의 팔다리를 잘라야만 하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처럼 말이다.


인스타그램은 인스턴트(Instant)와 텔레그램(Telegram)의 합성어라고 한다. 둘의 의미를 합쳐 '세상의 모든 순간을 포착, 공유한다.'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탄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찍은 사진을 카페 한편에 앉아 몰아서 업로드하고 있는 나는 순간을 공유한다는 그 매체의 본질에 전혀 부합하지 못하는 이용행태를 만들고 있었다. 사진의 비율이라는 공간적 개념과 더불어 업로드 시점이라는 시간적인 개념에서도 대세를 거스르며 개발자들이 구상한 채널의 속성을 완전히 뒤집는 형식으로 그들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건 자아를 절도당할 것만 같은 세상의 흐름을 꽤나 거부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 본류에서 완전히 소외되고 싶지는 않는 이중의 모습이었다. 그 자의 속성이 사진의 업로드라는 단순한 행동을 통해 증명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슬픔이 없다고 하는 이제는 유명해져 버린 누군가의 말처럼 이 매체에는 특정한 삶의 감성을 필터링하는 내적 시스템이 존재한다. 생각이 모두 언어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무한한 조합이 생각을 존재하게 만드는 것처럼 특정 감성이 거세당하는 매체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우리는, 우리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는 순간 그 특정의 감성을 영원히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그 감성이 프라이팬에 남겨진 기름을 닦은 구겨진 키친타월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폐기물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자아를 계속해서 온전히 유지시키기 위한 중요한 톱니바퀴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것이 사람들이 때때로 싸이월드에 대한 그리움을 온라인상으로 표출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