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한 두 살 먹을수록 말과 말 사이에 자꾸만 버퍼링이 늘어남을 느낀다. 어린 날의 나보다 유창함을 더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이건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인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불만족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인생에 대해, 관계에 대해, 그리고 뱉은 말의 무게감과 책임감이란 무엇인가를 알면 알수록 한마디의 말을 뱉기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대화가 오가는 그 찰나의 순간들마다 더 압축적이고 더 가치중립적이며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최대한 적합하게 표현해줄 어휘와 문장과 표현을 찾아 헤매는 것은 타인의 입장에서는 단지 소리와 소리 사이의 작은 공백일 뿐이다. 노인들의 말이 느린 것은 기력이 쇄 했음이 가장 큰 이유가 되겠지만 그 이면에는 내뱉는 말의 무게와 책임감이란 무엇인지를 뿌리 깊게 인지하고 있음이 만들어내는 망설임과 조심스러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는 사실이 때로는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대화는 질문과 대답의 연속이다. 그런 면에서 어린 날의 대화가 상대방의 질문에 대해 4지 선다의 객관식 문제를 푸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대화는 똑같은 질문에 대해 10가지의 보기가 주어지는 기분이다. 질문은 똑같지만 보기가 늘어나면 그 자체로 문제의 난이도가 올라가는 것이며 그럴수록 답변을 내기 위한 고민의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나이를 먹어갈수록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한마디 한마디를 이어가기가 조심스럽다. 마음이 조급해 의도하지 않은 표현의 길로 발언이 빠져버리면 그 반작용이 만들어내는 오해의 상황에 갇혀버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는 한다.
시간은 한정된 자원이며 그 속에서 이뤄지는 대화는 마치 케이크를 잘라먹듯 시간을 나눠 먹는 일이다. 누군가가 혼자서 케이크를 독식하면 남은 사람들은 배불리 먹을 수 없는 것처럼 누군가가 시간을 독차지하면 나머지는 발언의 기회를 잃는다. 하지만 그런 존재감의 상실이 두려워 조급한 마음에 서투른 표현으로 자기 생각을 전달할 때면 이가 빠진듯한 문장이 오해를 낳고, 오해는 누군가에게 상처로 자리한다. 침묵을 유지하면 존재감을 상실하고 살아남기 위해 발언에 힘을 가하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의사소통의 딜레마. 그 딜레마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앞으로 남은 생은 고달픔이 더 증폭되어 갈 것으로 예견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