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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May 19. 2023

알록달록한 실타래 앞에 선 색맹의 우리들

여러 사람이 한 데 모여 함께 사는 세상이란 여러 가지 색깔의 실이 뭉쳐져 만들어진 실타래 앞에 둘러앉아 그것을 쳐다보는 형상이다. 실타래란 어떤 현상 또는 문제이고 그 실타래를 바라보는 각자는 한 두 가지 색깔밖에 인식하지 못하고 나머지색은 모두 흑백으로 보이는 심한 색맹 또는 색약의 보유자들이다.


어떤 복잡한 현상 앞에서 어떤 맥락으로 그 덩어리를 해석하고 해결법을 도출할지는 자신이 가진 경험, 지식, 지혜, 환경 등에 따라 달라진다. 빨간색만 인지할 수 있는 누군가는 그 복잡한 실 뭉텅이에서 빨간색이라는 맥락만 뽑아내어 그 전체를 빨간색의 맥락으로 바라보거나 규정하고 노란색만 인지할 수 있는 누군가는 그 전체를 노란색이란 맥락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자신이 인지할 수 있는 색의 실이 아닌 다른 색의 실들은 불필요한 부분으로 취급되거나 애초에 인식의 범위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똑같은 사안을 눈앞에 두고도 서로 다른 해석과 맥락, 문제 해결방안을 도출하는 우리는 각자가 가진 배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필터를 가지고 있다.


만약 그 많은 대중 속에서 어떤 특정한 사람이 색맹 또는 색약이 아닌 지극히 정상인으로서 그 모든 색의 실을 볼 수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은 한 가지의 현상을 서로 다른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문제 해결 방안을 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문제해결 방식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란 그 사람이 얼마큼이나 이 세상을 자유롭게 바라보고 자유롭게 대할 수 있는지를 말해줄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자유로움이 높다는 것을 이야기해 준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다면 모든 색을 구분할 수 있는 그 인물이 우리의 지향점이 돼야 하지 않을까. 보고 배우고 체험하고 겪어보아야 하는 이유가 그곳에 숨어있다.


23.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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