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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May 20. 2023

'도와줄까요' 보다는 '같이할까요'

다른 사람의 일을 돕고자 할 때 우리는 주로 "도와드릴까요?"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 문제가 있는 표현은 아니지만 이 표현에는 묘한 아쉬움이 있다. 이 말은 뱉어지는 순간 도움을 주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이라는 지위의 차이를 발생시킨다. 내가 도움을 준 다는, 그러니까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다가가고자 하는 의도와 다르게 보이지 않는 경계를 만든다. 그것이 순간적일 수도 일시적일 수도 장기적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간에 너와 나, 당신과 나 사이에 시간적, 물리적, 경제적 여유의 차이가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눈치채기 어려운 역설이 담겨있다.


나는 이 도와준다는 표현 대신 '같이 하다'라는 표현을 더 가치 있게 여기고 그래서 되도록 이 표현을 쓰는 편이다. "같이 할까요?"라는 표현에는 너와 나의 구분이 없다. 너와 나의 차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더 공평한 표현이고 더 중립적인 표현이다. 단지 시점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표현을 들은 사람이 표현을 한 사람보다 무엇인가를 먼저 행하고 있었을 뿐이다. 도움이라는 미명으로 너와 나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처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지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안락함을 느끼고 위안을 얻는다. 그 말의 의도는 그런 것이다.


표현의 방식은 여러 가지다. 그러나 세상에는 비슷한 의미를 전달하더라도 더 가치중립적인 표현들이 있다.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이겠지만 알고 나서는 구태여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보다 더 포용적이고 누군가를 상처 입힐 확률이 더 낮은 좋은 표현들. 한 마디를 내뱉는 것의 가치를 정확히 알고 그런 이유로 그 한마디를 내뱉는데 조심을 다하면 우리는 더 아름다운 표현을 찾아 나갈 수 있다. 어쩌면 세상에는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이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쁜 표현과 좋은 표현이 나뉘어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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