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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May 26. 2023

'아니면'이라는 화두를 던질 때의 책임감

'아니면'이라는 말에 대해 경계심을 갖는다. "아니면 ~은 어때?"라는 표현의 처음에 등장하는 '아니면'이라는 말은 이미 제시된 대안이 아닌 다른 대안을 제시할 때 사용하는 언어다. 이미 언급된 대안들 중에서 흔쾌히 선택할 만한 대안이 없다고 느낄 때 주로 이 단어가 등장한다.


이 말이 무조건 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 이미 꺼내어진 대안들 중에서 선택할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할 때는 다른 대안의 등장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미 등장한 대안들 중에서 무엇이 적합한지 숙의하는 과정에서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해서 던져지는 '아니면'이라는 화두는 꽤 위험하다. 대안을 무작정 늘리는 것은 선택을 더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 뒤에 제시되는 대안이 가치가 있어 비교해 볼 만한 것이면 괜찮을 수 있지만 가치평가 자체가 어렵거나 가치를 매길 시간 자체가 아까울 정도로 가치가 부족한 것이라면 쓸데없이 신경에너지만 소모하게 된다.


'아니면'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화자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아니면'이라는 말을 꺼내는 동기가 단지 다른 대안을 던지는 행위 자체만을 가치 있게 여기기 때문이라면 뒤에 실제 나오는 대안이 가치 있기 어렵다. 만약 그 대안이 가치 있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대안을 던지는 역할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결정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 화자의 태도라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선택의 혼란을 가중시켰을 수 있는 장본인이 논의의 석상에서 사라지거나 숨어버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디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인간의 인식·비교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한한 아이디어의 열거는 그 자체가 선택과 집행을 어렵게 한다. '아니면'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때에는 그 뒤를 잇는 대안이 좋은 비교군이 될지 '아니면' 논의의 혼란만 가중시킬지를 충분히 고려한 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결정을 할 수 도 있을 가능성을 낮춰버리게 된다.


2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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