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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Aug 06. 2023

자연은 비가역적이고 인문은 상대적이다.

비가역적인 현상이 있다는 것은 우주의 슬픈 단면 중 하나다. 한 번 진행되면 다시 뒤로 돌아갈 수 없는 것들. 실수로 바닥에 떨어트린, 그래서 산산조각이 난 계란은 다시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만약 가진 계란이 하나밖에 없었다면 선택은 둘 중 하나다. 바닥에 떨어져 오염된 계란이라도 먹던지 아니면 계란 먹기를 포기하던지. 자연의 비가역성이 인문에 영향을 준다. 우리는 자연과학이라는 토대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간다.


자연의 비가역성은 부자와 빈자를 나눈다. 계란이 100개 있는 사람은 계란 하나가 깨지는 것에서 아무런 삶의 타격을 받지 않는다. 계란이 하나밖에 없는 이에게는 그 깨진 한 개의 계란이 극단적인 선택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자연은 냉정하고 그 자연의 비가역성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무거움을 선사하지 않는다. 기후변화가 초래한 이상 현상에 더 큰 피해를 받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그 삶이 더 열악한 사람들이다. 높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유는 비가역이라는 자연의 냉혹함을 상쇄시키거나 희석시킨다.


나이를 먹는다는 비가역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만 그 비가역의 결과물은 서로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비가역이 우아함이나 성숙함이라는 결과로 환원되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회한으로 환원된다. 돌이킬 수 없음이란 수많은 기회로 둘러 쌓인 이에게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명제고 하나의 기회조차 갖기 어려운 이에게는 믿고 싶지 않은 운명이다.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음을 딛고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고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음으로 끝나는 것이 인생이다.


자연은 냉혹하고 절대적이지만 인간에게의 적용은 상대적이다. 인간이 쌓아온 문명과 역사란 얼마큼이나 대단하기에 그 산물이 자연의 절대성을 상대성으로 바꾸기까지 하는 것일까.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는 것은 이제 익숙해진 진실이지만 때로는 그 말이 그 진실을 더욱 강화하기만 하는 것 같아 받아들이기가 거북스럽다.


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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