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LO Nov 12. 2023

언어의 공란

한 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나의 생각과 느낌을 얼마나 온전히 옮겨놓을 수 있는가에 관한 확률싸움이다. 언어는 내 안의 무엇과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떠한 이미지는 실시간으로 언어로 치환된다. 그 언어가 그 느낌을 얼마큼 충실하고도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표현이 많아진다고 정확해지는 것도 아니고 표현이 적어서 담아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유퀴즈온더블럭에서 언급한 플로베르의 말처럼 정확한 상황에 어울리는 딱 하나의 단어가 있을 뿐이다. 그 어울리는 단어를 보유하지 못하면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온전하게 전할 확률은 낮아지고야 만다.


언어라는 것도 관성을 가져서 계속해서 사용하는 단어와 문장은 그 한 사람의 언어 습관에서 주요한 등장인물로 계속해서 등장한다. 하나의 느낌에 대응하는 하나의 표현은 한 번 대응된 이상 계속해서 그 느낌을 대변하는 표현으로 기능하기 쉽다. 쉽사리 다른 표현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 표현이 그 느낌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언어는 언제나 그 공란을 내포하게 되고 나의 생각과 느낌이 언어를 통해 세상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 공란의 크기만큼 깎이며 사라진다. 그 과정이 확률의 싸움이다. 나의 생각과 느낌이 얼마큼 온전하게 세상밖으로 나갈 것인지에 대한 확률말이다.


그 공란에서 불쾌함을 느낄 때, 언어습관에 있어서의 우리의 굳어짐은 그 불쾌함의 원흉이다. 굳어진다는 것은 하나의 캐릭터가 완성되어 간다는 것을 말할 수 도 있지만 더 이상 그 공란을 채울 수 없음을 말하는 대목일 수도 있다. 굳어짐은 그래서 반갑지 않다. 더 적확한 표현이 있을 것 같다는 상념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뱉어지는 표현의 조합으로 나의 생각과 느낌을 담아내는 타협. 그 타협은 다급하면서도 개운치 않다.


23.09.13

매거진의 이전글 일이라는 개념을 파악해 간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