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균,쇠] 문명은 모두 운이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대표서 [총,균,쇠] 줄여 읽기.

by 글객
책을 선택하는 한 가지 기준.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했던 최초의 계기는 내가 좋아하는 유시민 작가가 어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책에 관해 언급한 것을 보고 난 뒤였다. 작가가 말한 뉘앙스는 대략 "[총,균,쇠]와 같은 책이 지금까지 스테디셀러인 것을 보면 우리나라 독자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였다. 그 인터뷰를 접한 후 내 인식의 한편에 이 책에 대한 존재감이 살며시 자리 잡았다.


언제부턴가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답안으로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하는 책을 선택하는 것이 괜찮겠다'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박웅현 작가의 [책은 도끼다]를 읽은 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었고 책은 아니었지만 허지웅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를 읽고 영화 [록키]를 봤다. 이러한 작품 선택의 방법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특정 인물을 동경하는 마음이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동질감을 기본으로 하는 닳고 싶은 마음에서부터 기원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을 지금의 그 사람으로 성장시킨 어떤 책은 100프로는 아닐지라도 꽤 높은 확률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의 자기 성장을 보증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어느 순간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필연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우연찮게도 내가 자주 가던 가산디지털단지역의 [무중력 지대]라는 공간에서 이 책 [총,균,쇠]를 발견하게 되었다. 언 듯 보아도 벌써 느껴지는 압도적인 두께감, 특별한 진열공간에 유독 독보적으로 서 있는 그 만의 위용. 이 두 가지 요소는 서로 다른 카테코리로 칸칸이 분류되어 있는 다른 책들과의 차별화를 만들어내어 마치 그들과 동류가 되기를 거부라도 하는 듯한 묵직한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존재감은 이 책이 자그마치 750페이지의 분량을 자랑하는 책임을 확인하면서 이내 현실이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 본 책 중에서 적어도 두께로만 따졌을 때는 탑 오브 탑에 오르게 되는, 그런 압도적인 물리량을 가지는 존재감의 책이었다.


일반적인책의 2배에 가까운 두께.


문명 격차의 발생은 다분히 운이었다.


나는 살면서 그런 의문이 많았다. 왜 어떤 것은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은 틀린 것일까? 옳고 그름을 가르는 척도는 무엇일까? 주류의 생각은 왜 맞는 것이고 비주류의 생각은 왜 틀렸다고 치부되는 것일까. 이 의문은 헤게모니라는 단어의 뜻을 이해하면서부터 일정 부분 풀리기 시작했다. 주류와 비주류를 가르는 것은 좋은 것과 나쁜 것 혹은 우수한 것과 덜떨어진 것을 나누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어서가 아니라 시대에 따라 어떤 문화가 주도권을 잡는가의 문제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왜 특정 문화가 주도권을 잡는가? 왜 특정 국가가 타 국가를 정복했는가? 정복당한 국가가 정복한 국가를 지배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의 메시지는 그런 물음에 대한 해답이다. 그와 동시에 그 해답이 타당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서로 다른 학문의 깊이 있는 연구, 그 연구들이 발견해낸 무수한 증거의 논리적인 열거다. 750페이지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다름 아닌 다음의 한 문장, 그 한 문장일 뿐이다.


" 스페인이 잉카를 정복할 수 있던 원인은 그들이 유전적으로 더 우월해서가 아니다. "


유럽의 여러 국가는 제국시대에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의 많은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그들이 손쉽게 피지배국의 인류를 살상하거나 굴복시킬 수 있었던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이 책의 제목인 총, 균, 쇠를 유독 유럽의 국가만이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총, 균, 쇠는 실제로 두 대륙 간의 현격한 힘의 격차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3가지의 요소임과 동시에 원인이 되는 또 다른 요소들을 대표하는 말이기도 하다. 총, 균, 쇠라는 말은 강력한 군대, 전염병에 대한 저항력, 압도적인 기술력을 상징하는 1차적인 의미임과 동시에 2차적으로 그런 세 요소가 특정 집단에 편중될 수밖에 없었던 주요한 원동력을 내포하는 말이다.


해당 3가지 요소의 유별난 발전을 만들어낸 원동력은 실로 다양하고 깊다. 가령 강력한 군대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무기와 방어구 및 인간에게 길들여진 말의 존재 등 물리적인 요소로 인해 강함의 칭호를 부여받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정치 사회 조직과 종교가 만들어낸 군인 집단의 통일된 정신상태도 존재한다. 중앙집권적 국가는 꾸준한 애국심 고취를 통해 전쟁에서 개인보다 집단의 이익을 생각하는 병사의 정신상태를 만들어낼 수 있었으며 종교는 민족과 민족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구별하여 살육에 대해 각 병사들이 도덕적 갈등을 겪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타당성 있는 기저 인식을 제공했다. 또한 문자의 유무는 양질의 정보를 얼마나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여 첩보전의 수준 차이, 전술 기획의 밀도 차이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재밌는 점은 정복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 강력한 군대의 존재가 아닌 병원균이 만든 전염병이었다는 사실이다. 정복민은 자신들은 이미 저항력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병원균을 정복전쟁 초기에 의도와 상관없이 피정복민에게 전파시켰버렸고 그것이 만든 전염병에 피정복민은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잉카 제국의 용사들은 그 대응이 미비할지언정 기병대를 중심으로 한 스페인 군대의 전투 전략에는 나름대로 적응을 해나갔지만 그들이 전염시킨 천연두에는 어떤 저항도 해보지 못하고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강력한 살상 부대에는 아주 기초적인 대응 전략조차 만들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스페인의 군대는 그렇게 총, 균, 쇠를 독점함으로써 압도적인 힘의 격차로 잉카제국을 멸망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의문이 들 수 있다. "전염병이야 그렇다 치고, 강력한 무기와 강력한 방어구를 만들어낸 기술력 그리고 군대의 강력한 정신력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강한 중앙집권 국가체계는 결국 그들 인종의 재능 혹은 노력의 산실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것은 유전적 우월성을 의미할 수 있지 않은가? 그들이 진보적 기술력과 집단 체계를 만들어내는 동안 잉카제국은 도대체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하고 말이다. 이런 질문은 타당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문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만의 의문에 해당한다. 저자의 역설은 바로 그 지점에 대한 정확한 반박이기 때문이다. 어떤 한 인간 집단이 타 집단에 비해 유독 더 '문명'이라고 하는 것에 좀 더 빠르게 다가갈 수 있었던 이유, 혹은 반대로 그렇지 않은 집단이 그것을 선점하지 못한 이유, 그것은 각 집단의 유전적 차이가 만들어내는 우월함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다. 모든 문제는 그들이 서로 다른 지리적 위치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우연한 사건으로부터 야기되기 시작했다.



다섯 단계로 알아보는 문명 독점의 과정과 근본적 원인.


1. 제3의 침팬지


동 저자의 또 다른 저서 중「제3의 침팬지」라는 저서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제3의 침팬지'는 인류를 의미한다. 이 명칭 부여는 인류와 침팬지가 같은 조상이라는 것, 즉 인류의 기원이 유인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인류가 모두 똑같은 조상으로부터 분기되었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이는 물론 창조론을 믿는 종교인들에게는 큰 반박을 당할 수도 있는 대목이지만 적어도 저자의 논리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여러 인종과 국가로 분기된 현생 인류의 조상이 모두 똑같다는 사실은 작가가 논리를 전개하는 데 있어 상당히 중요한 기반이다. 기껏 조목조목 근거를 제시하 가며 다양한 인간사회가 서로 다른 속도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특정 인종의 유전적 우월함이 아닌 그들을 둘러싼 생태환경에서 찾으려 하는 마당에 뭥미? 인류의 조상이 각각 다르다고? 이러한 전제가 등장해버리면 논지를 전개하는 게 상당히 곤란해진다. 그건 진짜로 특정 인종이 애초에 더 우월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을 가능성을 만들어버리지 않는가? 다시 말하자면 인류가 모두 공통된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분기되었다는 사실은 특정한 인종이 더 재능 있는 상태로 태어났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흑인이나, 동양인이나, 서양인이나,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나 모두 똑같은 유인원을 그 조상으로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인류의 조상은 최초에 유라시아로 확산됐고 순차적으로 시베리아 및 알래스카를 통해 아메리카로, 동남아시아의 여러 섬을 통해 오세아니아로 이동해 정착했다. 자리 잡은 시간에는 각각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모두 동일한 종으로부터 퍼져나간 것만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우연한 선택의 과정을 통해 퍼져나간 인류의 확산은 어느 순간 아주 중요한 변곡점을 만들어냈다. 인류가 지구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각기 다른 대륙의 다른 좌표에 정착했을 때 그 지리적 위치의 다름은 단순히 좌표의 다름만을 의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브라질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만들어버리는 나비효과처럼 최초에는 미약해 보였던 이 차이가 영겁의 세월을 거쳐 문명의 편중을 만들어낸 결정적 요소가 되었다. 그 결정적 요소는 다름 아닌 그들을 둘러싼 생태환경에 어마 무시한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2. 숫자가 깡패다. 차이 나기 시작하는 인구밀도.


그런 말이 있다. 숫자가 깡패라고. 제 아무리 49전 무패를 자랑하는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라고 할지라도 코너 맥그리거가 단 2명으로만 늘어나도 2:1로 붙어서는 이길 제간이 없는 법이다. 그만큼 집단의 개체수라는 요소는 강한 민족과 약한 민족을 가르는 아주 기초적인 요소이다. 17대 1로 싸워서 승리했다는 전설들은 보통은 픽션이다.


이처럼 특정 집단이 타 집단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일 수 있는 첫 단추는 머릿 수다. 그것도 절대적인 숫자를 의미하는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가 한정된 공간 안에 얼마나 많은 개체수가 살아가는지를 나타내는 인구밀도를 의미하는 측면이 더 강하다. 똑같은 물리적 수준이라면 쪽수에서 열세를 보이는 쪽이 본능적으로 위압감을 느끼는 것은 동물적으로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왜 특정 집단이 상대적으로 더 큰 일구 밀도를 보였는가에 관한 문제다. 과연 개체수가 많기 위해서는 어떤 요소가 보장되어야 할까?


너무 당연하지만 일단은 먹을게 좀 많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좀 더 원시적인 생활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수렵채집 생활에서 식량을 직접 재배하고 기르는 농경, 목축 생활로 삶의 방식이 전환되어야 한다. 수렵 채집 생활은 기본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식량의 양에 한계가 있고 이동생활로 인해 일정 수준 이상의 식량을 저장할 수도 없기 때문에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먼 생활양식이다. 또한 야생의 먹거리라는 것이 자연 상태에서 자라나고 출몰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확보하는 생활양식 자체가 꽤 큰 불확실성에 속한다. 이렇게 확보 가능한 식량의 양이 제한되어있고 불확실한 때에는 아이를 많이 낳는 것에 상당한 제약이 생긴다. 등 따시고 배불러야 새끼 낳고 기를 생각을 하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려움 오늘날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단순히 확보할 수 있는 식량의 한계 말고도 수렵채집민이 가지는 제약은 또 하나 존재한다. 그것은 주기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엄마의 등에 업힐 수 있는 아이가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이다. 갓 태어난 아이는 걸을 수도 혼자서 먹이를 찾아 먹을 수도 대소변을 가릴 수도 없다. 때문에 거의 24시간 동안 엄마의 케어가 필요하다. 때문에 부부가 둘 이상의 아이를 낳아 기르고자 맘먹는다 할지라도 이동생활의 한계로 인해 한 아이가 자기 발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는 다음의 출산은 완전히 제한된다. 결국 머릿수가 늘어난다 하더라도 그 시간이 정착민에 비해 훨씬 더 더딜 수밖에 없다.


반면 농경, 목축생활을 기반으로 하는 정주형(정착) 생활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간이 의도를 가지고 식량을 재배하는 구조에서는 단위면적당 확보되는 열량이 수렵채집민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생산량을 예측하기도 훨씬 더 수월하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느끼는 안정감은 그 수준이 다르다.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식량의 양이 풍부하고 그 풍족함의 상태가 미래에도 보장될 수 있다는 확신을 일정 수준 가질 수 있는 사회는 그렇기 때문에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정착 생활에서는 필요 이상의 다량의 수확물을 정착지에 두고 관리할 수도 있었으며 수렵채집민처럼 아직 걷지 못하는 아이를 항상 등에 업고 있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여러모로 정주형 생활은 가족 구성원의 수가 늘어나는 데에 수렵채집민 보다 훨씬 큰 이점을 가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민족이 수렵채집 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전환하였을까? 그들이 수렵채집 생활을 청산할 때 왜 다른 민족은 여전히 그 불확실한 생활을 이어갔을까? 지구촌에는 여전히 수렵채집민으로 남아있는 야생의 원주민들이 존재한다. 그들에게는 야생의 작물을 꺾어다가 내 집 앞에 심어보고자 하는 호기심이나 창의력이 전혀 없었을까? 혹은 매일매일 잡아먹는 야생의 동물들을 우리에 가두어 길들여볼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농경을 기반으로 하는 정주형 생활을 시작한 민족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훨씬 더 명석했기 때문에 정착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답은 그렇지 않다. 이 둘을 가른 근본적인 원인은 단순히 그들이 거주하는 생활권 주변에 가축화 및 농작물화 가능한 야생 동식물이 존재했는가 아닌가의 문제였다. 재능의 유무가 아닌 아닌 축복의 유무의 관점. 그렇게 지구 상에서 생태환경적으로 가장 축복받은 지역이라고 할 수 있던 지역이 바로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는 중앙아시아의 어느 한 지역이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 책에서 발췌


이 지역이 축복받은 이유는 일단 생태계의 다양성이 다른 지역과 게임이 안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작물화 가축화시킬 수 있는 동식물에는 제한이 있다. 가령 식물의 경우 적당한 생애주기를 가져 인간이 시간을 들여 그것을 재배하는 에너지가 아깝지 않아야 하고, 작물의 크기도 충분히 커야만 수렵채집 생활을 대체할 수 있다. 동물의 경우에는 우리 안에서 짝짓기가 가능한지, 무리 생활을 하는지, (비좁은 공간에 많은 개체가 같이 살아도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우두머리 한 놈만을 복종시키면 전체 집단을 복종시키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집단내 서열화가 잘 되어있는지, 따위가 동물의 가축화가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결정하게 된다. 예를 들면 치타와 같은 경우 짝짓기 행위가 상당히 독특하여 우리 안에서는 번식을 시키기가 불가능한데 그 방식이 일단 암컷이 도망을 가면 그녀를 노리는 수컷 몇 놈이 경쟁적으로 그 암컷을 쫒고, 그 스피드 경쟁에서 이긴 녀석이 교배에 성공하는 역동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이런 동물의 경우 잡아다 우리 안 기르는 것도, 의도적으로 교미 활동을 기획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류의 유구한 비의도적 실험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식량자원으로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게 된 가축은 소, 돼지, 닭 등 몇 종류 되지 않는다. 이는 가축화가 가능한 동물이 그 수많은 야생동물 중에서도 극히 일부였다는 것을 방증한다. 작가는 이렇게 야생의 동물 중 극히 일부만이 인간의 가축이 될 수 있던 상황을 두고 안나 카레니나 법칙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톨스토이의 명저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이 이 상황을 표현하는 데 있어 탁월한 비유적 가능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각 다르다."


이 말의 뜻이 뭐하면, 행복한 가정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들을 모두 충족시켰기 때문에 그 모습들이 모두 엇비슷하지만 그 조건 들 중 하나라도 결여된 경우 그 가정은 불행해지고 또한 해당의 그 가정은 결여된 그 조건이 유독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에 불행한 가정들은 각각 다른 이유와 다른 모습으로 불행해 보인다는 이야기이다.


작물화, 가축화도 마찬가지였다. 작물화, 가축화가 될 수 있었던 동식물은 그들이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몇 가지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반면 그렇지 못한 것들은 영겁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소유권에 들어오지 못했다. 예를 들면 도토리 같은 작물의 경우는 재배해서 기르기에는 일단 익은 과실을 찾아내어 따먹는 속도경쟁에서 인간이 다람쥐를 이길 수가 없었고 작물이 열리기까지 10년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렵채집 생활을 대체할 정도로 매력적인 작물이 되지도 못했다. 그 어떤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그것들이 자라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또 재빠른 다람쥐와의 경쟁에서 인간이 이겨낼 재간이 전혀 없었다는 다소 황당한 이유에서다. 다시 말해 농경 목축생활을 상대적으로 먼저 시작한 집단이 그럴 수 있던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농경에 탁월한 DNA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주변에 돼지가 있었느냐? 혹은 주변에 밀이 있었느냐?라는 아주 단순한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농경 목축생활을 시작하지 못한 집단이 수렵채집 생활을 유지해야 했던 근본적 문제는 그들의 DNA가 아닌 그들을 둘러싼 생활공간에 서식하는 동식물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말 그대로 축복받은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지금은 환경이 많이 바뀌었지만) 지구 상의 어느 지역보다 작물화에 적합한 야생 식물의 비율이 유난히 높았던 지역이다. 그 이유로는 첫째, 지중해성 기후 대였다는 점, 둘째, 다른 지역보다도 그 지중해성 기후의 특징이 확실했다는 점, 셋째, 짧은 거리 안에서도 고도 및 지형 변동이 심해 같은 공간 안에 식물군의 다양성이 풍부했다는 점, 넷째, 그로 인해 동물의 다양성도 풍부했다는 점, 다섯째, 수렵채집 생활의 경쟁력이 약했다는 점이다. 이 다섯 가지 조건은 저자가 책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근거를 그대로 옮겨 놓온 것이다.


지중해성 기후는 겨울이 온난 다습하고 여름은 길고 더운 기후를 말한다. 이러한 기후환경에서는 긴 건조기를 버텨내다가 비가 내리면 재빨리 성장을 재개하는 식물군이 자연선택적으로 살아남게 된다. 이는 인간의 입장에서 상당히 유리한 진화과정이다. 이 작물들은 보통 한해살이 식물이라 불리는 것들인데 그 생애가 짧아 인간이 식량자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종 종자의 형태로 성장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초본(씨앗)은 작고 종자는 인간이 먹을 만큼 충분히 큰 특징을 가지고 있어 농경의 효율성도 함께 만족시킨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이 지중해성 기후가 유난히 잘 발달한 지역이었다.


짧은 반경 안에 다양한 고도와 지형이 존재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Quantity(양)가 Quality(질)을 보장한다는 말이 있듯이 대안이 많다는 사실은 그중 유별나게 쓸모 있는 무엇인가가 나타나는 확률을 높이는 요인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고도 및 지형의 다양성은 동식물의 종의 다양성을 만들어냈고 자연히 인간이 가축화, 작물화시킬 수 있는 종들도 많아지게 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작물화, 가축화는 인류가 풍요로운 먹거리 생활을 시작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었다. 특히 동물의 가축화는 그 자체가 식량이 될 뿐 아니라 농경 기술에 있어서 진일보한 발전을 이루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를테면 꽁꽁 얼어 기존에는 인간의 힘으로 농경지화 할 수 없었던 땅을 가축의 힘을 이용해 일군다거나, 같은 시간 동안 훨씬 더 넓은 공간의 밭을 일굴 수 있는 식으로의 발전 말이다. 이는 인간이 정주형 생활을 유지하는데 아주 복합적인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는 사실이다.


모든 과정을 살펴볼 때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거주한 집단이 특별히 유능해서 정착생활을 시작했을 여지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점진적으로 높아지는 인구밀도에 밀려 또 다른 지역의 먹거리를 찾아 조금씩 조금씩 확산해가다가 아주 우연하게 그들의 삶의 터전에 당도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축복의 땅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그렇게 정착한 민족들에게 지구 상 어느 지역보다도 더 풍요로운 생태환경을 제공해주었다.



3. 잉여생산물, 군인과 기술자와 사제를 만들어내다.


일단 특정 집단에 인구밀도가 늘어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알아내었다. 그러나 쪽수가 많은 것만으로는 그 특정 집단이 다른 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력함을 가지는 모든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가령 동등한 조건에서는 비록 메이웨더가 2명의 맥그레거를 이길 수 없을지라도 어린아이 몇 명 정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결투가 발생하는 그 시점 전까지 얼마나 그 싸움에 적합한 상태로 성장해왔는지도 승부를 가르는 주요한 요인이 되는 것이다.


식물의 농작물화, 동물의 가축화는 특정 집단의 인구 밀도를 늘렸다. 하지만 그 효과는 단순히 그 지점에 머물지 않았다. 확보할 수 있는 식량의 풍요로움이 일정 수준을 넘어버려서 개개인이 충분히 배불리 먹고도 그 풍요로움이 줄지 않는 단계가 되어버렸을 때 인류는 모든 사람이 식량생산에 열을 올릴 필요가 없는 특별한 상황을 맞이했다. 즉, 잉여생산물이 발생한 것이다. 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농사에 매달려 열심을 다하기에는 그 효율성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이 시점에 자급자족의 개념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수렵채집민 시절에는 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자기가 먹을 식량을 자기가 확보해야 했다. (아이 혹은 임심 한 여성 등 한 가족 안에 물리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구성원을 제외하면) 반면 농경, 목축 생활을 시작하면서 식량은 남기 시작했고 정착생활로 인해 그것을 쌓아두고 관리할 수 있는 여지도 생겼다. 자연스럽게 한 집단에는 남는 식량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기 시작했고 이는 정치라는 개념을 발생시켰다. 정치의 등장은 그 자체가 새로운 계층 혹은 직업의 등장이자 이후 군인, 기술자, 사제라는 직업이 나타나게 되는 근본 적인 배경이었다. 기술자와 사제는 군인을 더 강력하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했다.


전투를 자기 직업으로 하는 계층이 존재한다는 것은 물리력을 넘어서는 군대의 전투력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똑같이 나무로 만든 몽둥이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다니는 A, B 두 부족 간의 전쟁이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들 집단의 각각의 인구는 비슷하다. 한데, A 부족은 직업이 분화하여 직업군인이 따로 존재하고, B 부족은 여전히 수렵채집 생활을 하여 구성원 전부가 자급자족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집단 전체가 소멸할 수도 있는 전쟁의 위협 속에서 B 부족의 구성원들은 힘을 합쳐 전투에 임하면서도 일시적인 소강상태가 발생하게 되면 식량 확보에 다시 눈을 돌려야 한다. 아무도 그들이 먹을 식량을 따로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A 부족과 B부족을 가르는 이 차이는 집단의 구성원이 얼마나 개인주의를 벗어날 수 있는가?라는 척도의 결과물이다. B부족 구성원들은 전쟁의 위협과 개인의 식량 확보활동 중단 중 어떤 쪽이 더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인지를 판가름하기가 매우 난감하다. 혹은 그 경중이 엎치락뒤치락하여 전투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군대는 아마 전쟁이 장기간으로 이어질 경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전쟁에 집중할 수 있는 군인 계층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복전쟁에 있어서 물리적인 강력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 더해 직업 분화가 좀 더 활발하여 한 집단에 기술자가 따로 존재하고 사제가 등장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면 군사력의 질은 한층 더 강화된다. 수준 높은 기술력은 강력한 무기와 방어구를 만들어내고 정치와 종교는 각각의 병사가 자신의 생존 위협을 제거하는 수준 이상의 살육행위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만한 정신상태를 장착시킨다. 이렇게 하나의 목표를 향해 물러서지 않는 군대는 전투행위의 집중도와 당위성의 측면에서 그렇지 못한 군대보다 훨씬 큰 군사력을 발휘했다.


가축화된 말의 존재도 중요한 요소였다. 현대인의 입장에서야 전쟁에 말을 이용하는 것은 너무 먼 과거의 일이지만 인류가 살아온 시간의 스케일에 비하면 가축화된 말은 전쟁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특별한 사건이었다. 그것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기갑부대만큼이나 현격한 군사력 차이를 증명하는 결정 요소였다. 하지만 이 또한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비롯한 축복받은 일부 지역의 전유물에 불과했다. 아프리카에는 성격이 난폭해 도저히 가축화하기가 어려웠던 얼룩말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직업의 발생, 말의 가축화를 가능하게 했던 원인도 결국 농경 목축생활이 가져다준 정주형 생활의 풍요로움이었다. 수렵채집과 농경 목축생활이라는 양 극단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서로의 틈바구니는 그것이 한 번 벌어지기 시작하자 무서운 속도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농경민이 목축민을 먹여 살리고 목축민의 가축이 농경의 수준을 높이는 2중의 효과, 분화된 직업들이 서로가 서로의 필요성을 만들어주는 구조, 이러한 생활양식의 다양화는 각 요인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자가 촉매의 역할을 함으로써 역전될 수 없는 문명의 격차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4. 병원균, 이건 정말 얻어걸렸다.


이전의 내용까지는 그래도 앞서 나간(?) 민족들에게 점수를 줄 만한 여지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아무리 축복받은 지역에 살았기 때문이라 할지라도 적어도 그들에게 작물화와 가축화의 가능성을 탐지할만한 식견 정도는 있었기에 정주형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는 작물의 씨를 땅에 심거나 가축의 먹이를 챙겨주는 등의 일말의 노력은 있었으리라 본다.


하지만 서두에서 언급한 스페인 군대가 잉카를 압살 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요인, 유행병에 대해선 나로서는 아무리 후하게 쳐줘도 그들에게 점수를 줄 만한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병원균이 강력한 살상 무기가 되기까지 그들이 의도적으로 진행한 기획 활동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병원균이 강력한 살상 무기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들이 유독 그 병원균이 만들어내는 전염병에 큰 저항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원인은 어처구니없게도 그들도 전염병에 당했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이 잘한 일이라고는 그 전염병의 쓰나미를 먼저 맞닥드렸다는 사실밖에는 없다. 넋 놓고 당한 것 밖에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들이 남들보다 먼저 전염병의 심각한 피해자가 되었다는 이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들에게 절대적인 힘을 부여했다. 그것은 더 이상 같은 전염병으로부터 개체 수 말살의 위협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면역체계의 발생이었다.


한 집단의 수십 퍼센트의 인구를 말살하는 전염병 아래 문명가는 크나큰 생존의 위협을 받았다. 그 사실은 그들에게 재앙과 같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사건을 통해 동 집단의 구성원들의 몸속에 항체가 만들어지거나 유독 해당 질병에 저항력이 강한 부류의 인간이 자연선택적으로 살아남는 과정을 통해 집단 전체에 면역체계가 만들어졌다. 스페인 군대가 잉카제국에 쳐들어갔을 때는 이미 각각의 군대가 가지는 질병의 저항력이 그 크기를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진 상태였고 그로 인해 잉카를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살아가던 많은 원주민들은 유렵 국가의 민족들이 면역체계를 만들어낸 세월에 비하면 손톱만큼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인구의 대부분이 말살되어야만 했다.


이렇게 전염병에 대해서 면역체계를 만들어간 과정은 그것이 정말로 운 적인 과정이었을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이유를 지닌다. 왜냐면 병원균과 전염병은 인간의 생존권을 침해하는 무시무시한 존재인데 말살당할 리스크를 등에 업고 세균과 바이러스를 미래의 강력한 살상 무기로 활용하기 위해 그들이 자기 집단의 생명을 걸고 생체실험을 진행했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전염병의 확산은 그들 집단에게는 절망적인 일이었겠지만 그렇게 기존에 어떤 인류 집단도 겪어보지 못한 강력한 살상 부대로부터 그 누구보다 먼저 피해를 입은 덕분에 그에 대한 보상(?)이라 할 수 있는 면역체계도 가장 먼저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질문은 더 근본적인 뿌리로 옮겨간다. 전염병은 왜 발생했을까? 나이스 하게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역시 (이쯤 되면 축복의 상징이라 할만한) 동물의 가축화이다. 인류를 말살시킨 강력한 전염병들은 대부분 동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최초에 동물에게만 살상력이 있던 세균 혹은 바이러스들이 돌연변이의 과정을 거쳐 인간에게도 작용하는 전염병으로 진화했고 가축을 곁에 두고 접촉이 잦았던 선택받은 민족들은 가장 우선적으로 전염병의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염병은 일정 수준의 인구밀도를 가지는 집단에서만 창궐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세균과 인간이 격돌하는 싸움의 양상이 축구경기와 같은 대칭적인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균 혹은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인간이라는 숙주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침투해야 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침투한 그 시점부터는 빠른 속도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구멍 난 배로 전락하기 때문에 균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지속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좁은 영역 안에 많은 숙주가 존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기 숙주가 방어기작으로 행동하는 기침을 통해 혹은 그들의 배설물에 포함되어 나가는 방법을 통해 좁은 지역에서 쉽게 또 다른 숙주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 일정 공간 안에 적은 인구가 드문드문 살아가는 아직 덜 문명화(?)된 집단의 경우 균은 자신이 이미 기생하고 있는 숙주가 죽어버리기 전에 또 다른 숙주를 찾지 못하는 불상사(?)를 만나야만 했고 이는 전염병의 이른 종식을 의미했다.


인구밀도를 높였던 근본원인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 식물의 작물화와 동물의 가축화가 가져온 정주형 생활이었다. 이쯤되면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모든 문명의 기저 원인이 정착 생활이라는 결정적 사건으로 귀결되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인류의 많은 숫자가 말살되어버린 전염병을 두고 축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결과적으로만 본다면 그런 선대의 희생을 통해 그들의 후대가 강한 면역체계를 물려받을 수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발명, 그리고 전파속도.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좀 더 문명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발명에 관해서다. 이와 함께 단순히 한 지역에서의 발전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이 유독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에 비해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를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사실 이 책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왜 유독 유라시아만이 타 대륙의 국가들에 비해 더 큰 발전을 이룩했는가에 관한 문제다. 실제로 비옥한 초승달 지대(유라시아의 중심부)가 곡창지대로서 유독 발달한 지역이기는 하나 생태자원적으로 풍부한 지역은 타 대륙에도 존재했었다. 하지만 유라시아에는 그들 대륙과 유별나게 차별되는 두 가지 장점이 있었다. 바로 대륙이 수평축으로 늘어져있다는 사실과, 전체 대륙을 완전히 가로막는 큰 산맥과 사막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은 전파교류라는 측면에서 유라시아의 문명 발달의 속도를 가속시켰다.


언뜻 보면 대륙이 수평축으로 늘어져있다는 사실이 왜 장점이 되는지 의아하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위와 아래라는 개념이 사실 상 존재하지 않는데 그게 어떤 차별점을 가져오는지 쉽사리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차이는 어마 무시했다. 바로 유라시아 대륙이 전반적으로 비교적 비슷한 기후환경을 가졌다는 점이다.


지구는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다. 이는 계절이 발생하는 이유기도 하다. 우리나라가 여름일 때 남반구 호주가 겨울인 이유는 자전축이 기울어져 시간적으로 같은 시즌에 남반구와 북반구에 도달하는 태양빛의 각도가 차이 나기 때문이다. 7,8월에 우리나라는 태양빛이 떨어지는 각도가 수직에 가깝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고, 반면 남반구의 호주는 그 동일한 태양빛을 좀 더 비스듬하게 쬐기 때문에 기온이 낮다. 즉 지구 상 여러 지역의 경도 차이는 서로 다른 기후를 만들어내는 아주 근본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그런점에서 유라시아 대륙은 수평으로 늘어섰기 때문에 대륙 내에서 보편적으로 비슷한 기후를 보인다. 이러한 특성은 일차적으로 작물의 확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옆 동네에서 작물화, 가축화에 성공한 동식물을 건넛동네에서도 키울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는 말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지만 동식물 또한 한번 적응한 환경이라는 것은 생존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나를 둘러싼 기후환경이 급격히 변하면 적응에도 애를 먹을 수밖에 다. 유라시아 대륙의 비슷한 기후조건은 그렇기 때문에 작물과 가축이 확산됨에 있어서 훨씬 더 수월한 장점을 보였다.


반면에 아프리카 대륙, 아메리카 대륙은 수직으로 늘어져 있었기 때문에 확산의 주 축인 수직축을 중심으로 그 위치가 달라짐에 따라 기후가 변하는 정도가 유라시아 대륙의 수평축보다 훨씬 강했다. 때문에 해당의 두 대륙에서는 대륙 안 특정 지역에서 작물화와 가축화에 성공한 동식물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이 대륙 전체로 확산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부족했다. 때문에 대륙 전체적으로 농경 목축생활이 수렵채집 생활을 대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이 두 대륙은 세로축으로의 이동을 가로막는 지형적 장애물도 많았다.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아메리카 대륙의 높은 산맥과, 남북을 가르는 좁은 지역(파나마)등은 문명의 확산을 가로막는 주요한 장애물로 작용했다. 이런 특성 덕분에 이들은 유라시아 대륙의 민족들보다 훨씬 더 고립적인 생활을 해야 했고 접해보지 않은 문물에 대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타 지역에서 작물화 가축화에 성공한 동식물을 가져다 기를 수 있는 기회도 상대적으로 훨씬 더 적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확산을 가로막는다는 개념은 기술발전에 있어 큰 장애요소가 되었다. 애초에 기술의 발전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기존에 어떤 기술이 발명되어있는가가 새로운 발명의 출발점인데 수직축으로 늘어진 대륙에서는 기후적인 장벽과 지형적인 장벽 덕분에 그 기존의 것들이라고 하는 것에 많이 노출될 수 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라시아 대륙은 발명의 역사에 있어서도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아주 단적인 예로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현재 멕시코 지역에 거주하던 민족이 바퀴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고, 페루 지역에 살고 있던 민족은 라마를 가축화하는 데 성공했는데 두 문명이 만나기만 했으면 등장할 가능성이 농후했던 마차라는 문명을 끝내 만들어내지 못했다. 만약 이들이 접선(?)에 성공했다면 아메리카 대륙의 물류 발전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두 요소는 두 지역 사이에 존재하는 산맥과 험준한 지형이라는 거대한 방해 요소 덕분에 적절한 시점에 만나지 못하고 고립돼버릴 수밖에 없었다.


발명이라는 건 앞전의 누군가가 만들어둔 무엇인가를 기준으로 한 보폭 더 나아가는 일이다. 에디슨과 같은 역사에 남는 발명가들이 우리에게 유난히 기억되는 이유가 그들이 특히 유별나고 대단했기 때문으로 기억되지만 어떻게 보면 그들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기존에 개발된 기술을 기점으로 한 보폭 더 나아가는 노력을 했을 뿐이다. 물론 그들이 남긴 유산은 시대를 갈아엎는 역할을 했다. 그것만을 고려하면 발명이라는 행위는 유독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불현듯 나타나 혼자서 세상을 뒤흔든 것처럼 애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작가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의 편견을 부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 말은 필요가 발명을 낳는 것이 아니라, 발명이 필요를 낳는다는 메시지였다. 이는 역사에 남는 발명품들이 오로지 그것을 만들어낸 발명가의 머릿속에서만 구상되어 세상에 태동한 것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에디슨이 축음기를 만든 목적은 애초에 음악을 트는 데 있지 않았다. 그가 생각한 축음기의 용도는 앞을 보지 못하거나 문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용도 등, 10여 가지가 있었지만 음악에 관한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음악의 재생'이라는 축음기의 적절한 필요를 발견한 것은 발명가 그 자신이 아닌 그를 둘러싼 사회집단이었다. 에디슨이 축음기의 이 용도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가 이 물건을 세상에 내놓은 시점에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것은 발명이 필요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실이다. 기존의 기술이 있었더라도 에디슨이라는 존재가 태평양 어느 한 무인도에 거주하는 사람이었다면 그가 축음기를 만들어낼 순 있었어도 아마 그것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기능으로 쓰이고 발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수렵채집에서 기술발전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의 생활 패러다임은 수차례 변화해왔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 변곡점의 역사들은 그 시점 이전의 시도들이 축적되고 응축되다가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다음의 세대의 표준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 무수한 계단형의 도약들은 결코 누군가 혼자의 특출남이나 누군가 혼자의 대단함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아니다. 사실은 계단처럼 기억되고 있는 유별난 그 사건들 이면에는 그 한 계단 자체를 이루는 무수한 영감과 발견과 시도와 확산과 교류와 갈등과 완성의 세월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의 숫자는 이전의 생활양식이 새로운 생활양식으로 대체되고 한 부류의 인간 집단이 다른 인간 집단을 대체해 나가는 영겁의 시간 동안 각각의 민족에게 모두 다르게 제공되었다. 결국 문명 격차는 우월한 인류 집단의 유능한 DNA의 상징이 아닌, 지구라는 생태계에 부여된 불균등한 기회가 인류의 시간 동안 축적되고 쌓아 올려 만들어진 자연선택적인 과정의 집합체였다고 볼 수 있겠다.


앞으로 읽을 책들의 시공간적 정체성을 부여할 책 [총,균,쇠]


지금까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 대한 대략적인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워낙에 두꺼운 책이라 굵직굵직한 내용만 간추려 담으려 했는데도 글이 상당히 길어졌다. 분량만큼 책을 읽는 것에도, 이야기를 정리하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읽는 내내 딴짓(?)을 많이 하긴 했지만 시간이 많았는데도 거의 한 달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내내 이 책만 읽었던 것 같다. 글을 정리하는 데는 며칠이 걸렸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 무수한 입증자료와 예상 가능한 반박에 대한 대안 제시에 비하면 세발의 피도 되지 않을 내용이다. 정말 이 책은 맨 처음에 표현한 것처럼 작가 자신이 입증하고 싶은 사실이 논리적임을 보여주기 위해 인류사를 시간축으로 사건과 사건을 잇는 무수한 연결고리를 논리적으로 열거해나가는 온갖 학문분야의 밀도 있는 집합체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하나의 거대한 논문을 읽은 듯한 기분이다.


보통 책을 보면 속도가 나는 부분이 있다. 보편적인 서술, 내가 접해 본 이야기, 크게 중요하지 않은 맥락 등의 구간을 만나면 책이 슥슥 읽히기 마련인데 이 책에서는 그런 구간을 별로 만날 수 없었다. 시종일관 느린 속도로 책을 탐닉해야 했다. 같은 분량의 글이라도 상대적으로 그 언어들이 전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보의 밀도가 상당했고, 작가의 주관을 뒷받침하는 모든 지식적 근거가 수치화되고 개념화되고 구조화된 실제 연구자료에 기반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꽤 많은 부분의 문장을 하나하나 곱씹어서 읽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는 이 책을 두고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너무 구구절절하게 설명한 책'이라고 비판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을 때 묘한 쾌감이 있었다. 그것은 서두에 밝힌 바와 같이 살면서 느껴 온 질문, "왜 특정의 문화가 주도권과 옳음을 독점하는가?"에 대해 이 책으로부터 인류가 살아온 시간을 규모로 가르침을 받는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챕터 한 챕터를 곱씹을 때마다 그 궁극적 뿌리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알아가는 해소감이 있었다. 덕분에 현생 인류가 분화하고 퍼쳐나가며 민족이 다른 민족을 대체했던 중요한 사건들의 시공간적 지점들이 표기된 4차원의 지도를 얻은 기분이 든다. 이는 앞으로 내가 읽을 책들이 어느 시, 공간 점에서 태어났는지 혹은 어떤 시공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표시할 수 있는 좌표평면의 역할을 할 것 같다. 앞으로 책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얻게 되는 지식을 분류하고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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