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덩케르크] 감상평
※ 이 글에는 영화 [덩케르크]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일부 존재합니다. ※
영화는 왜 보는 것일까?
영화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다고 할 수 없는 만원 내외의 비용을 지불하고 영화를 관람할 때 우리가 교환받는 가치는 무엇일까? 영화 [덩케르크]를 보고 나올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왜 보는 걸까 영화를? 마침 용변을 보러 들어간 화장실에서 이 작은 내적 의문에 답을 내기 위해 잠시 동안 생각한 뒤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영화를 보는 목적은 바로 생각과 감정을 얻는 데에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과 감정이 새롭고 풍부할수록 더 좋은 영화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이 영화가 내 일상과 얼만큼 격차 있는 감정과 사고를 제공하는지, 그리고 제한된 러닝타임 동안 그 감정과 사고를 얼마큼 압축적이고 깊게 전달해 주는지, 이런 점들이 바로 좋은 영화를 판단하는 척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는 꽤 괜찮은 영화인 것 같아 보였다. 기존의 것과 다른, 그래서 인상 깊은 면면들을 많이 관찰하고 또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4LyaiX5WWBA
[덩케르크]에서 인상 깊었던 3가지.
영화 [덩케르크]는 2차 세계 대전에서 있었던 덩케르크 철수작전이라는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이 작전은 전차를 앞세운 독일군의 강력한 전진에 의해 덩케르크 해안가로 몰린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해협을 통해 영국으로 복귀시킨 거대 작전이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수많은 장병들이 해안에 줄을 지어 자신들을 태우고갈 함선을 기다리는 장면을 보면 이 영화의 배경에 대한 상황접수가 꽤 신속하게 완료된다. 굉음을 내면서 쏜살 같이 하늘 위를 날아가는 전투기, 투하되는 포탄과 폭발, 그리고 일시에 땅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파묻는 장병들, 언어적 설명이 크게 필요치 않는 이 장면은 영화 [덩케르크]의 시작임과 동시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거의 모든 것의 핵심이었지 않을까.
영화를 보기 전까지 가장 많이 접한 [덩케르크]에 대한 사전 설명은 "전쟁은 배경일뿐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생존 본능이다."라는 뉘앙스였다. 생존본능. 그렇다. 그것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이전 영화들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인셉션]에서 사이토가 총에 맞았을 때 발생된 멤버들 간의 갈등. [인터스텔라]에서 만 박사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했던 거짓말과 이기심. 그것은 주어진 미션 완수 가능성에 대하여 다른 해석을 하는 조직 내 개개인이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의 압박을 만나면서 발생된 자연스러운 갈등이었다. [덩케르트]도 마찬가지다. [덩케르크]도 전쟁이라는 배경 속에서 인간 개개인이 생존의 크나큰 위협을 받을 때 발생하는 동물적인 갈등 구조와 투쟁을 다뤘다. 하지만 차별점은 있었다. 그것은 독보적으로 제한된 영화 속 인물 간의 대사의 양이었다.
[인셉션]의 세계관은 감독의 독특한 상상력으로부터 마련되었다. 타인의 꿈속에 침투해 생각을 훔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 그 꿈속에서 다시 한번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꿈 간의 계층 구조, 그리고 더 깊은 꿈의 단계로 들어갈수록 느리게 흐르는 시간의 속성. 이러한 영화의 배경은 일상적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에 앞서 감독은 관객에게 그 세상의 작동 시스템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 설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대사였다. 관객은 등장인물이 나누는 대화를 접한 후에야 비로소 감독이 만들어낸 고유한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었고 아마 그 이해 없이는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갈등하는 이유 또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에 앞서 등장인물 개개인이 나누는 대화 혹은 전체 구성원이 한 데 모여 나누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지 못한 관객이라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주요 이야기와 인물들 간의 갈등을 잘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고 본다.
[인터스텔라]의 경우도 비슷하다. 익숙하지 않은 우주라는 공간적 배경과 지구가 멸망해 감에 따라 새로운 이주공간을 찾아야 하는 인류와 NASA. 주인공 쿠퍼가 왜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우주로 떠나야만 했는지,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대안으로 발견한 몇 개의 행성 중에서 왜 밀러 행성을 첫 번째로 탐문했느지, 왜 행성마다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지. 등등의 이야기들이 맥락을 갖기 위해서는 관객이 해당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배경지식이 영화로부터 제공될 필요가 있었다. [인셉션]과 마찬가지로 [인터스텔라]에서도 그 해설의 역할을 하는 것이 대부분 인물 간의 대화였다고 본다. 때문에 이 방대한 과학지식적 이론이 가미된 영화의 대사를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우려가 있었고 이는 이는 영화를 보는 데 있어서 약간의 피로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덩케르크]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상황을 이해하는데 해설이 필요한 경우가 많지 않았다. 등 뒤에 갑작스레 총알이 빗발칠 때 7,8명의 장병들이 본능적으로 산개하는 모습,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모든 장병들이 동시에 바닥에 엎드리거나 일사불란하게 고개를 처박는 모습들, 가까스로 몸을 실은 탈출 함선이 어뢰를 맞았을 때 선내에 탑승한 장병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유일하게 열린 탈출구로 몰려들어가는 모습들은 상황 속 인물들의 행동 양상을 이해하는데 별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은 대목들이었다. 때문에 별다른 대사 없이 눈빛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 등을 이해할 수 있었다.
[덩케르크] 속 대사가 얼마나 적었냐 하는 것을 굳이 말해보자면 나는 영화를 보는 중간에 도대체 이 영화는 대본이 어떻게 쓰여있는지 의아할 정도였고 또 촬영을 할 때 감독과 배우 및 현장 스텝이 의사소통을 하기가 참 까다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사가 있다면 그 대사를 타임라인으로 삼아 촬영에 대한 지시와 배우의 연기에 대한 지도가 편할 텐데 그 중심축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인물들 간의 갈등을 그리는 빈도가 많아지고 그에 따라 대사가 꽤 발생하기는 했지만 영화 전반적으로 혹은 적어도 영화의 초중반부에 국한에서는 인물들 간의 대사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것은 보통은 말할 필요가 없어서 이기도 했고 때로는 특별한 설정이 부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대사를 제외시켜버리고 얻은 효과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관객의 역할을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에서 탈피시켜서 마치 영화 속에 함께 존재하는 듯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영화 속의 인물끼리 대화를 주고받고 나는 그걸 듣기만 한다면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전해 듣는 느낌이겠지만, 그들도 눈빛으로 이야기하고 나도 그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마치 같은 공간 속에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시종일관 일정 수준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관객의 입장에서 한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닌 덩케르크의 위협 속에 함께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 맥락에 있어서 그 공백과 극명하게 대비된 것이 바로 생생하게 들려오는 각종 효과음이었다.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가 점점 커져 갈 때 실제로 그 투하 위치가 점점 더 나에게로 근접해오는 것 같이 느껴져 마치 극 중 인물이 느끼는 공포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고, 하늘 위로 전투기가 쏜살같이 지나가는 장면에서는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생생한 현장감을 만들어줬다. 이것은 몰입감을 제공하는 아주 직접적인 방식으로 보였다. 기존의 영화가 관객과의 거리를 좁혀나가기 위해서 기승전결의 구조로 사건을 전개시키고 관객과 인물이 친해지는 과정을 거쳐 이후에 발생하는 갈등을 통해 극의 속도감을 높이는 방식이었다면, 이 영화는 그런 간접적인 방식에서 물러나 좀 더 물리적이고도 직접적인 방식으로 본능을 자극하여 관객이 이야기 속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운다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덩케르크]는 영화의 배경 설명이나 인물의 가치관을 정립시켜 보여주는 1막의 구조 없이 없이 극의 긴장 상태로 곧바로 진입할 수 있었다. 2시간이 훌쩍 넘는 다른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와 달리 104분의 러닝타임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그런 전형적인 도입부 없이도 충분히 이야기 속으로 몰입할 수 있는 이 영화만의 특성이 반영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2번째로 인상 깊었던 점은 독특한 시간 구성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시간에 대한 독특한 상상력을 발휘할 때가 많다. 그 상상력은 때로는 영화의 전체 형식이었고 때로는 영화 내용의 한 중추적 부분이었다. 전자로서 대표적이었던 것은 영화 [메멘토]였다. 이 영화는 전체 스토리를 조각처럼 잘라 시간의 역순으로 구성함으로써 주인공 레너드가 가지는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독특한 질병의 특성을 관객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 이전의 기억을 모두 소실하는 한 남자. 그가 그 조각난 시간 단위를 기준으로 상황 판단을 하고 그에 기반해서 특정한 생각과 행동을 할 때 그것을 타당성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객도 그 주인공의 과거를 모를 필요가 있었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감독은 전체 스토리를 시간의 역순으로 배치해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이는 관객이 특정 시점의 주인공의 행동을 그의 과거를 모르는 상태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만들었고 덕분에 관객들은 자칫 기괴해 보일 있는 주인공의 행동을 일반적인 정신의 제삼자의 입장이 아닌 주인공의 심리 상태와 같은 상태로 바라볼 수 있게 됨으로써 그 모습들을 기괴하게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영화 [인셉션]에서는 꿈속 시간의 독특한 특성이 극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아주 주요한 내용이었다. 더 깊은 꿈의 단계일수록 시간이 훨씬 더 느리게 흐른다는 사실과 더 깊은 꿈의 단계로 진입할수록 꿈의 대상자에게 더 뿌리 깊은 생각을 심을 수 있다는 설정은 주인공 일행이 도모하는 계획의 타당성과 갑작스레 닥친 위기 상황에서 멤버들 간에 발생하는 갈등의 당위성을 만들어냈다. 미션을 제안한 사이토가 총에 맞아 쓰러졌을 때 임스를 비롯한 몇몇이 미션 수행을 계속하는 것을 반대했던 이유는 꿈속에서 죽게 되면 림보라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정신상태로 빠져든다는 사실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미션 수행에 더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던 주인공 콥은 더 깊은 꿈의 단계로 들어갈수록 시간은 현저히 느리게 흐르기 때문에 그에 대응하는 현재 단계의 짧은 시간 동안은 적들의 위협을 충분히 피해갈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미션 수행을 계속해 가야 함을 역설했다. 이 모든 사고체계와 갈등 구조는 시간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독특한 상상력이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반면 [덩케르크]에서의 시간 구성의 독특함은 서로 출발점이 다른 세 가지의 시간을 관객에게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영화는 지상에서의 1주일, 배 위에서의 하루, 그리고 전투기 안에서의 1시간이라는 서로 다른 시간을 서로 다른 인물들의 시점으로 전달하는데 최초에는 이것이 마치 옴니버스의 형식의 이야기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 세 가지의 시간을 연결하는 2명의 등장인물이 각 사건을 연결하면서 이들은 점차 하나의 개연성을 가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이 모든 사건이 향해가는 종착지가 같은 지점이라는 것을 눈치채기 시작하면서 세 가지 시간 속의 이야기는 하나의 거대한 사건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이러한 독특한 시간 구성의 덕이었는지 영화는 일반적인 영화의 시간 흐름이나 사건 발생의 흐름에서 다소 벗어나 있었다. 일반적인 영화의 구성은 이렇다. 최초에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 주인공의 캐릭터와 삶을 소개하는데 도입부가 할애되며 그가 자신의 인생을 뒤흔드는 독특한 사건을 만나면서 특정한 목적의식을 갖게 되고 그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인물과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극적인 구성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서서히 형성된 긴장상태가 최고조에 이른 후 그것들을 일시에 해소시키는 클라이맥스 등장하면서 관객에게 카타르시스 혹은 감동을 선사하고 영화는 결말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덩케르크]는 그런 정서적 흐름이 약하다. 대신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긴장상태로 들어가고 꾸준히 그 긴장상태를 유지한다. 이제 긴장 상태가 해소될 것 같다가도 금방 또다시 새로운 긴장 상황으로 치고 들어간다. 이는 세 가지 각기 다른 시간상의 긴장 상황을 계속해서 교차로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이런 정서의 흐름이 꽤 독특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정서적 흐름에 감독의 의도가 들어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그 지점을 예상할 수 있지만 전쟁은 그 누구도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다는 사실, 그 사실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감독은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관객을 전쟁의 한 복판으로 보내버린 선택을 한 것이라 추측된다. 덕분에 나는 영화가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더라도 굵직한 클라이맥스는 만나지 못한 채 시종일관 비슷한 수준의 긴장상태를 유지하며 영화의 결말을 만나야 했다. 가슴속으로 울컥하는 감정을 마주친 순간이 존재했지만 일반적인 영화가 제공하는 카타르시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영화 속 어떤 요소도 아닌 톰 하디의 연기 그 자체다. 그것은 이 배우가 내뿜는 독특한 매력이 영화 속 특수한 상황과 만나면서 발휘된 깊은 매력이었다. 톰 하디는 [덩케르크]에서 전투기 조종사 파리어로 분하여 아군 지상 병력과 선박을 공격하는 적군 전투기를 격퇴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전투기 속 상황은 지상 및 선상의 그것과 차별되었다. 살기가 흐르는 위협이 피부로 느껴지는 지상에서의 상황, 덩케르크 해안으로 장병들을 구출하러 가야 함을 두고 민간 선박의 선장과 그에게 구출된 해군이 갈등을 겪는 선상에서의 상황과 달리 전투기 안의 상황은 상당히 고요하다고 까지 말할 수 있는 상황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상공에 어떤 위협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 편대를 이룬 세 전투기 중 파리어가 조종하는 전투기를 제외한 2대는 적의 공격을 맞아 추락했고 파리어의 전투기 역시 적의 공격에 의해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상공에서의 긴장감이 다른 두 상황과 달랐던 점은 아군간의 갈등이 없었다는 점이다. 다른 두 상황에서는 생존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동지끼리의 내부 갈등과 암투가 존재했지만 상공에서는 몸을 섞는 혈투도,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설전도 없이 오직 조종사 자신의 고독만이 존재했고 단 한방이라도 적의 공격을 제대로 받는다면 해안으로 떨어지는 추락 해 버릴 수 있다는 위협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오롯이 조종사 자기 자신 뿐이었다.
때문에 다른 어떤 지점보다 이 지점에서 배우의 연기력이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덩케르크]를 관람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많은 죽음 속에서도 적군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발견할 수가 없는데 이를 영화 제작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톰 하디는 적당한 상대 배역이 거의 없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상황에서 연기를 해야만 했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그것도 손발은 옴짝달싹하지도 못하고 대화 상대라고는 가끔씩 무전을 통해 교신하는 동료 조종사가 전부인 전투기 내부의 상황에서 말이다. 실제로 톰 하디는 영화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전투기에 탑승한 모습으로 비치고 동료 전투기와의 통신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 동안 무전기가 연결된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하는 설정 속에서 자신의 연기를 보여줬다. 즉 그가 보여줄 수 있는 연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손동작, 몇 번의 무전, 그리고 두 눈 빛이 전부였다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표정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고 또 관객을 압도할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을 터이고 그 점에서 톰 하디의 캐스팅은 어쩌면 당연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나리오를 집필할 때 웬만하면 배역을 미리 정해놓지 않는다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 영화의 이 배역에 있어서만큼은 톰 하디 이외에 누구도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한 대목이 십분 이해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톰 하디는 재빠른 상황판단과 쿨한 매력을 가지는 배역을 연기하는데 탁월하다. 그것은 아마도 배우 자체가 그러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예상한다. 별다른 고민 없이 의사결정을 하는 듯 보이고 언제나 상황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이 확실해 보이는 모습이 정말로 멋있다고 생각하는 배우다. 그런데 이 배우에게서 어째서 그렇게 쿨한 매력이 뿜어지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것은 그의 눈빛이 마치 자기 자신의 운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듯한 강렬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단순히 그 운명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면모마저 보여주기 때문에 남성적인 매력과 스타일리시쉬한 매력이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두 눈만으로도 많은 것을 표현하고 전달해줄 수 있는 배우다. 그가 연기한 [인셉션]의 임스와 [레버넌트]의 피츠 제랄드 모두 쿨한 매력을 지닌 캐릭터였다. 거침없는 상황판단과 웬만한 상황에서는 크게 동요되지 않는 감정상태, 이러한 면모는 마치 톰 하디 자신의 운명과 미래에 닥칠 상황을 모두 예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피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과 닥쳐올 미래 상황을 왠지 모르게 상당 부분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왜 그의 캐릭터가 망설임이나 갈팡질팡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들인지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감성을 밀도 있게 보여준 것이 바로 그의 두 눈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덩케르크]에서 파리어 역할에 톰 하디가 배정된 것은 어쩌면 숙명과도 같은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극 중에서 적군 전투기의 공격에 잔여 연료량을 표시하는 장치가 고장이 나버렸을 때 톰 하디(극중 파리어)가 담담하게 동료 조종사에게 무전하여 남은 연료가 얼마인지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면서 때때로 한 번씩 동료가 무전으로 알려주는 남은 연료량과 무전을 받은 시간을 기록하면서 연료가 고갈될 시점을 대충 파악하려는 의중을 보인다. 아마도 이 대목에서부터 그가 임무를 완수하고 무사히 원대로 귀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그런 관객의 기우와는 하등 관계없이 톰 하디는 시종일관 쿨하고 담담한 모습으로 적기를 하나 둘 격퇴시켜나간다.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그 모든 감정을 대부분 자신의 두 눈만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참으로 대단한 연기력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대사 없는 이 영화에 톰 하디 자신의 두 눈으로 화룡점정을 찍은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3. 시작과 동시에 몰입되고 긴장감이 시종일관 유지되는 영화.
총평해보자면 영화 [덩케르크]는 "시작과 동시에 상황에 몰입되고 시종일관 긴장감이 유지되는 영화"였다. 덕분에 마치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 잠시 직접 다녀와본 듯 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온라인상의 어떤 누구는 [덩케르크]가 영화라고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전형적인 플롯에서 벗어나 있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닌 상황을 관찰하는 느낌이 훨씬 더 강하다고 평했는데 아마도 그것이 바로 이 감독이 영화 [덩케르크]를 기획한 의도 자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덩케르크]는 전형적인 영화의 구성으로부터도, 또한 전형적인 전쟁영화의 구성으로부터도 상당히 벗어나 있는 작품으로 독특한 정서의 흐름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쟁영화의 클리셰를 완벽하게 벗어나 있는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도 조금 든다. 그것은 이야기의 막바지에서 내가 얻은 감정, 인물들의 무사 귀환과 누군가의 영웅적 면모에서 발생하는 알 수 없는 경외감과 안도감이 확실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전쟁물이 보이는 정치권력의 고뇌, 화려한 전투 장면, 그 척박한 상황 속에서도 나름의 코미디 코드를 발견해가며 정서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군인들의 모습은 전혀 엿볼 수 없었지만, 그런 희로애락 없이도 전쟁영화가 주는 특유의 거룩함을 느끼지 않기는 어려웠다. 때문에 [덩케르크] 역시도 거대한 의미에서는 전쟁영화였지 않나 생각이 든다. 혹시 이것은 새로운 전쟁 영화 형식의 처음은 아닐까? 제작하는 영화마다 기존의 사고 체계에 상당한 균열을 가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음 영화가 벌써부터 기다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