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잘 안날때는 생각이 잘 안나는 것을 느끼면 된다. 글쓰기는 기획된 무언가를 토해내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저 써내려가는 것이기도 하다. 자기검열이 시작되면 보이는 것은 단절된 문장의 흔적들 뿐이다. 그것은 어떤 억압이고, 자유로움의 모습이아니다. 문장이 이어지지 않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는 증거다.
쓰는 것의 의미는 발견에 있다. 펜촉을 들고 미끌어트리며 한 지면을 채워나가다보면 의외의 발견들이 발생한다. 그러니, 어쩌면 항해를 하는 것과 같다. 까마득한 대양의 끝에 반드시 무엇이 있을 거라는 믿음, 웜홀을 타고 또 다른 갤럭시로 떠날 때 정착할 곳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 그 확신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펜을 드는 것이 시작이요, 나아가다보면 의미를 찾는다. 형식을 스스로 강요하면 내용은 억지로 짜맞춰진듯 볼품이 없고, 시작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때 내 마음속을 항해하는 자유로움이 찾아온다. 그 인식의 끄나풀을 만나기만 하면, 마치 원래에 있던 문장이 줄다리기를 당기듯 끌려오면서 어느새 지면은 나의 생각으로 적셔진다. 뭔갈 쓰는게 아니라 담긴걸 내뱉을 뿐이다.
장그레는 바둑, 어차피 바둑 한판이라 했다. 혼을 싣는 한판이던 그렇지 않은 한판이던, 그 한판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그 한판에는 내가 당장 느끼지 못하는 작은 쌓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한판이 나를 규정한다. 나라는 존재의 규정은 그러한 선택이 쌓여진 집합체다. 그 선택은 거창한 무엇인가가 아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에서부터 팬때를 굴리는 것까지. 작은 행동들이 응축하여 의미를 갖는 무엇으로 돌출된다. 스스로를 가둘수록 틀을깨지 못하니 한글자는 어렵고, 문장은 지겹다. 나 자신의 기준을 내려둘 때 지면을 적심이 수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