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열심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행동양식을 어른들만이 규정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열심히' 열심' 등에서 오는 이미지가 뻔하고, 유형이 비슷한 어떤 모습들로 비치는 이유는 어떤 것에 최선을 다하는 방식의 틀이 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정형화되어 있는 어떤 것은 일부 강요를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열심의 형태는 모두 다르다.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을 실행한다. 미생에서 장그래가 각자의 바둑이 있다고 했듯이 열심의 모습도 모두 제각각이다. 하나의 열심 모델이 성공했다고 하여 그 모델을 정형화하고 정규화하고 신봉하는 것은 눈치채기 어려운 폭력의 모습이자 헤게모니의 점령이고 무책임의 시발점이다. 많은 책이 확언의 형태로 책 이름을 명명하는 것. 마치 모든 것을 아는 듯이 내뱉는 권위의 어조들. 우리는 끊임없이 그 틀에 점령되고 쉽게 홀려지는 말들에 매몰되어 똑같은 형태의 열심으로 내몰려간다. 그리고 그 내몰림은 병목에서 물이 한 번에 빠져나가지 못하고, 톨게이트에서 빠져나가려는 차들이 트래픽 잼에 걸려버리듯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순서가 매겨지고 누가 더 제공된 열심의 형태와 오차 없이 일치했는가를 경쟁하며 상대의 어긋남을 비판한다. 입체적으로 태어난 우리 모두는 그렇게 점점 더 단편적인 캐릭터로 변모해간다.
헤게모니를 점령한 자들이 열심의 형태를 규정한다. 그것은 의도적일 수도 비의도적일 수도 있다. 개구리를 찬물에다 넣고 물을 끓여가면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가듯이, 정신은 그렇게 정형화된 열심의 틀속에 매몰될 수 있다. 스스로 열심의 정의를 탐구하고, 더 깊게 하며, 마치 정의인 듯 뿌려지는 권위의 말들을 방어해내는 것이 자기 정신을 지키는 일이지 않을까. 정형화된 열심의 모습에서 벗어날 때 느껴지는 탈선의 느낌은 단지 누군가로부터 만들어진 문법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이미지 출처 : https://1000awesomegamethings.com/2015/11/13/979-games-that-are-h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