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란 결국 매개체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담고 있는 콘텐츠다. 경험, 상식, 상상, 정보, 학문 등이 글 속에 담기고 글이라는 소통의 매개물을 통해 의사소통이 이루어진다. 그런 것들은 글 뒤편에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활자라는 필터를 거쳐 각색된 형태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결국 잘 쓴 글이란 정신적 에너지를 얼마나 적절한 필터를 설치하여 전달하였는가의 문제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말을 가려서 하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표현은 언제나 선택이 동반된다. 선택이란 경로를 의미하고 결국 결론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글이라는 것은 그 경로를 짜 맞추는 일이다. 똑같은 서사 단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설이나 영화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기승전결과 강약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런 경로를 택하는 글쓰기이다. 이야기라는 형태의 글은 경로 자체에 의미와 정체성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일기예보와 같은 글은 기승전결이 없다. 같은 수준의 중요도를 가지는 정보의 나열에 불과하다. 그런 글은 그런 담백한 경로가 택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균일한 속도감과 균일한 톤의 언어의 열거에 정보는 서로서로 동등한 무게감으로 청자에게 전달된다. 이 또한 선택의 문제다.
불확정성의 원리라는 게 있다. 원자를 공전하는 전자는 그 위치 및 운동량과 관련하여 확률의 구름 형태로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어떤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불확정적인 모습. 그런 전자는 인간의 지성으로 인식되기 위해 측정이라는 수단이 작용되는 순간에만 어느 한 지점에 특정되는 입자로 인식되게 된다. 글이라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생각은 끊임없이 방사형으로 흐르고 그건 어떤 에너지가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형태처럼 보인다. 그러다 활자를 통해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오는 선택을 당할 때 필터로 쓰인 그 활자의 모습으로 고정된다. 그리고 그 모습으로 타인에 의해 인식되어 존재감이 규명되는 것이 글이 아닐까 생각된다.